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외근으로 내내 운전했다. 고속도로의
뜨거운 열기는 느낄 사이도 없이, 빨리 업무 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날이었다. 밥도 못 먹은 터라서 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마침 한 켠에 마련된 책 코너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날 수 없는 것처럼 바쁜 와중에 대충 훗고 딱 집어 든 책이 "낯설지만 그리운
여행"이었다.
전국을 자전거로 일주한 청년이 쓴 책이다. 걸어서 국토를
종단하든가, 아니면 자전거 타고 전국방방 곡곡을 홀로 페달을 밟다 보면, 그러니까, 직접 두발로 걷든 달리든, 가다 보면 꼭 책 한권 낼만큼
자신에게 해야 할,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글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책 한 권 내시고 싶은 분이라면, 꼭 걷든가 달리던가
하시라. 땀을 흘리고 직접 움직이는 노고가 스스로를 발견하게 돌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카메라와 함께라면 더 많은 스토리가 나올 것이
뻔하다. 그게 사진이 주는 힘이니까. 음.... 나도 언젠가 한번 걷기는 걸어야 할 텐데, 카메라와 함께....
퇴근하고 딸아이 기말시험 준비 차에 옆에 앉아서 나도 마치
수험생이 된 기분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넌 글씨를 쓰거라. 아비는 떡을 썰테니라는 한석봉 어머님의 시추에이션을 닮은 것처럼 속독으로
읽었다. 글의 문장은 상당히 가볍고 빨리 읽혔다. 이 책은 저자의 이력은 전혀 알 수는 없었으나, 글의 문장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이 자유..
좋다. 달린다. 여기가 어디다, 누구를 만났다, 어떻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는 식의 순수한 기행문의 성격으로 자전거 여행이라는 주제가 으레
그러하듯이 에피소드들로 가득했다. 드문드문 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유람하는 것인지에 대한 자문과 자답은 몇줄 나오지도 않았어도 그 몇 줄의
울림은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을 테다.
물론 힘들다. 하루 몇십 킬로미터나 자전거를 타고 엉덩이에
굳은 살이 박힐만 하게 달리고 또 달린다. 그 길 위에서 저자의 페달질은 쉼 없었을 테고, 그렇게 그 길 위에서의 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길의
과정을 따라 가는 것이었다. 결과는 늘 도돌이표처럼 돌고 돌겠지만 삶이란 이미 달리는 페달의 힘겨움이 지나치는 풍경에 진득한 땀을 흩뿌리는
작업은 아니었겠는가 싶었다.
젊은 친구의 자전거 자유가 참 그리운 것이 무엇인가를 두
바퀴 위에 올려놓고 굴리는 여행이었다. 가다가 도저히 다리가 아파 자전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지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의 자유였던 것이다.
작은 카메라에 담긴 한 컷 한 컷의 기록이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와 연관이 된 것도 다 이런 여행의 자유가 주는 묘미였을 것이다. 날이 저물고
오늘은 어디서 밥을 먹고 텐트를 치며 잠을 잘 것인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앞의 길도 모를 뿐더러 더더구나 정해진 바도 없이 길 위에서
닥치는 대로의 여정은 그래서 더 과정의 절차에 대한 행복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했다. 몇 킬로미터를 달렸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또한
어디서 어떻게 돌아 가든 바로 가든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두 바퀴 위에 시간에 대한 자유로운 질주가 피부에 부딪히는 바람과 스치는
풍경에 자신을 밀어 넣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키며 하나 하나를 엮어 간다는 점에서 그렇게라도 달릴 수 있는 의도가 의지화되는 주체성을 찾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완도에서 제주도로, 제주도에서 목포, 목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강원도 고성. 동해안을 따라 영덕을 거쳐 부산까지. 거의 국토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일주 하는 여정.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을
텐데, 달렸던 그 길의 깊이와 흘렸던 땀의 농도가 합쳐짐으로써 자신의 삶의 여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지 않았을까 한다.
저녁에 책한 권 읽고 나서 간단히 리뷰 쓰니 나도 이 밤에
꿈에서나마 실컷 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나도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