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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아더 지음, 박주성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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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기계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진정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교회성장의 권위자들은 성경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집중한다. 교회 성장학은 구속받지 못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번영을 설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램프 속에 갇히 지니(genie)처럼 소개하며 많은 돈을 헌금하는 사람에게 건강과 부와 행복들 제공해 주는 분으로 전락키시고 인간을 주인으로 만든다…”(pp. 76~77).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왜 말씀대로 살지 않고 구원받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맥아더 목사님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헬라어 “둘로스”에 집중합니다. 이 단어가 ‘종’(servant)으로 번역되었는데, 더 정확히 ‘노예’(slave)라고 번역해야 한답니다. “종은 고용된 존재이고 노예는 소유된 존재”(p. 23)라는 점에서 분명 구별됩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과 1세기 노예제도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노예는 전적으로 주인의 소유물이며,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주인에게 헌신해야 하며, 전적으로 주인을 의존해야 합니다. 또 노예로서 개인적인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노예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리스도 말씀의 절대 권위에 생명을 건 얀 후스(John Huss)와 그의 영향을 받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를 예로 들어 신자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소개해 줍니다.

노예라는 치욕적인 칭호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때 가장 폭악한 죄의 노예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폭군에서 풀러나 자비로운 새 주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속전을 주고 폭군에게서 우리를 사서, 우리를 당신의 노예로 삼으셨다는 은유를 사용합니다. 이제 자비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에서 아들로 “입양”하셨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자 존 뉴턴(John Newton)이나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George Műller)는 이 은혜의 교리에 대한 삶의 증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칭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치욕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로마 시대에서도 황제의 노예들은 자신들의 황제의 노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드러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대우와 인정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임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 13장에 언급되었듯이, 십자가나 노예제도 같은 성경의 심오한 진리들은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그스도의 노예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만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화해하고 연합하는 길입니다. 노예가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개념은 온전한 구원을 묘사합니다.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p. 219).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참으로 강력한 도전을 줍니다. 이 문장은 저에게 값싼 복음을 버리고 진정한 복음에 반응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헌신하라고 도전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slave)다! 언제나 어디서나 이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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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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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 새로운 예술(아르느보) 사조의 등장에서 윌리엄 모리스와 알폰스 마리아 무하(A. M. Mucha)를 빼놓을 수 없겠죠. 특히 무하의 작품들에 나오는 여인의 우아하고 뇌쇄적인 모습과 꽃과 문양의 장식들, 그의 작품은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사실 저는 무하의 작품들은 여러 번 접했지만, 그의 삶을 소개하고 작품들을 해설한 책은 처음 접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19세기 말 유럽의 예술적 흐름과 감수성을 파악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반갑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Ⅰ. 세기 말의 한 가운데’는 무하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유용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벨 에포크, 보헤미안과 댄디, 데카당스,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과 같은 용어들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간략히 제가 이해한대로 정리해 봅니다.

   벨 에포크 -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전쟁없는 30년의 화려한 시기.

   보헤미안 - 부르주아적 생황방식에 반대하며 살았던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들.

   댄디 - 보헤미안의 방탕과 무질서를 멋부림과 사치로 이용한 부르주아들.

   데카당스(decadance) - 심미적 쾌락주의. 종종 병적인 관능성을 지니고 있음.

   상징주의 - 고갱처럼, 화면의 형태와 색채의 음악적 배치로 사물의 의미와 신비를 드러냄.

   아르누보(Art Nouveau) - 19세기 말 현대적 양식(modern style)으로 인식된 예술사조.

 

   ‘Ⅱ. 인생의 극장 앞에’와 ‘Ⅲ. 무하, 세기 말을 장식하다’는 무하의 일생을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무하의 삶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저에게는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체코의 소년이 어떻게 벨 에포크를 구가하던 파리에 가서 생계를 꾸려가며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무대 포스터를 그리게 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장식 패널과 상업포스터로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 마치 무하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장우진은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읽는 미술책을 만들었다는데, 아마도 그의 그런 경력이 무하의 인생을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힘이 된 듯합니다. 일반적으로 제가 보아왔던 무하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상업포스터였습니다. 저자가 지적하듯, 광고에 있어 무하의 감각은 매우 현대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광고주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페르펙타 자전거 포스터와 다른 작가의 자전거 포스터를 비교해 설명한 것은 보십시오(pp. 126~129). 이렇게 무하는 상업포스터, 일러스트, 보석 디자이너, 등으로도 명성을 날립니다.

 

   저는 ‘Ⅳ. 무하양식’과 ‘Ⅴ. 보헤미아를 향하여’에서 무하에 관해 가장 새롭고 인상적인 것들을 배웠습니다. 이곳에서 그의 개인적인 작업들을 보았습니다. 그의 포스터에는 언제나 명랑함과 생기발랄함이 넘쳐나지만, 상업적 목적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작업한 파스텔화는 절망, 좌절, 고독, 죽음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보여줍니다(pp. 198~201). 또 그의 말년에 프라하 시청사의 시장실에 그린 프레스코화(p. 242)와 <슬라브 서사시>(pp. 245~255)는 그가 단순한 상업 장식 화가가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 무하를 위대한 예술가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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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꼭 알아둬야 할 구글의 배신 - 왜 구글은 우리에게 치명적인가
시바 바이디야나단 지음, 황희창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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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구글 검색엔진을 사용하면서 정보의 방대한 제공과 편리성에 감탄하곤 했다. 아니 지금도 어떤 정보를 찾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구글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득 우리가 구글에게 통제되고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구글에서는 ‘통합 프라이버시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크롬 사용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도록 하는 '스크린와이즈(Screenwise)' 프로젝트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구글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사용자들에게 더 나은 인터넷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인터넷 사용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나는 각 개인을 철저히 통제하고 지배하는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처한 개인의 선택을 말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이 떠올랐다.

 

   이 책, <구글의 배신>은 모든 것이 ‘구글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경각심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영어 제목, <The Googlization of Everything(and Why We Should worry)(모든 것의 구글화, 그리고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이유)>가 이 책의 논지를 더 잘 드러내고 있다. 내가 구글을 사용하면서 감탄하듯, 오늘날 구글은 복음이 되었다. 구글은 점점 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렌즈가 되어 가고 있다. 구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잘 하고 있다. 게다가 '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이라는 멋진 모토도 가지고 있다. 구글은 싸고 편리하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필요 없을 정도다. 저자가 인용한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에 나오는 ‘북맨’(Book-Man)의 역할을 떠맡고 있다(p. 293). 이런 이유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구글에 환호할 때, 이 책은 구글이 하나의 기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구글은 무엇보다도 광고회사이며,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의 독점 기업이 되었다(pp. 38~43).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구글을 사용하는 것은 공짜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이 책의 광고 카피에 나오듯, “사람들은 구글의 고객이 아니라 제품일 뿐이다.” 구글이 편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구글에 환호하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구글이 위험하다. 이런 생각은 기술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기술근본주의다. 그것은 바로 자만심이라는 죄이며, 마치 판도라 상자처럼 인류를 엄청난 고통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시바 바이디야나단은 독자에게 이렇게 도전한다. “문제는 구글이 사람들을 얼마나 잘 대해 주느냐가 아니다. 구글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냐는 점이다.”(p. 294). 구글이 처음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전문적이었다면, 이제는 소비를 촉진하는 데 전문적이 되었다. 앞으로 구글의 성격은 더 심하게 변화할 것이다. 결코 품질, 보편성, 개방성에 대한 보장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인간 지식 프로젝트”를 제안을 한다. 즉, “구글보다 더 오래 존재할 수 있는 정보 생태계 설계 프로젝트”에 우리를 초대한다(pp. 298~299). 공동 도서관을 활성화시키고, 여러 단체들이 함께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결코 거대독점기업 한 곳에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휴! 나는 저자의 글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개인이 구글이라는 이 거대한 기업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구글이 아무리 좋은 모토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윤을 추구하는 하나의 기업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너무 구글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작은 결단이라도 해야 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자가 제안한 “인간 지식 프로젝트”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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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행복을 함께 초대하라 - 인생 후반을 빛나게 해주는 21가지 희망 조언
데이비드 니븐 지음, 임은경 옮김 / 명진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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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었다고 말할 수도 젊었다고 외칠 수도 없는 내 나이 50대 초반의 중년.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늘어난 거리를 완주해야 하는 시점에 저는 서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이 책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중년이 ‘완성’의 시점이라면 지금의 중년은 ‘수리’와 ‘정비’와 ‘수선’ 그리고 그것을 통한 ‘에너지 재충전’의 시점이라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p. 7)는 저자의 Prologue의 글을 가슴에 담고 이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중년으로 자긍심(self-esteem)을 가질 수 있는 21가지 조언은 각각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깔끔하고 친절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조언들은 중년인 저에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중 'Part 1. 우리는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들이다‘에 나오는 10가지 조언들은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성공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죠. 이전부터 하고 싶은 것들, 꿈을 이제는 꺼내야 합니다. 물론 꿈을 꺼낼 때는 “이게 무슨 돈이 되겠어?”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p. 29). 외적인 성공이 아니라 행복에 기준을 맞추면 중년에 가야할 길이 분명히 보일 것입니다. 중년이 되면 자꾸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안주하며 살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리고 체면을 너무 중시해서, 이 정도 나이며 이만한 차는 굴려야 하고 이정도의 집은 있어야 하며, 이런 저런 옷은 입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유물이 자신이 가치를 대변해 주지는 못합니다. 분명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실제 생활에는 자꾸 외적인 평균치, 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합니다. 이제는 내면으로 눈을 돌릴 때가 아닐까요? 저자가 준 10번째 조언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Self-esteem 10. 자신에게 친절히 하는 방법을 배울 것.” 저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누리고 이성적으로 행동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진정한 휴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엄격해야 할 것은 말과 행동에 관한 것이지, 내면의 솔직한 마음까지 억눌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옳습니다.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일수록 더욱 관심을 가지고 친절히 대해야 한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p. 105).

 

   ‘Part 2. 나이와 행복을 함께 초대하는 방법’에 나오는 11가지 조언들은 중년들의 실제적인 행동 지침으로 삼을 만합니다. “중년에는 신발 한 켤레가 더 필요하다”(운동이 꼭 필요하다), “촌스러움을 나누어 갖지 말라”(품격있는 중년의 스타일링이 필요하다), “입맛의 노예에서 해방되자”(입맛에 맞는 음식을 즐기되 소식하라), “중년에 생기는 미루기 습관”을 버리라. 하고 싶은 일을 지금 실천에 옮겨보자, “과거의 영광을 과시하는 사람일수록 남보다 빨리 늙는다”(제발, ‘왕년에 내가 ~ ’ 이런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말자), 등등. 오래간만에 내 삶을 돌아보는 독서를 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 “The 100 Simple Secrets of the Best Half of Life”보다 번역본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나이와 행복을 함께 초대하라>!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니븐은 세계적인 심리학자로 학술적인 연구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명쾌한 메시지로 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분인듯 합니다. 그의 다른 책에도 급관심이 생기네요. 좋은 책, 즐겁고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저처럼 중년의 문턱에 들어선 분들이 꼭 읽었으면 합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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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할 일이 많을수록 커진다 - 웃기는 의사 히르슈하우젠의 유쾌 발랄 활력 처방전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지음, 박민숙 옮김, 에리히 라우쉔바흐 그림 / 은행나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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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책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골랐습니다. 제가 지방간이 있다고 진단받았기 때문에, 웃기는 의사 히르슈하우젠이 쉽고 재미있게 간에 관해 뭔가를 가르쳐 줄 거라 기대한 것이죠. 그런데 왠 걸요. 머리말에 해당되는 글부터 심상치 않네요. “머리말은 머저리도 읽지 않는다.” 저는 머저리가 되지 않으려고 휙 건너뛰었습니다. 처음부터 공중화장실의 센서에 관한 유머로 시작하네요. ‘어, 이런 책이었어?’하며 실망했는데, 세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자의 유머에 슬슬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의 신부들이 오래 사는 이유는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고, 단순하고 협동적인 일상을 살기 때문이라나요. 그리고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일이다. 다만 단순해지지가 어려울 뿐.” 요즘 유행하는 개그가 생각납니다. ‘행복하기 어렵지 않아요. 단지 단순해지기만 하면 되요. 아침 몇 시에 일어날까 고민하지 않으면 되요. 아침에 일어나 뭘 먹을까 뭘 입을까 고민하지 않으면 되요. 오늘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지 않으면 되요. 늙어서 편히 살기 위해 얼마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되요. ~ ” 으이그! 과연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유머죠!

 

   저자는 아침에 일어나 침대 이불을 정리하지 않는 게 좋다고 넉살스레 말합니다. 이유는 매트리스가 차가와져 진드기가 아침부터 완전히 맛이 가 버리기 때문이라나요. 의사라서 그런지 병원과 의사에 관한 유머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병원을 찾아가는데, 이로 인해 의사가 아니라 대기실 사람들이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다 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대기실은 일종의 자조집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좋은 치료법인가요?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꼬고 있군요.

   코감기에 걸려 콧물이 흐를 때, 어떻게 처치해야 할까요? 히르슈하우젠은 사람들이 코를 풀고는 자신의 손수건에 묻은 내용물을 슬프게 들여다보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리고는 최고의 처방전을 내립니다. “땅바닥에 코를 푸는 것이다.”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바이러스가 추위와 무료함에 떨다가 결국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땅바닥에 코를 푸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심오한 이타주의가 되는 것이죠.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코 푸는 사람을 형편없는 인간으로 취급한다는 것! 하지만 당신은 코가 근질거리기 시작하면, 타의 모범이 되어 땅바닥에 코를 풀어 버릴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하!

   감기에 대한 다른 유머. 콧물이 멈추지 않으면 사람들이 의사에게 쪼르르 달려가는데, 그건 분명 잘못된 행동입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약사에게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왜냐하면 약사는 플라시보 효과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는 물건을 팔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기에 대해 이토록 많은 약이 존재하는 것은 그 중 어떤 약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 아닌가요? 그럼 어쩌라고?

   저자는 분명 코메디언입니다. 콜센터 전화연결 기다리기를 고대의 중국의 잔인한 고문과 연결시키고, 처음부터 닳아빠진 채 출시되는 스톤워시(Stone-washed) 청바지를 사 입는 것을 비꼽니다. 마지막에, 고급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거나 마실 때는 거들먹거릴 필요가 있다나요. 분명히 명심할 것은 몸에 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양은 여자는 반 잔, 남자는 한 잔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을 의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무엇이든 마실 때마다 항상 생각하라. 간은 할 일이 많아질수록 커진다.”

 

   유머야 말로 의학적으로 치료를 돕는 약이라고 믿는 의사 히르슈하우젠이 이 책에서 제대로 의사역할을 했네요. 이 책은 ‘유머 건강처방전’ 맞습니다. 영양제 링거(ringer) 한 병 맞은 것보다 낫습니다. 이 책, 사과가 읽으면 풋사과가 되고, 바나나가 읽으면 ‘바나나킥’이 되겠는데요?!? 딸 녀석에게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실내화’는 영어로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알아요?” “Excuse me(실내홥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딸 녀석에게 이런 생뚱맞은 유머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유쾌해집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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