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이은선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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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아주 오래 전 캘리포니아 대학에 ‘사랑학 강좌’(Love Class)를 개설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와 용기를 주었다. 그는 사람은 사람을 가르칠 수 없지만, 배우려는 사람은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본성으로 배우고자 하면 배울 수 있다. 교수답게 그는 교육자(educator)란 ‘인도한다, 안내하다’(educare)'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다. 그는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서 “사랑이란 당신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도록 돕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을 인용한다. 그가 이 책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는,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버스카글리아는 인생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삶이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나의 삶을 사랑으로 얼마나 나답게 만들어 가느냐가 바로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선물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랑학 강의에서 “만일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되고 싶은가?”라고 학생들에게 질문하면 불행히도 80%이상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한단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허비하는가? 지금 현재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사랑하고 끌어안아야 하며, 지금 용서하는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을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없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강연을 하면서 경험한 바를 이야기하면서 일관되게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말한다. 가장 인상 깊은 인용구는 칼릴 지브란의 아름다운 시다(pp. 359~360).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각자 고독하게 있게 하라.

기타 줄은 외롭게 혼자이지만 하나의 음악을 울린다. …

서로 마음을 주어라.

그러나 소유하지는 말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서로 떨어져 서 있는 사원의 기둥처럼

참 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제목 <살며, 살아하며, 배우며>로 다 표현되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사랑학 개론이다. 개론으로 끝났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요즘 나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13장을 묵상하고 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아가페의 사랑이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15가지를 언급한다.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친절)하며, 사랑은 시기도, 자랑도, 교만도 아니 한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내지 아니하며 … 등등. 사랑하겠다고 추상적으로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사랑하는 일에 항상 실패한다. 참 사랑의 속성을 따라 좀 더 참으려고 하고, 친절하려고 하고, 자기 자랑과 자기 유익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믿고 소망하며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을 배우려고 하는 자는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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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인 위대한 여인들
조민기 지음 / 미래지식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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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조민기는 인문역사 강연을 하는 칼럼니스트다. 그녀는 역사의 숲에서 만난 여인들 14명을 추려 귀한 혈통으로 태어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여인들, 자신의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나라의 번영을 이끌어낸 여인들, 아름다운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여인들, 예술의 길을 걸은 여인들, 그리고 워킹 맘의 길을 걸은 여인들로 구분하여 14명의 여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 여인들은 남성 중심의 역사기록에서 이름을 남겼다는 점만으로도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다.

 

저자는 클레오파트라가 어떻게 이집트의 통치자가 되었고 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와의 사랑을 추구했는지 실감나게 묘사한다. 39세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가 300년의 치세의 종지부를 찍고 로마의 속국으로 된 슬픈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메리 스튜어트는 비극적인 여러 번의 정략결혼의 희생자이며 반역죄로 처형을 당하였지만, 최후의 승자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했던 대로, 자신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합법적인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왕비로서의 위엄과 긍지를 잃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존경을 표했다고 전한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매혹의 길과 예술의 길을 걸은 여인들이었다. 고아원 출신 샤넬이 패션의 신화를 창조한 이야기, 가난한 기생 출신인 장위량이 시대와 운명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남자건 여자건 역사 속에 위대한 존재가 되는 일은 혼자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언제나 사랑하고 후원하고 헌신한 그 누군가가 있었기에 그 혹은 그녀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역사책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는 여인들, 그 이름은 유명하나 한 두 마디의 말로 때로는 폄하되거나 칭송되는 여인들의 삶과 인격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물론 ‘세계사를 움직인 위대한 여인’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때로는 지나치게 낭만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서술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여성하면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 그리고 유관순 정도가 생각나는데, 이 책을 통해 장계향의 <음식디미방>과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어 기뻤다. 가볍지만 즐거웠고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유익을 얻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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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말들 - 수많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배움을 위하여 ㅣ 문장 시리즈
설흔 지음 / 유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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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설흔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 자다. 스스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고 고백하는 그는 평생 공부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우리 고전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용휴, 정약용 등과 같은 인물의 글들을 소개하며 짧은 감상과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우리 선조들의 책읽기와 공부에 관해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어가는 설흔의 감칠맛 나는 글들은 평생 책을 놓지 않고 싶은 나에게 큰 도전이 된다.

 

이익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p. 28)라고 말했다. 이는 조선시대 때 오직 과거 공부를 위한 독서를 경계하는 의미다. 오늘날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만 공부하는 것에 진정한 공부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익의 글이 의도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독서나 공부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딴지’를 건다.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분명 무언가를 얻기 위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이익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재상의 아들은 과거를 볼 수 없도록 한 것이 송나라의 제도였다.”(p. 124). 조선시대 때 송나라 금지 규정은 사라지고 과거시험은 명망가 자제들의 등용문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이익의 개탄이다. 오늘날 대학입학이 왜 공정해야 하는지, 직장취업에 왜 청탁이 없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명의 작가를 정해 놓고 3년 동안 그 작가의 책과 관련 연구서만 읽는 오에 겐자부로의 독서법과 유만주의 글은 나의 독서 방법을 돌아보게 한다. 허균은 사십 후반에 명나라 사상가 이지의 책을 읽고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는다.”(p. 39)라고 했단다. 이 문장에 대해, 작가는 훌륭한 책이란 독자의 시야를 트이게 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이 독서와 공부에 대한 나의 시야를 한 단계 높여주고 있다. 저자는 공부란 배우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던 것들을 문자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업이고 몸으로 실천하는 작업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공부를 지식의 차원을 넘어 삶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책을 잘 읽고 꼼꼼하게 공부하는 이는 많지만 사람을 진실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진정한 공부의 대가(大家)를 찾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누군가의 글쓰기가 읽을 만하고 누군가의 공부가 받아 들일만 하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책읽기를 통해 우리는 먼저 생각을 바꾸어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것은 곧 인격의 변화와 삶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진짜 공부다! “전겸익의 문장을 읽으면 곧장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게 된다. 돌아올 방법을 모르게 된다”(유만주, p. 138). 설흔은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의 첫 문장,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를 소개하며,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길을 잃고 돌아올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독서나 공부는 없는 법이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란 그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삶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설흔의 <공부의 말들>은 독서와 공부에 대해 나의 생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멋진 책이다. 저자가 소개한 우리 선조들의 책들과 현대 작가들의 글들을 열심히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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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 - 역사 속 시그널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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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어려운 주제를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가 다루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크 아탈리는 ‘미래를 안다’ 혹은 ‘미래를 예언한다’는 것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래를 안다고 할 때는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된다. 미래를 예언한다고 것도 미래가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기에, 결국은 체념할 뿐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열린 미래를 전제하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살 준비, 자기 자신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자유를 얻는 일이다.

 

저자는 과거에 인간이 어떻게 미래를 알아내려고 힘썼는지 수많은 종교적 철학적 문헌을 예로 제시한다. 인간은 고대부터 손금을 보아왔고, 점성술에 집착했고, 예언자나 사제들은 예언의 능력을 추구했다. 꿈이나 제비뽑기, 희생제물이나 카드와 커피를 통해서도 점을 쳤다. 놀랍게도 신의 시대, 예언자의 시대가 지나자 인간은 이성(理性)을 사용해 날씨를 예측하였다.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날씨에 순응하지 않고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서며, 더 나아가 날씨를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 언제나 인간의 예측을 벗어났다. 결국 세상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자 인간들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체념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망각한 채 ‘부조리한 위희(慰戲)’에 빠져 산다는 것이다. ‘위희’란 파스칼이 이론화한 개념인데,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유희적 활동을 말한다. 개인의 자유가 확산될수록 미래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다. 따라서 현대의 인간은 점차 기계에 미래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기계라고 하는 새로운 군주에게 미래에 대한 지식을 위임하게 될 경우, 권력은 미래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기업의 속에 들어갈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자크 아탈리는 여기서 인간이 이런 식으로 자유를 잃지는 않을 것이며, 자유롭게 미래를 예측하는 개개인의 잠재력을 키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길 희망한다. 그래서 이 책 마지막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개인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다음 단계를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자신이 정체성과 가치를 이루는 핵심을 분석한다(회고적 예측). 둘째, 앞으로 자신의 건강상태의 변화를 예측한다(수명 예측). 셋째,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줄 사람들을 분석한다(환경적 예측). 넷째, 그들이 나에게 취할 행동을 파악한다(감정적 예측). 다섯째, 미래의 나를 계획하는 나의 방식을 분석한다(계획적 예측). 결국 자기 자신을 예측하는 일은 ‘자유롭게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저자는 예측의 최대 적은 게으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래를 안다거나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치 있는 삶은 언제나 살기 전에 꿈꿔야 가능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예측은 삶을 가져다준다.”(p. 264). 이 책은 인간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예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미래를 꿈꾸고 자신이 꿈꾸는 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논지다. 자유롭고 가치있게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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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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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사람은 가장 진실해진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유럽 문학 거장들이 진솔하게 말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독일의 주간신문 <차이트>의 문예부 편집자인 이리스 라디쉬(Iris Radisch)는 19명의 문학 거장들과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1990년 가을부터 2015년 봄까지 장장 25년 동안 진행된 것들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주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인생의 주어진 시간이 끝나며 변하지 않고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라디쉬는 인생의 마지막에 관해 종교적이나 철학적으로 확정된 입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는 이에 대해 조금은 불만이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는 너무 삶과 죽음을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종교적이나 철학적인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도 함께 보여주었으면 훨씬 더 넓은 시각에서 삶과 죽음을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터뷰어(interviewer) 라디쉬는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인터뷰의 내용들을 소개한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앞두고 외친다. “일, 생활, 가족들, 그 모든 것은 어쩌면 전혀 아무 것도 아니었을 거야.” 라디쉬는 죽음 앞에서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전제를 이미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죽음을 앞두고 노년의 문학가들은 어떤 의미 있는 말들을 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쥘리앵 그린은 자신이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 있는 하루하루를 신들에게 감사드린다. 죽음은 잠과 같으며 신비에 싸인 세계라는 것이다.

 

한편, 노벨 수상자 클로드 시몽은 삶의 부조리를 굳게 믿는 자로서, “만약 세상이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훌륭한 책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글쓰기의 대상이 아니라 방법이다. 책의 의미는 글을 쓸 때 비로소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는 글쓰기의 방법에만 관심을 갖는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가는 신학자들이 답할 문제이며,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느냐가 문학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삶을 마감하면 무엇이 아쉬울 것 같으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삶’ 자체라고 답한다. 새들과 하늘을 볼 수 없고, 더 이상 수영도 할 수 없고, 햇볕도 쬘 수 없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아쉽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안드레이 비토프는 자신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큰 사치를 누리는 것이라고 유쾌하게 주장했다. 세상은 우리보다 더 유쾌하게 돌아간다. 우리는 죽지만 세상은 죽지 않기 때문이란다.

 

마지막 인터뷰이(interviewee)인 루트 클뤼거는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다면 자유는 없는 것이기에 자신은 삶의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런 믿음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올바른 선택이란 없다. 그저 결정을 내리고 충실히 따를 뿐이다. 모든 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고 삶에서 더 바랄 것은 없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삶의 참 뜻을 알고 싶다면 온 종일 자는 고양이를 보면 된단다. 삶의 참 뜻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삶이란 사는 것이다. 그러니 매 순간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문제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무신론자들에게 있어서 답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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