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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황미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군가 사람이나 조국이나 종교를 배신하면 비열한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분노한다. 그런데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한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배신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싶다. 아비샤이 마갈릿의 <배신: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는 ‘배신’에 관한 철학적 담론이다. ‘배신’은 인간사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요소이지만, 배신의 모호서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은 주제다.
저자 마갈릿은 배신을 얕은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도덕적 관점이 아니라, 두터운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윤리적 관점에서 다룬다. 저자는 배신을 ‘두터운 관계에서 접착제를 떼어내는 것’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정치적 배신인 반역, 적을 돕는 배신인 부역, 종교적 배신인 배교를 다룬다. 정치적 배신에서 봉건적 관계에서의 배신은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성경의 나발 이야기를 예로 든다. 반역에 대한 복잡한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드레퓌스 사건을 심도있게 다룬다. 프랑스 민족을 하나로 접착시키는 것은 민족토착주의와 가톨릭인데, 드레퓌스는 이런 접착제로 붙일 수 없는 사람이어서 배신자로 몰린 것이었다.
종교적 배신인 배교의 문제를 다루면서, 저자는 아브라함을 말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한 것이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두터운 가족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다. 즉 이것은 가족을 배신하는 일이다. 예수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들을 부를 때 그들은 아버지를 떠나야 했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사이의 충돌일 수 있고, 육체의 가족과 정신적 가족 사이의 충돌일 수 있다. 한편, 유다의 배신은 왜 그렇게 사악하게 보이는가? 저자는 입맞춤 때문이라고 말한다. 입맞춤은 최고의 신뢰를 보여주는 신호인데, 그것이 적에게 스승을 넘기는 신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유다를 배신의 상징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은화 30닢이라는 돈이다. 유다의 배신은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배신인 것이다. 한편 루페이센 이야기는 배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한다. 카르멜 수도회의 수사가 된 유대인 루페이센은 나치 경찰의 제복을 입고 동족인 유대인을 구하는 용기를 보였지만, 유대인들은 그를 배신자로 보았다. 유대교 패러다임은 가족이고, 기독교 패러다임은 우정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가족을 배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문명 사회에서 배신과 위선은 필수 부산물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배신에 대한 두려움과 위선에 대한 환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배신의 대상일 뿐 아니라 배신의 주체일 수도 있다는 것, 위선을 경멸하는 나 자신이 어느 정도 위선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배신의 복합적인 본질을 마주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