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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예술이 된다 - 셀피의 시대에 읽는 자화상의 문화사
제임스 홀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셀피(selfie)가
현대 사회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요. 사진을 즐겨 찍는 편이 않지만, 스마트폰을 뒤져보면 몇 장의 셀피는 나올 정도니 말입니다.
그런데 미술사가인 제임스 홀은 이 것이 현대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얼굴은 예술이 된다>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화상’을 하면 떠오른 화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생각해보면, 저는 자화상과 셀피를 아주 다른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자화상의 역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중에 하나가 문화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것이라고 하죠. 그러한
인간의 열망은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것에서도 열심이었고, 덕분에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의 우리는 수많은
자화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예전에 <빈 미술사 박물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파르마자니노의 자화상에도 오랜 시간 시선을 주었었는데요. 이번에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지요. 바로 ‘볼록 거울에 담긴 자화상’입니다. 또한 자화상의 문법을 바꾼 인물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투영합니다. 마치
하나의 광고처럼 말이죠. 자신을 홍보하는 것, 어쩌면 자화상이
갖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역할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출세길로 나아가면서, 화가로서의 자율성을 잃어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들이 그 후의
자화상을 남기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답을 다른 화가에서 찾아가야 합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잘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작품 세계에 대한 열망을 놓지 못했던 화가들이 있지요. 제가 좋아하는 고야의 자화상 ‘나는 배우고 있다’, 그리고 고흐와 고갱이 등장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고흐의 자화상과 다른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바로
‘가구 자화상’입니다. 정물을
통해 인물화를 표현한다니, 마치 현대 설치미술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거기에 대한 답이었던 고갱의 ‘자화상 주전자’도요. 그런데 저는 참 뜬금없지만,
문득 천재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이 바라는 것, 후회하는 것, 아니 인생을 작품으로 녹여낼 수 있는 것이 말이죠. 아마 그래서 제 머릿속에서 자화상과 셀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류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