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모대학에서 박사까지 받은 목사.
자신의 딸아이를 때려 죽였던 사실이 밝혀졌기에 귀를 의심할 뉴스였다.
쇼킹하면서도 끔찍하고 잔인한 뉴스가 인간의 조리되지 못함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치쏟았다.
나는 말하자면 딸바보라고 할 만큼 딸아이에게 지극정성이었드랬다.
딸아이 어릴 때, 딸아이 엄마는 휴일이 다른 직장에 나가야 했고 딸아이 돌보기는 거의 내가 도맞다 시피 했었다.
왜 냐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값을 치뤄야하기 때문이라는 원죄의식과 더불어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정화시키지도 못한 채 인간성의 근본적인 짐 지운 탓을 했던 이유다.
그래서 딸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을 온갖 정성으로 입증하고 싶었다.
게다가 목사란다.
사랑으로 키워도 시원찮을 판국에 아이가 무슨 잘못이더라도 폭력과 학대로 죽어가야 했던가 말이다.
배움이 아무리 커다 한들, 이것이 몸으로 실행되지 못한다면 배움은 그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것일 뿐이다.
책에 너무 빠지지 마라는 격언도 책에 이야기 한 내용의 반에 반이라도 실천과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음의 차이를 지적한 것일 테다.
책 천날 만날 읽고 쓰고 책을 내도 이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
머리에서 나온 지식의 힘이 손과 발에 전달 되는 거리는 너무나도 멀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