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중독시킨 한마디 괜찮아
김경진 지음 / 애지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어권의 영화를 보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노 프라블럼!~".( 문제없어. 괜찮아.)라고 한다. 절체 절명의 긴박한 순간에서도 몇 마디 까지 이어가는 여유를 건네는 장면에서 감상자는 조급함으로 애가 탄다. 늦어짐으로써 생기는 문제가 없을 수가 없는데 주인공은 태연스럽고 간단하게 '괜찮아'라며 한마디가 "노 프라블럼~"인 것이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우린 가끔 자기 최면을 걸며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이까 짓거 별거 아니야."라고 태무심하듯 낙천의 여유를 부리는 척한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아니 조금만 더 들어가서, 문제가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라는 거다. 막판에서도 극심한 공포와 고통이 머리를 쥐어뜯고도 이게 뭐가 문제 인가라며 아픈 거 빼고는 아무 문제는 없다고 최면을 건다. 문제는 답을 요구하지만 문제가 없다잖아. 답을 낼 필요가 없어. 그럼 문제없어. 노 프라블럼. 내일 지구가 짜게 져도 뭐가 문제야 노프라블럼. 괜찮아.

 

거대한 태양계에서 태양이 플라스마 폭발해서 방사능 태양풍이 지구를 덮쳐도 노 프라블럼일 수밖에 없다. 인간인 우리가 문제에 대해 답을 설사 안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도리가 없으니 차라리 자포자기적인 낙천성으로써 노 프라블럼이 차라리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삶도 영화에서처럼 절체 절명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딱 한마디를 외치게 의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괜찮아. 이거 별거 아니야. 그래서 노프라블럼을 연발할수록 지켜보는 시청자는 더더욱 심장이 흥분하고 감정이 극렬해지며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그 위기의 여운을 주인공이 어떻게 결말을 맺은 엔딩의 환영이다.

 

살아온 시간을 보니 그럭저럭 괜찮으면 괜찮을 거고, 반대로, 아냐, 내 인생은 정말 심각했어. 지금까지 이렇게 어렵게 벼텨온거야 그래서 대단해. 대단하니 괜찮아진 거야.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한다. 옆에서 훈수질 뜨는 사람이나 제 3자나 혹은 오지랖이 태평양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 보기에는 굉장히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뭐 이 정도쯤이야 난 괜찮아. 설사 뒷감당이 "전~~~혀" 되지 않아 속수무책인 무비에 유환이 뻔함에도 "괜찮아. 노 프리블럼을 외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는 것. 원천적으로 부정할 수 없을 때는 긍정으로 자기 착각을 해야 살아가고, 살아지는 원리가 우리 이만하면 괜찮은 거라고 얼버무리는 낙천적 외면성이다. 반대로, 아니더라도 괜찮아라며 의식적인 최면을 걸어야만 한다. 그래야 오늘을 견디고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쩔 건데? 그냥 여기서 꼬꾸라져서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 버리고 말 결론은 또 아니란 거다. 괜찮을 때는 정말로 괜찮아서 괜찮을 수도 있고 반대로 괜찮지 않을 때라도, 손을 쓸 수 없는 무력감에 빠졌을 때도, 괜찮음이라는 역설이 숨어있다. 괜찮다가 강조될수록 괜찮지 않는다는 말과 동격이다. 반대의 반대는 강조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픈 환자에게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해질 때에서도 약을 주며 이 약으로 괜찮아질 거라는 자기 최면의 플렉 시보 효과는 그래서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괜찮아질 거라는 긍정의 희망이 때론 자신에게 무척 배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 또 시간은 흐를 것이고 지나면 또 괜찮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세상에는 전부 다 괜찮아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저마다 한두 가지씩, 혹은 아니 더 많이 몇 가지씩 마음의 짐을 지며 힘 들어서 꼬꾸라질 거 같아도 멀쩡한 표정으로 애써 미소를 띠며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노 프라블럼을 외쳐야 하는 경우, 과연 누가 심저에 가라앉은 슬픔을 오열로 쏟아 내게 할 수 있을까?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절대로 난 괜찮지 않아. 그래서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미리 포기하겠다고 약봉지를 털어 넣는 사람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어도, 자기 힐링이든 자기 연민이든 타인의 위로이든 등을 토닥이며 아무런 말 없어도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정화가 어느 시대보다도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느 시대이든 간에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당면한 문제가 가장 아픈 법이다. 시대는 시대에 벌어진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아픈 법이지, 시대와 시대를 비교해서 어느 시대가 더 아프고 덜 아프고라는 식의 비교의 대차 대조는 의미가 없다. 하기야 내 손톱 아래에 찔린 가시 바늘이 더 아픈 법이니까. 더 아프고 덜 아프고의 문제가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아픔이 있느냐와 없냐라는 거다. 요즘 다들 배가 불러서 진짜 아픈 걸 모른다는 식의 꼰대는 그래서 인기가 전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개인사적으로도 어느 시대이고 간에, 누구든 간에 엄밀하게 보면 괜찮은 적이 거의 없었다. 세간을 떠들썩한 살인 사건도 가족 간에 일어난 불화 때문인지 정신병적인 것인지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자행되고 죽이고 죽는 걸 보면 이게  괜찮을 리가 결코 없다. 다만 문제가 있음에도 덮고 작정조차 할 수 없게 지나쳐 버리는 것이 일쑤인 것이 우리 인간이 사는 현재의 모습일 따름이다. 따라서 인연이란 기쁨이다가도 때론 잔인한 것 중에 하나의 이중적인 모습을 하는 것일 테다. 만나지 않으면 부대낌도 기쁨에 겨울 일도 없다. 사람은 사람으로 만났으니 때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서 아파하기도 하고 한다. 늘상 그랬다. 괜찮았으니까 덮었고 덮어 지나쳐 버렸으니 다시 괜찮을 거라도 우리는 또 그런 줄 알면서도 새로운 인연을 욕망한다. 어쩌면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괜찮음이란 종교를 맹신하고 추종하는 기초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자, 다시 우리가 외쳐 보자. 괜찮아. 노 프라블럼. 에브리싱, 오케이라고.

이 책은 긴 투병 생활에 지쳤고 아내를 일찍 떠나보낸 한 남자의 자기 위로의 독백 같은 책이다. 다행히 생의 업이 시인이라서 그 치유와 자기 연민을 글로 치료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떠난 아내가 남긴 생의 의미들. 그리고 남겨진 시인의 고독한 자기 체면들. 하기야 우리 모두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인연에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라고는 하지만 이게 실제 현실로 만났을 때는 무어라 애써 상흔을 남기지 않을 리도 없다. 그래서 주문처럼 외우는 염력의 용언이 괜찮음이라고. 그래 노 프라블럼 이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준비 없는 이별에 직면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진을 담으며 이별을 만났다. 시간과 이별했고 공간과 이별했고 아기였던 딸이 어느새 성장해서 어릴 때 아이 때의 딸과 이별했다. 와이프가 만난 이후에서도 언젠가 나의 아버지와 이별했듯이 이별하고야 만다. 예정된 이별인 셈이다. 이별은 닥치고 사랑은 언제가 기억에서조차 희미하게 퇴색되어 가는 내 아버지의 얼굴처럼 선명하지가 못하다. 기억은 희석되어 묽어지며 점점 한때의 기억은 특정 부분만 남는 추억이 되고야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는 이별을 할 줄 전혀 모르지도 않는데 새로운 만남의 인연을 맺어간다. 왜 그렇게 다들 괜찮았으니까. 만나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것도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또 괜찮아질 거라고 주문을 외우듯 외친다. 괜찮아. 에브리싱 오케이인 거라고.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19-06-20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서 주인공이 항상 ˝알 이즈 웰 all is well˝ 을 외치며 항상 괜찮다고 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yureka01 2019-06-21 08:54   좋아요 1 | URL
대체적으로 인도인과 일해본 분들이 가장 많이 듣는 게 노프라블럼..이라고 하더라구요..

2019-06-21 0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1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6-21 0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곧 「라이온 킹」실사판이 개봉예정이어서인지 ‘하쿠나 마타타‘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yureka01 2019-06-21 08:52   좋아요 2 | URL
하쿠나 마타타..
딸아이가 어릴 때 동요로 부르던 노래^^..

강옥 2019-06-21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모르파티
라는 노래 아시죠? 중독성이 있는 멜로디라 나도 몰래 흥얼거렸는데
제목의 뜻을 최근에야 알았어요
아모르는 사랑, 파티는 인생.....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라는 뜻이라네요
괜찮아, 다 잘될거야,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면 되는 거겠지요
기왕이면 웃으며, 즐겁게. 찡그리면 나만 손해니까요 ^^*

yureka01 2019-06-21 10:42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아우츠비츠에서도 살아 남은 사람들의 특징이 긍정이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부정이 앞서면....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아모르 파티..저도 노래 들어 봐야겠습니다~^^.

2019-06-21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1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21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한철의 ‘슈퍼스타’에 나오는 후렴구도 중독성이 있어요.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yureka01 2019-06-21 16:17   좋아요 1 | URL
그노래 ...기억 나네요..
네 잘 될 거예요..라고 믿고 사는 거죠..

2019-06-2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2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0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7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8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0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