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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예배, 노동 - 근무시간도 예배시간이다
벤 위더링턴 3세 지음, 오찬규 옮김 / 넥서스CROSS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일은
우리가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일에 대한 성경적인 시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이 우리의 소명이 되고
예배가 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일을 ‘노동’이라고 번역한 것이 자꾸 거슬렸다. 왜냐하면 ‘노동(勞動)’은 문자적으로
‘괴로운 움직임’이란 뜻으로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인간 타락 이전에도 일은 있었다.
단지 인간의 타락으로 일은 더 큰 고통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는 ‘노동’보다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듯싶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존재의 일부다.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행하는가’(doing)보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being)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doing과 'being'이 상호의존적이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에는 ’됨(being)‘만큼이나
많은 양의 ’함(doing)‘도 포함된다(p. 37). 또한 우리가 하는 일이 곧 우리 존재의 일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그것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일치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의 윤리에서 이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타인에게 덕이 되는지,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지’(p. 45) 질문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의 직업은 ‘가장 큰 계명’을 지키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것에 덧붙여 우리의 직업은
‘지상대명령’을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맺음말에서
저자가 인용한 미로슬파브 볼프의 글이 오래 뇌리에 남는다. “근대 이후 서양이 노동에 집착하게 된 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프로테스탄트의
노동윤리가 가져온 결과라기보다는 자기실현과 그것을 인증하려는데 심취한 결과”(p. 246)인 것이다. 그렇다. 일 그 자체는 저주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너무 극단적인 개인주의자가 되었고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우리는
일중독자가 되어 인생을 파고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하게 일하고 놀고 예배한다면, 일에 대한 분명한 경계선도 생길 것이고, 우리는 잘못된 욕망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책, 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세우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일에 대한 신학을 정립하며, 소명과 직업의 차이도 잘 설명하고 있다.
한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나는 왜 일하는지, 나의 직업은 '가장 큰 계명(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지상대명령‘에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또 나는 게으르지 않는지, 반대로 일중독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이런 저런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일의 목적과 윤리를 놓치지 말고,
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 잡힌 자세로 주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제자로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