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보낸 9일 - 어느 여인의 9일간의 천국 체험기
매리에타 데이비스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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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사(臨死)체험을 하고 그것에 대해 간증하는 글들을 몇 개 읽어 보았다. 그리고 느낌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천국을 지나치게 물질화해서 설명하거나, 황당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글들에는 성경의 계시와 너무나 다른 이단적 주장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사실 천국을 인간의 언어로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며,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천국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천국을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제자들과 잔치를 여는 것으로 천국을 표현하셨을 뿐이다. 예수님도 할 수 없었던 일(천국을 인간의 언어로 자세히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어떤 인간이 감히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 <천국에서 보낸 9일>은 다르다. 1848년 여름에 매리에타 데이비스라는 젊은 여성이 9일간의 잠 혹은 혼수상태에서 경험한 것들을 매우 명쾌한 문장으로 성실히 표현했다. 이 사건이 진실함은 가족들과 여러 목회자들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저자에 대해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표현된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과 벗어난 것이 없다. 자신이 경험한 초월적인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함에도, 이 책의 저자는 매우 문학적으로 그러면서 진실하게 그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천국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신앙으로 인해 박해받는 자들도 승리할 수 있음을 강조한 책이다. 즉, 요한계시록은 믿는 자들에게 신앙의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천국을 소망하게 만든다. 놀랍게도 이 책, <천국에서 보낸 9일(Nine Days in Heaven)>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와 구원의 완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14장, 논쟁하는 정의와 자비’에서 시작해서 ‘24장, 잃어버린 자가 받은 구원’까지는 온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정의와 자비의 논쟁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정의와 자비가 완성되었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했음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1장, 천상의 멜로디’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매리에타가 천상에서 멜로디를 듣는다. 아니, 천상의 음악이 온 몸 전체를 타고 움직이는 것 같았단다. 그래서 그 음악에 온전히 뛰어들려고 하자 불협화음이 일어나 괴로웠다.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한 후 그녀는 고통스러워, 이곳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천사에게 요청한다. 그 때 천사가 설명한다. “매리에타, 너는 길을 잃지 않았단다. … 이곳이 너무 거룩해서 너의 내적인 삶이 밝혀지고 죄가 드러난 거야. …”(p. 90). 그리고 후에 천사는 다시 말한다. “인간들이 이것을 알기만 하면, 그들은 악을 상대로 싸우면서 의로운 삶을 살 거야. 매리에타, 목격한 일들을 돌아보아라. 너는 상식을 상용하고 삶을 정리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더 심각한 일이 닥칠 거야…”(p. 92). 

이 이야기는 나에게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도전한다. 예수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갔다 할지라도 천상의 멜로디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천국의 멜로디와 어울리는 거룩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내야 천국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천국의 멜로디에 잠기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는 천국의 소망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진정 천국의 소망이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려는 성화에 대한 열정이 넘쳐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천국을 소망하면 결코 이 세상의 삶을 소홀히 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며,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며, 거룩한 열정으로 산다. 믿음 생활이 시들해진 자들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분명 천국의 소망과 거룩한 삶의 열정이 다시 불붙을 것이다. 

[이 서평은 브니엘출판서에서 제공한 책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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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정의 - D. A. 카슨이 말하는
D. A. 카슨 지음, 송영의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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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복음주의 신학자 D. A. 카슨(Carson)이 영국의 말씀사경회(Word Alive Conference)에서 행한 빌립보서 강해서다. 저자가 밝혔듯,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다룬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의 핵심에 관한 것이기에 ”믿는 자들을 위한 기본원리들(Basics for believers)"라고 이 책의 제목으로 삼았단다. 먼저 나는 이 책의 번역 제목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저자 자신도 이 책의 제목, Basics for Believers가 책 전체를 잘 요약해 주고 있다고 밝혔는데(p. 9), 굳이 <그리스도인의 정의>라고 했는지 의아하다. 여기 한글 번역본 제목의 ‘정의’가 定意, 定義, 正意, 正義 중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차라리,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든지 혹은 ‘신앙의 기본도리’나 ‘믿는 자들을 위한 기본원리들’ 아니면 ‘D. A. 카슨의 빌립보서 강해’ 정도가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빌립보교우들에게 쓴 편지임에도 기쁨의 어조가 넘쳐난다는 점에서 ‘기쁨의 편지’라고 한다. 하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라는 명령을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어떤 상황 속에서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적인 태도이지만, 이것이 빌립보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D. A. 카슨은 빌립보서 전체를 균형있게 정리하고 강해했다. 저자는 바울이 로마제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바울의 글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재의 상황에 적응하려고 했다. 로마 제국은 다원주의 사회로서 다양성에 자부심을 느끼고 구원에 단 하나의 길만 있다는 복음을 거부하며 자기만족과 탐닉에 빠져 있었다. 그런 사회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복음을 최우선시하라고 권면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상황과 일치한다. 오늘날도 세속화 과정에서 복음은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자기 만족추구의 열풍이 교회에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며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다원주의로 복음을 전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 말로, 교회는 빌립보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저자는 ‘제1장. 복음을 최우선시하라’에서 바울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기도에서 언제나 복음을 최우선시하며, 복음의 진보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최우선시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저자가 인용한 페이튼의 글은 도전적이다. “오직 한번뿐인 인생, 그것은 속히 지나갈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것만이 영원할 것이다”(p. 48). '제2장. 예수님의 죽음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라’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고난도 함께 받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며, 복음의 위로를 받을 뿐 아니라 전하며, 믿음의 초기 단계에서 나아가 온전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임을 분명히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전하는 복음,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참 복음의 50%도 담고 있지 않다. 이제는 온전한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대로 사는 것을 전해야 한다. 

‘제3장. 훌륭한 믿음의 지도자들을 본받으라’에서는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이 땅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 때, 믿음의 지도자를 본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히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빌3:17)는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에게 큰 도전이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 중 과연 누가 바울처럼 말할 수 있을까? ‘제 4장, 그리스도인다운 행함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성도의 인내에 관한 교훈이다. 한마음, 기쁨, 관용, 기도, 거룩한 생각, 자족, 은혜 안의 성장, 등을 끝까지 추구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본기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교회의 모습과 현재 나의 믿음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그리고 참된 복음을 최우선시하며 그것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온전한 구원,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구원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 책, 빌립보서의 내용을 탁월하게 설명하며, 현재 우리 상황에 관련한 많은 적용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서평은 국제제자훈련원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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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위안받은 그녀들 - 12인의 라틴아메리카 여성미술가
유화열 지음 / 미술문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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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대부분에게 생소한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미술가들의 소개한다는 점에서 큰 흥미를 끈다. 지은이 유화열은 멕시코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을 많이 접하였다. 그녀는 한국에 프리다 칼로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라틴아메리카 여성 미술가들이 소개될 것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단다. 그녀는 이미 <라틴 현대 미술, 저항을 그리다>와 <태양의 나라, 땅의 사람들: 정직한 페루미술을 찾아서>를 집필한 경력도 있기에, 이런 책을 쓰기에 합당한 작가다.  

작가가 소개한 첫 번째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 미술가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의 삶과 작품 세계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작품 중 <실루엣 시리즈들>, <야굴 이미지>는 조각적 행위 예술가로서 자연에 흔적을 남기며, 몸으로 대지와 대화를 시도한 상당히 실험적인 조각 작업임이 분명하다. 특히 피로 얼룩진 하반신을 드러낸 <강간 현장> 퍼포먼스는 강간살해사건에 대해 대학이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자신의 몸을 통해 여성의 몸이 익명의 오브제로 해석될 수 없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확실히 그녀의 몸은 여성주의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어지는 작가들의 이력 소개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몇 년도에 어디서 태어나 가정이 어땠고, 어떤 교육을 받았고, 화가로서의 이력을 어떻게 쌓아갔고, 등등. 이런 도식적인 설명 때문에 조금은 따분했다. 차라리 작가를 소개하는 첫 페이지의 요약글이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리지아 클락(Lygia Clark)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그녀는 한 순간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언제나 실험적이었다. 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각에 의해 체험되는 것이다. 리지아는 관객의 신체지각 체험 자체가 예술이 된다고 생각했으며, 미술치료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치료를 위해 기꺼이 미술을 사용했다.”(p. 38). 이 문장을 이해하고 있으면, 그녀가 왜 천연고무를 사용해서 어떤 완벽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작품, <고무 애벌레>를 작업했는지 이해하고 이 작품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차라리 작가의 작품의 성향을 간략히 말하고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해석하고 설명하면서 거기에 꼭 필요한 작가의 일상이나 이력을 말했더라면, 훨씬 역동적인 소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서 소개된 라틴아메리카의 여성미술가들 중 회화 작품들은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퍼포먼스 예술가, 사진작가, 콜라주 예술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만큼 내게는 조금 더 자극적이었다. part1에 소개된 마리솔 에스코바르(Marisol Escobar)가 폐건축자재와 쓰레기더미에서 찾은 재료들로 만든 목재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가난한 가족1, 2>에는 베네수엘라의 원주민들의 슬픔과 서러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하다. 미술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그 작품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를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Part4에 소개된 작가와 작품들을 즐길 수 있었다. 식인주의 미술의 창시자 타르실라 두 아마랄(Tarcila do Amaral)의 <아바포루>는 초현실주의의 전형적인 표현이지만, 동시에 브라질 전통의 원주민의 현실과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생명력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또 아멜리아 펠라에스(Amelia Pelaez)는 쿠바의 감성적 소재를 가지고 유럽의 조형이론을 접목해 가장 쿠바적인 작품들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 독특성을 높이 사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책장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스테파노 추피의 <천년의 그림여행> 옆에 이 책 <예술에서 위안받은 그녀들>을 끼어 넣는다. 이 책은 앞의 두 책에서 전혀 다루고 있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의 여성미술가와 그 작품들을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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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 자녀의 인생을 형통하게 만드는 최고의 선물
김병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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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 출판사에서 교회 직분론에 관해, 재미있는 예화와 명쾌한 논조로 세권의 책을 내놓았던 김병태 목사님이 이번에는 그리스도의 자녀양육에 대한 책을 내놓았다. <기도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다소 길지만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고 싶은 크리스천 부모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이 책 역시 이전의 책들처럼 명쾌하고 재미있는 예화가 많다. ‘프롤로그’에서 무면허 운전자에 빗대어 오늘날 이 사회에 ‘무면허 부모’가 득실 된다는 말과 “아무나 자녀교육의 1인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누구나 자녀를 위한 기도의 1인자는 될 수 있다”(p. 8)는 말이 도전이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법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먼저 1부에서 자녀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는 일에 부모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1부의 내용들에 깊이 공감했다. 나도 자녀를 양육하면서 자녀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만 만족했고, 나머지는 온통 학교공부에 관해서만 신경을 집중했다. 자녀가 교회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한다고 신앙이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저자가 지적했듯, “하나님은 종교 생활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하신다”(p. 15). 나는 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에 정말 관심을 집중했는지 스스로 질문해본다. 언제나 함께 하시며, 나의 삶에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내 인생의 목자가 되시며 피난처요 안식처가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하나님을 나는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고, 나의 자녀들도 그런 하나님을 만나기를 진정으로 원했던가?  

‘제 2부. 자녀를 거룩한 지도자로 세우라’에서 소개된 프린스턴 설교학 교수 블랙우드 박사의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야 할 세 가지 유산’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깊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첫 번째는 기쁜 기억의 유산, … 두 번째는 좋은 습관의 유산, … 세 번째는 높은 생의 목표의 유산이다”(p. 65). 그렇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도만 해서는 안 된다. 자식과의 관계에서 삶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하며, 좋은 습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부모 자신이 고상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자녀들도 올바른 인생,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제 3부는 자녀를 위해 무엇을 기도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건강하고, 학교 공부 잘하고, 세상에서 성공하여서 하나님 나라의 유익한 일꾼이 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건강과 성공이 핵심이고 뒤에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는 것은 그저 형식적 고백에 불과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자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자녀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기도, 자녀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기도, 자녀의 거룩한 변화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 자녀를 축복하는 기도 등. 

제 4부는 자녀에게 감동을 주는 기도의 부모가 되라고 도전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과 말씀대로 사는 모습, 그리고 기도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줄 때, 자녀들은 감동하고 부모 같은 믿음의 삶을 살기로 다짐할 것이다. 김장환 목사의 아들 김요셉 목사가 화장실에서 아버지의 무릎끓고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되어 자신도 목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예화는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나도 여느 부모처럼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잘 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자녀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얼마나 최우선순위를 두었는지, 자녀에게 그럴듯한 말은 많이 했지만 삶의 본을 보였는지, 자녀들의 거룩한 삶을 위해 기도했는지, 자녀들에게 믿음의 모습으로 감동을 주었는지 돌아보니 부끄럽다. 이 책,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고 자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관심을 갖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것은 브니엘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서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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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마로니에북스 아트 오딧세이 7
스테파노 추피 지음, 하지은.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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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문예부흥운동,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진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적 모델로 삼고 문화를 발전시킨 시기(14C 후반~16C). 학생시절 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문장이 생각난다. 그 찬란한 문예부흥운동시기의 미술에 관한 책이니, 당연히 나의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스테파노 추피는 내가 5년 전 보았던 <천년의 그림 여행>도 집필했다. 그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약 300명의 화가의 작품 800여점을 싣고 적절히 해석한 방대한 책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역사와 미술작품에 박식할 수 있을까 감탄했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서양미술사와 이론을 섭렵할 수 있었고, 마치 방대한 작품을 잘 정리하여 전시한 미술관을 하나 손에 얻은 듯했다. 예경 출판사에서 발행했는데, 고급 종이를 사용해서 소장가치도 높았다.  

한편, 마로니에북스에서 발간한 이 책 <르네상스 미술>은 훨씬 더 흥미롭다. 천년의 역사가 아니라, 약 250년간의 미술을 다루었기에 더 깊이 있게 미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저자는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서적을 출판했을 뿐 아니라, 여러 미술관의 전시 작업에도 참여했었는데, 그 경력이 이 책에 고스란히 배여 있다. 중세의 고딕 양식이 녹아있는 ‘궁정의 세계’를 시작으로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인문주의 시대와 전성기 르네상스, 그리고 발견의 시대와 매너리즘과 반종교개혁 시기까지, 각 시대의 화가들과 그 작품들을 매우 깔끔하게 정리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명작 속으로’라는 타이틀로 책 군데군데 약 50여개의 작품을 큰 도판으로 싣고 작품을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이지, 이 책 한권이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역사책과 훌륭한 작품집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품도록처럼 조금 더 고급용지를 사용했으면 더 좋았으리라.  

저자는 이 책에서 수백 개의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자> 작품과 그 작품을 예비 드로잉한 것을 비교해서 함께 실은 것이 인상적이었다(pp. 224~225).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한 가지 주제에 끈질기게 연구하고 새롭게 수정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드로잉은 긴장감이 있고, 자신의 감정까지 잘 녹아있는 완벽한 예술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나는 레오나르도의 다른 작품, <최후의 만찬>를 그릴 때의 그 열정과 <모나리자>의 신비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동일 화가의 여러 작품을 비교해 놓거나, 다른 작가들의 유사한 작품들을 비교 감상하기에 좋게 배열했다. 예를 들어, 226~227페이지에는 여인의 누드 주제의 전형적인 네 개의 작품을 나열해 놓았다. 여인들은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작가에 따라 그림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빛의 섬세한 배합으로 인물과 풍경의 관계를 섬세히 묘사한 조르조네의 <자고 있는 베누스>와는 달리, 타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베누스>는 육체의 실재감으로 생명력을 부여했다. 타치아노의 그림에는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적인 형태와 선이 보인다. 한편, 쿠쟁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전 하와>에서는 기독교 주제와 고대의 신화를 혼합한 흥미로운 시도를 했으며, 궁정 대가의 전통을 후대에 남겼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작품이 있다. 야코포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이다(pp. 350~351). 그림의 구도는 원근법적인 축을 따라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두 개의 빛의 방향을 따라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고, 특히 신비로운 천사를 등장시켜 현실의 삶과 천국의 이상 사이의 간극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이 책의 저자 추파는 설명한다. 매우 적절한 설명이다. 매우 신비로운 그림이다. 22m × 9m의 거대한 작품이니,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지오레 교회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  

이 책, 르네상스 미술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나의 서재 미술책 코너에 꽂아놓고 자주 들추어 볼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사를 공부하려는 자들이나, 당시의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 모두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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