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학교 : 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법 인생학교 How to 시리즈
올리버 제임스 지음, 김정희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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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느끼며 누리는 것이 아닐까? 오스카 와일드는 “살아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라고 갈파했다. 이 책에 따르면, 정서 건강은 유전자와 관련이 없다. 반면 살아온 삶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아기 때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는지, 어릴 때 누군가의 도움과 지지를 받아 시련을 극복했는지, 성년기에 극적인 경험으로 삶 자체를 선물로 여기게 되는 경험이 있는지, 마음 깊은 곳에서 영적 경험이 있는지가 정서 건강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올리버 제임스는 정서 건강을 위해 다섯 가지 요소를 다룬다. 첫째는 마음 챙김(Insightfulness)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 형성된 사고방식과 감정패턴을 따른다. 따라서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현재 속에서 과거를 정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 둘째는 현실에 충실한 삶(Living in the Present)이다. 취미생활이든 어떤 일의 프로젝트든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하는 활동은 정서를 건강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는 쌍방향 관계(Fluid, Two-Way Relationships)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거나 반대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자기 자신은 바꿀 수 있다. 넷째는 일의 진정성(Authenticity in our Careers)이다. 자기의 일에 만족할 줄 알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대개 평범하게 사는 자들이 크게 성공한 사람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저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나라들의 문화적 관습을 소개한다. 그것은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다. 다섯째는 육아 활동에서의 놀이성과 쾌활함(Playfulness and Vivacity in Parenting)이다. 자녀들을 양육할 때 놀이와 쾌활함을 심어주면 그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해서 활기와 기쁨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정서적으로 얼마나 건강한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정서 건강을 위해 힘쓰는 일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렇다. 성공의 목표를 너무 높게 세우지 말아야 한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도 많이 겪고 인간관계에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정서 상태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면 잘 극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몇 배 힘들 과정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정서 건강을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히 좋아질 것이다.

 

이 책에서 추천하고 있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걸어온 정서 나무 위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아야겠다. 저자도 영적 훈련,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과 충분한 수면이 정서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어째든 정서건강은 모든 개인이 풀어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 추천하고 있는 도서 중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이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와 <건전한 사회>를 찜해 놓는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시리즈의 책들을 여러권 읽었다. 삶의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고마운 책들이다. 이 책도 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실제적인 방법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책 말미에 있는 ‘찾아보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를 원하는 자들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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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
이영진 지음 / 샘솟는기쁨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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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란 무엇인가? 나는 교회에서 동물은 육체만 있고 영혼은 없는 반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존재(이분설)라고 배웠다. 청년시절에는 인간을 육과 영과 혼으로 나눌 수 있다는 주장(삼분설)도 접했다. 도대체 영과 혼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혼’은 인간으로서 독특한 활동을 하는 정신적 영역이며, ‘영’은 신(神)과 만나는 특별한 존재영역인가? 성서는 이분설과 삼분설, 그 어떠한 주장도 명쾌하게 지지하지 않는다. 항상 궁금했던 차에 이영진 교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데 아니마(영혼에 관하여)>를 부분 발췌하여 해석하고 설명한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데 아니마>를 알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로서 스승의 이원론을 겨냥해 이 책을 썼단다. 관념론의 창시자 플라톤은 비물질적이고 절대적인 참 실재로서의 ‘이데아’와 물질적이고 상대적인 이데아의 그림자인 ‘모상’을 나누었다. 그런데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원론에 해체당한 영혼의 진정한 형상을 복원하려고 했다. 그는 영혼(프쉬케)을 일종의 기능으로 이해하였다. 영혼이 있기에 운동능력, 욕구 능력, 사고능력, 상상능력, 윤리능력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살아있는 영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 하야’를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인간에게만 있는 영혼의 기능은 아마도 윤리능력일 것이다.

 

이영진 교수는 <데 아니마>에서 영혼의 다양한 기능적 능력을 하나씩 발췌하여 설명한 뒤 이원론, 유물론, 유심론, 일체론, 심리론, 뇌이론 등 다양한 심신 이론들을 소개한다. 자연과학적 사고에 젖어있는 현대인은 너무 쉽게 이런 세계관들을 전제로 모든 사물을 바라본다. 이런 이론들은 플라톤의 이원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정신은 육체와 분리된 것인가 합한 것인가’라는 틀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능적 영혼 이론은 ‘정신은 육체의 결과인가 아니면 육체가 정신의 결과인가’라는 인과의 틀로 돌려놓았다. 그래서 이영진 교수는 마태복음22장 37절을 “네 심장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사역(私譯)한다. 그리고 “심장, 영혼, 마음, 힘을 사랑으로 향하는데 있어 그 장소로 결코 특정 지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영+혼+육’ 혹은 ‘영혼+육’ 혹은 ‘영+혼육’을 잘라서 규정할 수 없었던 이유다”(p. 213)라고 단언한다.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데 아니마>를 통해 새롭게 배운 통찰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너무 플라톤의 이원론에 함몰되어 사고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그래서 식물이나 동물을 영혼이 없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닐까? 또한 기독교의 구원에 관련해서 육신과 관련된 것들을 너무 무시한 것은 아닐까? 인간에게서 육체와 영혼은 과연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육체가 없는 영혼은 귀신이며 영혼이 없는 육체는 시체에 불과한 것으로, 그 어느 것도 결코 인간이 아니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길은 고달프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길은 행복하다”(p. 223)는 이영진 교수의 평가에 동의한다. 몸과 영혼은 하나다. 이원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길 것이다. 이 멋진 책은 영혼에 관해 깊은 사유(思惟)를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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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말하기 - 예일대가 주목한 말하기 교과서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이희수 옮김 / 토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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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앞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만 성격이 소심해서인지 자신이 없다. 이런 나에게 저명한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이 쓴 <힘있는 말하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원제목은 <말재주: 달변은 어떻게 작동하는가(The Gift of the Gab: How Eloquence Works)>이다. 저자는 누구나 달변의 재능을 타고난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달변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달변의 인간, 호모 엘로퀀스(Home Eloquence)”인 것이다(p. 279).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나 사투리 때문에 안 된다고, 아니면 할 말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란다. 저자는 “위대한 연설가들도 처음에는 다 삼류 연설가였다”(랠프 왈도 에머슨)는 말을 인용하며 독자들을 격려한다(p. 284). 이 책에 따르면, 달변의 다섯 가지 규칙이 있다(p. 34). (1) 착상: 말하고 싶은 것을 고르기, (2) 배열: 어떤 순서로 말할지 정하기, (3) 표현: 어떤 식으로 말할지 선택하기, (4) 암기: 말하고 싶은 것을 외우기, (5) 발표: 실제로 말하기. 과거의 수사학에서는 주로 앞의 세 항목에 집중했다면, 저자는 반대로 뒤의 두 항목에 집중한다. 확실히 연설하는데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는 연설할 때 먼저 염두에 둘 것들을 자세하게 알려준다(chapter4~6). 주어진 시간, 연설할 장소(그곳은 사운드 상태도 포함), 청중 등. 중간 중간 들어있는 interlude는 그야말로 ‘꿀팁’이다. 예를 들어, interlude7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청중 설득의 세 가지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pp. 82~83). (1) 로고스(logos): 이성을 통한 설득, (2) 에토스(ethos): 강연자의 성격을 통한 설득, (3) 파토스(pathos): 감정적인 호소. 달변은 이 세 가지를 적절히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대가들의 스피치 비결 여섯 가지를 말한다(chapter10~15). 이 비결들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의 선거 승리 연설’을 예로 든다. 그 다음 연설의 효과를 위해 실제적인 조언들을 들려준다(chapter16~24),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말하는 법, 말의 속도 조절 법, 억양으로 운율을 만드는 법, 리드미컬하게 목소리를 사용하는 법, 심지어 긴장 푸는 법과 신경과민을 용기로 승화시키는 법까지! 부록에 있는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승리 연설’과 ‘마틴 루터 킹의 워싱턴 대행진 연설’의 원문과 번역문은 최고의 보너스다.

 

이런 실용적인 책은 한번 읽고 나면 시시해지는 법인데,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새롭게 얻을 것이 많은 책이다. 부록의 명연설문도 꼼꼼히 공부해보고 싶다. ‘호모 엘로퀀스’로서 반드시 연구하고 습득해야 한다. 웅변을 즐기는 사람은 “세상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인 힘을 행사한다”(처칠)는 말을 새겨본다. 수사학과 웅변술이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중요한 분야였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지도자는 대중 앞에서 영향력 있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다시 꼼꼼히 읽으며 연설을 통해서 만들 수 있는 감동과 설득의 법칙을 더 많이 습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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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예배, 노동 - 근무시간도 예배시간이다
벤 위더링턴 3세 지음, 오찬규 옮김 / 넥서스CROSS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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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우리가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일에 대한 성경적인 시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이 우리의 소명이 되고 예배가 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일을 ‘노동’이라고 번역한 것이 자꾸 거슬렸다. 왜냐하면 ‘노동(勞動)’은 문자적으로 ‘괴로운 움직임’이란 뜻으로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인간 타락 이전에도 일은 있었다. 단지 인간의 타락으로 일은 더 큰 고통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는 ‘노동’보다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듯싶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존재의 일부다.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행하는가’(doing)보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being)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doing과 'being'이 상호의존적이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에는 ’됨(being)‘만큼이나 많은 양의 ’함(doing)‘도 포함된다(p. 37). 또한 우리가 하는 일이 곧 우리 존재의 일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그것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일치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의 윤리에서 이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타인에게 덕이 되는지,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지’(p. 45) 질문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의 직업은 ‘가장 큰 계명’을 지키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것에 덧붙여 우리의 직업은 ‘지상대명령’을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맺음말에서 저자가 인용한 미로슬파브 볼프의 글이 오래 뇌리에 남는다. “근대 이후 서양이 노동에 집착하게 된 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프로테스탄트의 노동윤리가 가져온 결과라기보다는 자기실현과 그것을 인증하려는데 심취한 결과”(p. 246)인 것이다. 그렇다. 일 그 자체는 저주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너무 극단적인 개인주의자가 되었고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우리는 일중독자가 되어 인생을 파고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하게 일하고 놀고 예배한다면, 일에 대한 분명한 경계선도 생길 것이고, 우리는 잘못된 욕망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책, 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세우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일에 대한 신학을 정립하며, 소명과 직업의 차이도 잘 설명하고 있다. 한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나는 왜 일하는지, 나의 직업은 '가장 큰 계명(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지상대명령‘에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또 나는 게으르지 않는지, 반대로 일중독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이런 저런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일의 목적과 윤리를 놓치지 말고, 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 잡힌 자세로 주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제자로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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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언어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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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용규는 철학의 본분은 사람들로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변화하도록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상아탑에 갇힌 철학이 아니라 삶과 생생하게 연결된 철학을 위해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모색해왔다. 특히 이번에 펴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2권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제 1권에서는 혁명과 이데올로기를 다루었다. <안티고네>를 소개하면서 “빼기”의 방식으로 비폭력 혁명을 이루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다루면서 인간의 이성에만 의존해 역사를 바꾸려 한다면 이데올로기에 매몰된다고 경고한다. 오히려 인간애가 있어야 더 나은 인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1권을 읽으면서 때로는 격하게 동의했다. 1권 덕에 2권은 더 큰 기대를 가지고 대했다. 그리고 김용규는 그런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판치는 이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의 삶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과 관련해 ‘시간’과 ‘언어’는 꼭 깊이 다루어야 할 주제임이 분명하다. ‘시간’ 편에서는 사뮈엘 베케트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낭독 공연을 소개한다. 그리고는 시간의 두 얼굴에 대해 강연한다. 냉엄하게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 ‘크로노스(chromos)’는 모든 인간의 소망을 뿌리치고 오직 죽음을 향해 빠르게 날아갈 뿐이다. ‘크로노스’에서는 개인의 자기 정체성과 국가의 역사의식을 형성할 수 없다. 인간은 ‘출구없음’(No Exit)‘으로 좌절하며 허무주의에 빠질 뿐이다.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설명하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제7의 봉인>을 언급한다. 결국 이 두 작품은 에피쿠로스에게 종려나무를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히지만 시간은 ‘크로노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물리적 시간의 파괴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한평생 한손에 성서를 다른 손에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를 들고 살았던 기독교 신학의 거장이다. 그는 히브리적 시간개념과 그리스적 시간개념을 ‘카이로스(kairos)’라는 단어를 통해 하나로 묶었다. 이것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이다.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인 사건과 시간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 기억이 인간을 구원하고 인류의 삶과 역사를 새롭게 열 수 있을 것이다. 김용규는 키에르케고르와 오스카 쿨만의 사상을 넘나들며 카이로스의 삶을 살 것을 말한다.

 

‘언어’ 편에서는 장 지로두의 희곡 <벨락의 아폴로> 낭독 공연을 보여주며, ‘불의 언어’와 ‘물의 언어’를 소개한다. ‘불의 언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고 ‘물의 언어’는 허구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불의 언어가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불의 언어만으로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저자의 이번 책,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2권은 그 기획이 참신하다. 낭독공연, 저자의 강연, 그리고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철학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소개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인상적이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객관적인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진지하게 묻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결단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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