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취미가 있는 사람 치고 여행을 싫어 할리가 없습니다. 반대로 사진 찍는 사람 중에 여행을 싫어한다면 그 사람은 사진 찍는 취미도 없이 사진 찍는 사람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사진은 특히나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모든 피사체가 사진을 찍는 흥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에 있어서 소재의 고갈과 매너리즘이라는 복병은 늘 사진에서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이기도 합니다. 카메라 들고 사진 찍기 시작하는 초보 때부터 찾아오는 난관이 하나 있습니다. 무얼 찍어야 하나?라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비싸게 들였으니 이제 찍으러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글쎄,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찍어 봅니다. 카메라 들면 닥치는대로 찍는다가 맞을 겁니다. 왜냐면 그저 카메라는 셔터만 누르면 화상이 메모리에 저장되니까요. 카메라부터 먼저 사지 사진 책을 먼저 사서 공부하고 사진 찍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테스트 삼아, 혹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찍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찍다 보면 소재의 고갈이란 벽에 딱 부딪히게 되거든요. 여기서 더 나아가 점점 빠져 들게 되면, 남들처럼 일출을 찍겠다고 겨울밤 배낭을 메고 추위에 떨어가며 새벽 산도 오르고 하루 6시간 동안 운전해서 서해의 일몰을 찍겠다고 찾아갑니다. 밤새워 카메라 조리개를 개방해 놓고 별의 궤적을 쫓아갑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원하는 장면을 담을 때까지 몇 번이고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렇게 풍경과 자연의 최적의 조건에 맞추려고 무리해서라도 강행합니다. 그렇게 한두 번 찍어 가져온 사진들. 그런데 그것조차도 매번일 수가 없죠. 계속하다 보면 질리기 또 서서히 시작합니다. 처음의 감동은 서서히 줄어들어 흡사 마약 환자처럼 더더 강력한 마취 효과를 내는듯한 감동을 바라며 산천초목을 철철이 쫓아갑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몇 해 잠시뿐. 심드렁한 시기가 딱 오죠. 더욱더 강력한 임팩트를 원하게 됩니다. 인간은 참 오묘한 동물입니다. 이내 식상함과 진부함이 새로운 무언가의 소재를 찾도록 설계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나오는 질문이, 무얼 찍어야 하지? 당최 찍을 것이 없다고 한탄하게 됩니다. 이것도 찍어도, 저것도 찍어도 사진의 처음 감동은 사라지고 더 강력한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을 찾아 보지만 안 보입니다. 찍을 만한 거리가 똑떨어집니다. 이른바 소재주의의 늪에 빠진 것이죠. 사진은 반드시 현실적인 피사체가 있어야 합니다. 철저히 피사체에 종속된 것이기 때문에 피사체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찍는다? 라면 그건 그림이지 사진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진을 찍던 분들 중에 일부 그림 재능이 있는 분들이 아예 사진을 접고 그림으로 나가는 경우가 그래서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 즉 상상을 찍겠다 하면 그림을 그리면 되거든요. 이도 아니라면 더 이상 소재 거리를 발견하기 어렵거나 혹은 식상한 소재만 보인다면 사진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마 사진 3 - 7 년쯤 넘어가면 거의 카메라 놓고 사진을 안 찍고 떠나는 경우도 그래서 생기게 되거든요. 사진을 찍을 새로운 소재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사진의 흥미는 나날이 감소하고 사진 찍으러 나가야 할 충동이 일어날 소재가 없으니 지난날의 사진은 과거의 한때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이게 사진의 일반적인 행태이자 사진적인 자세와 태도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계속 감동의 감도를 더더욱 높이고자 하는 부류가 생겨납니다. 이는 많지 않습니다만, 국내에서는 더 이상 볼 거리도 없고 식상하니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죠. 또 카메라를 처음 들 때의 감동이 해외에서 발견됩니다. 인도로, 동남아로 남들이 가보지 못한 오지로 들어가서 남들이 못 찍는 사진을 건져 올리려고 막대한 비용을 치릅니다. 그런 사진은 일반적으로 만나는 사진이 아니길래 사진도 팔아먹을 수 있을 만하게 요청도 들어오게 됩니다. 신났죠. 전문 프로 작가들처럼 사진으로 돈도 벌 수 있으니까요. 그쯤 되면 해외에서 찍어온 사진들로 전시회도 기획하고 작가 타이틀도 달게 됩니다. 해외 사진으로 국내에서는 전혀 보기 어려운 사진으로 전시회도 종종 열게 됩니다. 또 그런 사진을 추려 모아서 사진집도 발간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면 일반적으로도 작가 타이틀에 걸맞은 대접도 받게 되고 등등등..... 여행에 대한 일가견이 생길 법도 한 여행 경력이 쌓입니다. 전 지구적으로 다니려 하게 될 것이고, 남들이 특히 가기 어려운 곳. 아프리카나 남미, 혹은 북극해와 가까운 핀란드와 노르웨이도 가보고 그린란드도 가게 됩니다. 그런 사진은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니 사진집도 팔고 여행 사진을 찍어 달라는 잡지사의 의뢰도 받고 원고료도 받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또 새로운 지구 어딘가로 떠나게 됩니다. 돈만 주고서 어디 가서 무슨 사진 찍어 달라고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계약서 쓰고 그 요구에 맞는 사진을 담아 오는 일도 사진에서는 신나는 분야가 됩니다. 그렇게 다녀온 곳에 사진도 찍어 온 걸로 책을 냅니다. 여행이란 무엇인지 온갖 수식어를 달고서!~그래서일까요.. 한때 여행 에세이를 쓰는 바람이 불 정도로 전 지구적인 사진을 찍어 와서 글을 덧대고 책으로 냅니다. 더 나아가서 시베리아 횡단기까지 나오고 남미 자전거 투어도 나오고 북미 대륙 자전거 여행기도 나오고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곳의 기록들을 근사하게 글로 써냅니다. 어디 가서 어디로 갔다는 여행 루트를 쓴 게 여행기로 나오거든요. 젊은이들아, 국내에서 머물지 말고 견문을 넓히고 해외의 신 세계를 경험하고 진취적이고 등등등 이런 한비야 같은 인물의 여행은 도전이라는 예찬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무르익습니다. 그렇게 실제로도 많이 나가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 옵니다. 일전에 언급한 여행인지 관광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일단은 해외로 나가죠.

 

그래서요? 그래서 찍어 왔습니다만, 그래서요? 그런 사진조차도 식상하고 지루해지는 때가 또 찾아옵니다. 그럼 또 어떻할 것입니까. 아니 지구의 모든 소재가 더 이상 식상해지면 우주로 나갈 겁니까?  네 앞에서 언급했죠. 인간은 지루함을 못 견뎌하게 설계되었다고 했거든요. 또 마찬가지로 이게 인간의 생리적 현상이거든요. 여행이란 다니면 다닐수록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요구하고 그 강도의 점성을 더 끈적이게 하도록 요구하거든요. 더 강려크한 곳으로, 고생이 점점 심해지는, 더 악조건의 기후조차 나를 막지 못하는, 중독증이거든요. 그래서 더 무리한 곳으로 갑니다. 혹여 테러 위협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더 강력한 곳으로 가다 보면 아예 전쟁지로 들어가서 종군기자처럼 카메라를 들고 분쟁지역까지 나갑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인간의 처절한 고통을 카메라로 담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종군 작가로 등극도 합니다. 네 이야기야 전쟁의 위험과 인간의 고통 어쩌고저쩌고 사진으로 널리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사진의 강도를 더 강하게 나온 결과물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사진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는 않는데도 말이죠. 혹시 압니까.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찍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희박한 확률과 마주할 행운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비행기를 타고 지구 구석구석으로 가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사진 찍으러 지구를 돌아다니다간 어느 여자가 좋아할는지. 그렇다고 매일 출퇴근하며 다녀야 할 고정된 장소의 직장도 가지지 않겠죠. 그야말로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수전 손택의 사진에 대하여" 라는 사진 문화 비평 저서에 실랄하게 까댔던 이유였습니다.

 

네 그렇게 몇 년, 십 년 지나다 보면 시간도 참 잘 흐르죠. 하지만 이것도 젊을 때나 가능합니다. 나이 들어가서 힘 달리고 근성 떨어지고 작품 의뢰도 예전 같지도 않고 작가들도 너무 많이 생기고 주문이 줄어들어 돈도 떨어지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겠죠. 여행 사진 책 몇 권은 마치 자신의 인생에서 가슴에 달려진 훈장 같은 것으로 마치, 공산권 국가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는 병사가 가슴에 훈장 메달을 과도하게 주렁주렁 매달고 걸어가는 공허감이 찾아오게 됩니다. 결국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묻는 시간이 꼭 온다는 사실입니다. 지나간 영화의 필름처럼 지나온 여행의 시간의 궤적에 따라 사진 한 장 한 장이 마치 24컷 영사기로 돌아가는 과거의 영광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진의 소재주의에 빠지면 공허함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 흔하디흔한 소재에서 사상의 이론을 뽑아내지 못하는 거라면 늘 소재의 고갈은 자신의 시간을 담보로 내놔야 한다는 사실이거든요. 어디 가서 무슨 사진을 찍어 와야 할 기회비용의 시간 소비. 이게 청춘의 사과를 갉아먹는 벌레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자문해봐야죠. 그래서 소재주의에 빠지면 사진은 그때부터 더 강력한 소재를 찾던가, 아니면 카메라를 놓고 사진과 멀어지는 이유입니다.사진에서는 기능사가 있고 작가가 있고 예술가가 있습니다. 대부분 초보들은 기능사에서 머물고 말죠. 네 기능. 기예. 사진의 기술적이 부분에 우선 치중하는 이유가 사진이라는 것은 카메라에 의한 결과물이니 사진은 추상적이고 카메라는 현실적이거든요. 카메라는 만져질 수 있고 사진은 형체가 없으니 보는 것만 되거든요. 그러니 기능은 어디까지나 유물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는 가업을 이룬다고 하죠. 작가는 밥벌이가 곧 그의 사진의 내면과 결합된 것입니다. 돈벌이와 사진의 이상을 함께 가져가고 하나의 새로운 사진 세계를 열어가는 직업군입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기능보다 밥벌이와 결부된 내면보다 사진을 예술적으로 만들고 이 사진의 예술에서 자기만의 창작된 세계를 사진으로 표현하거든요. 이렇게 다릅니다. 아마 지금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가 기술자격증에도 사진 기능사라는 자격증이 있거든요. 사진 기능사와 예술가는 상당히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진은 예술의 범주에 포함됩니다만, 기능적인 사진을 가지고 예술론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능적인 부분에 매달린 사진 애호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을 대부분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인문학이 포함됩니다. 인문학은 철학에 포함될 것이고요. 즉, 자신의 사진이 이 거대한 인문학적인 담론의 한 부분으로써 영상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 이 표현에서 자신의 사상과 주장을 영상 이미지로 표출해내는 것. 이것이 사진 예술이거든요. 따라서 예술의 완성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시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 예술 지상주의자들처럼 예술이 세계를 창조하는 새로운 가치의 이념을 만들어주고 낡은 세계를 이별하여 새로운 가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최대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게 어쩌면 인간이 인간으로써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자 행복이 아닌가 합니다. 이미지를 통한 가치의 인문학적인 창조와 정립이 인간을 항상 이상향을 그리게 만듭니다. 그런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한 방법론적으로도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성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룩된 가치의 이념 사회. 예술이 풍부해지고 윤택해질 수 있는 사회를 예술가들이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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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6-12-15 0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사진은 여전히 ‘기록하기‘와 ‘추억하기‘ 라 전쟁지역까지 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폰카 밖에 없어 더더욱 안심이 되구요 ㅎㅎ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사진에 철학이 들어갈 때 비로소 예술이 되고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말씀,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yureka01 2016-12-15 08:56   좋아요 0 | URL
어느 분야나 예능과 예술이 다르거든요....
여행도 일종의 자기 가치관에 따른 여행이 없다면 그저 관광용 놀이가 되죠..
물론 놀이라고 나쁜 것은 절대 아니기도 합니다~~^^..

낭만인생 2016-12-15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가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같습니다. 저는 일출 찍으러 다니는 수준인 것 같은데.. 그것마자도 귀찮아서 안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일상의 평범함을 성찰하는 사진을 찍고 싶네요.. 체력도 안되구요... 눈물날 만큼 감동적인 글입니다.

yureka01 2016-12-15 10:10   좋아요 0 | URL
현실의 피사체라는 사진을 통하여 사유로 나가야 사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일출. 일몰등의 풍경은 소재일 뿐이거든요.
다만, 풍경사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더 깊고 넓게 들어가야할 예술의 세계에서 단지 풍경에만 머물러 있기엔 아깝거든요.

AgalmA 2016-12-1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비회원 좋아요) 도합 좋아요 두 번 눌렀음요. 그럴만큼 절절했습니다^^b

yureka01 2016-12-16 00:24   좋아요 1 | URL
소재가 없으면 찍을 거리가 없을때가 제일 문제죠.
그런데 그 소재를 자아와 지식과 이성과 감성으로 뽑아내야 하는 것이 어렵죠.

그런 말이 있더군요.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어도 누구나 할 수 없다.ㅎㅎㅎ명언이더군요.

아무게의 누구..참 부러운 녀석입니다 ㅋ

강옥 2016-12-17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철학으로 사진을 찍는 분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
유명 출사지에 떼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90% 이상이지 싶어요.
해외 여행 사진도 ‘나도 이런거 보고 왔다‘ 수준이죠 뭐.
저처럼 해외 나가서 사진이라도 건져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게고.
대중가요와 고전음악이 다르듯이,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이 다르듯이
정체성도 다르고 애호가의 계층도 다르겠지요.
90%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저변인구로써 사진계를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yureka01 2016-12-17 14:11   좋아요 0 | URL
네 떼지어 다녀도,해외여행에서 사진 찍어도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는,
누가 그러잖아요.
여기서 한걸음 더 들어가보겠습니다..라는 말처럼..
조금만 더 들어가 보는 생각과 사유. 이게 아쉽죠...

이젠 사진계라는 것도 무의미해졌나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