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용 책에 너무 빠지면, 현실의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에 대해서 인식이 무마되어 무감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죠.

사회적인 책임과 역할에 문제점을 덮어 버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의 문제로 축소시켜 왜곡된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두렵습니다.

 

예를 들어, 모 건설회사에서 토지주로 땅을 구입했는데, 토지대금을 재대로 주지 않아서 토지주가 제기한 소송에서 토지주가 18번의 소송이 모두 패소하고 땅을 다 빼았겼던 사례가 있습니다.

 

또 한 사례는 청부살인으로 죽은 피해자 여대생과 그 가족들은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가해자들은 오히려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 빠져 나갔죠. 

 

그렇다면 토지주나 피해자 가족은 이 억울한 마음을 힐링용 책을 보고 자신의 심리적인 마음을 다독거린다고 해서, 이런 불공정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오히려 문제를 다르게 변질시켜 버리기까지 합니다.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그럴싸한 위로의 이야기로 부조리함이 덮어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거든요. 

 

싸울 땐 싸워야 하고, 다독일 땐 다독여야 한다는 점이죠. 

 

마음 수양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다 하더라도, 지금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해서 하루 하루 알바 뛰며 고행의 고난을 받고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구조적인 사회적 모순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점도 있더군요.

 

하루 하루가 사투요 전쟁 속에서 욕하고 싸우는 이 현실을 앞에 두고 책만으로는 도무지 힘이 안나서요.

 

매일 매일이 지치는 현실이고 미래가 아득하기도 합니다.

책의 말씀이 나쁜쁘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공허함이 치밀어 올까봐서 두렵더군요.

요즘 책도 못 보고 술만 자꾸 찾게 되는 의존증이 생기는가 싶기도 합니다.

 

과잉적 욕심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비우라든가, 내려 놔라던가 하는 속 좋은 이야기나 해댈 수 있습니다만, 최소한의 기본적인 조건조차 충족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는 두 번 죽이는 꼴이죠.

 

요즘 젊은이나 사업 하시는 분들에게 힘 내시라는 어설픈 소리가 얼마나 위안이 되지 못하는 공허한 소리로 들리는지, 체감한 적도 없는 사람은 무슨 소리를 못하겠습니까.

 

최근에 개성공단에 투자 했던 사업하는 분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하루 아침에 문 닫게 되었고 회사는 영업을 못하고 직원들은 내보내야 하며 투자비에 대한 보상은 고작 대출로 퉁 치겠다는 날벼락 앞에서, 수많은 책에서 위로를 건내려 하지만 실체적으로 그들에게 결정적 위로는 금전의 보상이고 그 직원들이 다시 근무할 직장입니다.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임금 수준도 낮고 외지에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다는 명분은 그들에겐 실체적이고도 절박하게 당면한 현실입니다.

당장에 오늘 아침에 뉴스에서 도산 위기까지 나오고 2차 거래 업체까지 손해배상등의 계약적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실질적인 도움도 안되고 하루 하루 살얼음판 위를 버티는 사람들에게 책의 이야기는 멀리 있어도 너무 멀리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나라 자살자율이 통계적으로도 세계 1위입니다.

그런데 이 자살자를 분석해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이유가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먹고 살만한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다면 역으로, 반으로 줄일 수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실폐한 사람들이 사회적, 공적으로 재활할 수 있게 도움이 되고 나서야 그다음에서야 비로소 그들의 상처에 대해 감싸주는 붕대를 감아주는 것과 같은 위로가 필요한 것이니까요.

 

사회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나마 저도 포함해서 마찬가지로, 책이라도 몇 권 사서 보고 글이라도 쓰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입장에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시인들이나 혹은 작가들 처럼 일종의 사명감이나 숭고함으로 작품이 더 절박한 사람과 비교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만큼 먹고 사는 안위에 대한 문제가 사유의 문제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책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두 좋은 글들입니다.

 

이 책 또한 전작의 명성에 힘입어서 일까요.

우리나라 서점계에서 에세이 분야의 1위로 장기간 동안에 노미네이트 될 것이 확실합니다.

어쩌면요. 당장에 절박하지 않는 약간 여유라도 있어서, 적당히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상당한 효과를 내겠지요. 그러나 공허함은 어떻게 물리 칠 수 있을까요.

 

개인적은 바람이라면 이 시대의 제일 큰 힐링은 정의롭고 올바른 민주성과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고 정치의 실천입니다.

나라를 팔아 먹을지라도 동향 사람이라는 이유.

이 거 한 가지로 지지하겠다는 라고하는 콘크리트같은 확고한 투표성에 대해서 지금 받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인 손상이자 내적인 체념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합리고 보수고 진보고 인간성이나 법률적인 제도등등의 고려가 없이, 단지 고향사람이라서 고향사람이니 고향을 더 챙겨 줄 것이라는 허황한 믿음에 자신의 주권적 신뢰를 보내고야 마는, 이 철저한 이기심의 발판이 지지의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 너무나도 이 사회를 우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사회의 신계몽운동이라도 일어나야 할 판인데 아주 이상합니다.

더 비상식적이고도 더 침울적 상황으로 내 몰리는 것같은 위기감에 정체 모를 맥이 탁 빠지게 하더군요.

 

(아 글의 결론은 못내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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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스패로우 2016-03-02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공감 100%네요...

yureka01 2016-03-02 14: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2016-03-02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2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2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2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2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2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2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02 20: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혜민 스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1인이지만, 스님의 글을 읽고 정신적으로 도움 받은 분들이 있다면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글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사람들은 경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조금만이라도 생각이 있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어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튼튼한 사상이 조금이라도 금이 가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죠. 사상의 좋은 점을 자랑하면서도 잘못된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세가 바람직합니다.

yureka01 2016-03-02 20:37   좋아요 3 | URL
네 당연하게도 물론입니다.
관념적인 지침서는 될 수 있어도 실질적인 당면한 문제 앞에서는
한번은 참고 될 만한 아주 좋은 이야기만
다시 반복되면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겐 어떻게 읽혀질지요.



책한엄마 2016-03-06 04: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살아야겠단 생각으로 앞 뒤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스님책을 읽어요.
정신승리서 같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럴게 살 수는 없죠.
그러면 발전은 없을 겁니다.
유레카님 말씀 가슴에 담고 갑니다.-^^

yureka01 2016-03-06 07:28   좋아요 3 | URL
물론입니다.한두번으로 됩니다만,
사회적 모순이 힐링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면
정말 봐야 할 것은 못보게 되는 검은 안경을 쓰게 되는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마취약으로는 재대로 치료가 안되는 이유 아닐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