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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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된 신간 책에 저자 박준 시인의 싸인.

"같이 울어요, 우리"

 

같이 울자고 했다. 눈물 쏟으며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라잉이 아니라 트럼블링. 울림을 함께 하자는 뜻일 테다. 함께 울리는 것은 교감이고 공명으로 퍼져나감을 말한다. 에밀레종이 타종되면 종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종소리의 여운이 길게 길게 이어져서 퍼져 나가듯이 그 진동을 내 심장의 진동과 맞추는 것이 바로 울림이다. 시인이 시로써 울게 할 때, 그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진동자가 심장 어느 곳에 하나 박혀서 함께 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각박한 도시에 먹고 사느라 오늘도 삶의 온갖 굳은 일로 심신이 지쳐 나가떨어지고, 내 심장의 진동자는 나날이 쪼그라들어 먹고사는 일 이외에는 어느 것도 함께 떨어 본 적이 없는 불감증의 삶은 비극이다. 누군가 옆에서 종소리를 내며 경고성 고주파를 내지만 전혀 울리지 않는다. 삶의 감도는 떨어지고, 자본의 감도는 더 올라간다. 어릴 적에 가졌던 꿈은 온데간데없고 상상력이라고는 실종당해서 돈 버는 일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넓은 아파트 평수와 고급진 외제차. 목에 걸린 굵고 긴 금목걸이가 내 삶의 전부라고 치부해도 된다만은, 그러나 심장은 점점 굳어진다. 감도 제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울어도 울지 못하고 떨어도 떨 수 없다면 과연 우리 살아있나? 생명이란 모름지기 다 떨림이 아니었던가?

 

역시 그는 시인이었다. 가끔 시인의 조건이 글을 잘 쓰는, 즉 문장의 기교가 월등한 재주를 가진 문장 기술자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기술자만은 아닐 것이다. 우선 먼저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감도와 감수성이 출중하다는 점이다. 그다음은 글쓰기겠지만 아무리 글이 좋아도 이심이 전심으로 오지 않는다면 그저 문장으로 그친다. 함께 울지 못하는 문장은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인의 감수성은 곧 존재의 섬세함이다. 글이 상당히 담백하다 못해 대부분 짧은 단문이지만 그래서일까. 짧을수록 더 울림이 크다. 시의 압축미가 서술형 에세이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탓도 있을 것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백날 울어봐야 소용도 없다. 그러나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더라도, 울지 못하면 추석날 고속도로에서 고향 한번 가겠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도맥경화(도로라서 도맥경화라 씀)의 그 답답함을 견디겠는가? 운다는 것은 마음의 흐름에 대한 길을 열어 놓는 일이다. 막혀 있으면 답답하고 체증이 생기고 삶의 시간이 고여서 정체되기 일쑤이다. 즉 무감각은 바로 이런 정체와 동맥이 경화되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이치이며, 점점 막혀서 고사되고 말 것이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 떨려야 할 때 떨지 못할 때도 불행한 일. 고인 물이 썩듯이 마음에 고인 물도 썩는다. 이 썩는다는 것이 곧 불행이 아닐까. 감수성의 언어는 바로 이런 막힘을 뚫어 주는 소재구와도 같다.

 

그런데 시인의 글이 잔잔하다. 격랑의 계곡을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글의 통로가 모세혈관을 지나는 것처럼 섬세하게 흐른다. 무슨 거창한 이론의 집대성이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의 작은 부분의 세세함의 감정이 시인의 글로써는 딱들어 맞는 기분이랄까. 역시 사회학자의 글과 문학의 시인의 글은 문장의 톤과 색채가 다르구나를 느낀다. 문장에도 시적인 운율이 있다. 한 문장마다 낭송하듯이 읽어 내렸다. 읽다 보면 운율이 생기는 이치는 시인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재미이다. 섬세하지 운율이 오르지 그러면 여기에 멜로디만 붙여도 노래하듯이 읽을 수 있겠다. 역시 시인의 글은 눈으로 읽지 말로 입으로 읽는 게 맞는 갑다.

 

이 책은 알라딘 친구분이 보내주셨다. 한 달 전쯤 미리 예약해두었던 책이라고 언질 해준다. 참 고맙다는 것의 이상을 느끼는 부분이다. 시인의 디테일한 마음을 함께 울어야만이 느낄 수 있게 했다는 것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시인의 책도, 보내주는 분의 마음도 오로지 먹고사는 일 이외에서 벌어지는 떨림이 아닐까. 삶의 테두리 밖의 현상을 만나는 기분이다. 느낌을 리뷰로 쓰고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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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05 1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시(詩)리뷰를 쓰는 것은 제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한 편 한 편의 흐름을 읽으면서도 각 작품의 미세한 움직임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유레카님의 리뷰를 읽으니, 시집과 사진집은 통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개별 의미를 찾는 다는 면에서요. 유레카님 덕분에 감상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게 됩니다.^^:

yureka01 2017-07-06 08:43   좋아요 2 | URL
시집도 자주 봐야 늘어요..ㅎㅎㅎㅎ
제가 무척 부드러운 걸 좋아해서 철학이나 경제 이런 쪽은 읽지를 못하죠.

맞습니다..사진은 이미지의 언어.시는 텍스트의 언어..형태는 다르나 속성은 비슷합니다^^.

cyrus 2017-07-05 14: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눈가를 촉촉하게 해주는 감동과 슬픔은 마음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눈물이 나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yureka01 2017-07-06 08:48   좋아요 2 | URL
물론이죠.정신 건강~~이 조치가 못하면 눈물도 안납니다...ㅎㅎㅎㅎ

2017-07-05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6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7-06 0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울음에 내 심장의 진동이 교감하며 공명을 경험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내 울음에 그런 위로를 받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봅니다

어둡고 슬프고 부끄러운 감정을 차마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 누군가가 보이네요..
자세히 보니.. 저랑 닮은것 같아요

yureka01 2017-07-06 08:46   좋아요 2 | URL
말은 입에서 태어나서 귀에서 죽는다고 하죠..
듣는 것과 보는 것은 공통점이 입력한다는 점이죠..
안테나 주파수를 맞추면 잘 듣기고 보입니다^^..

강옥 2017-07-06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생각하면.... 쓸쓸해져요.
같이 울어줄 순 없어도 들어주기만 해도 어딘가요.
요즘 사람들은 모두 지 얘기만 하려고 하지 남의 얘긴 안 들으려고 해요 ㅠ.ㅠ
모두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고 있으면서 정작 누군가의 진심을 들으려고는 하는지?

yureka01 2017-07-06 11:33   좋아요 1 | URL
들어 줄 사람이 없다면 먼저 듣겠다면 되겠죠..ㅎㅎㅎㅎ
들어주다보면 또 반대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 주겠죠..

들어서 덜어 내는 것.^^..요즘 꼭 필요해요..ㅎㅎㅎ

그러고 보니 알라딘에서 포스팅하는거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이 다 들어주시는 분이라는거~~~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7-07-06 2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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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2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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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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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23: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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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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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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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21: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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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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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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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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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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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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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9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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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0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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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2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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