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어서 무얼 하겠다는 마음을 없애고 찍고 보고자 한다. 욕망의 무장해제이다. 어떤 정의를 내리는 것도 때론 버거운 구속처럼 다가온다면 사진을 그만 찍어야겠다. 그래 비워낸 마음으로 허허롭게 한 세상 주유하듯 흘려 보는 시선이었다면 된 거다. 거창하게 바라볼 것도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은 그저 풍경으로 담아내고 보는 것일 뿐, 더 이상의 의미와 가치 부여는 유보하기로 하자.
가급적 먼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허허로운 세월의 시간을 만나고 또 허무로 이별하는 것. 다시 한 단계 더 비약하자면, 내가 만난 나의 삶 또한 허허롭게 바라보는 듯이 이렇게 허공으로 흩어져 내는 어제의 석양과 빛과 그림자들과 피사체들이라면 된 거다. 무얼 더 얻겠다 발버둥 쳐본들, 시간은 우리 모두를 지워내는 절대성 앞에서 무슨 가치로써 살아야 할 것도 없다.
지금의 시간은 늘 이별된 오늘만이 풍경이 말을 할 뿐.
슬픔의 애통이 오면 오는 대로 의연하게 내버려 두고, 기쁨의 환희가 오면 오는 대로 담담하게 내버려 두자. 마음 쓴들 오고 가는 감정은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가는 것과 다르지가 않더라. 시간이 오고 세월이 쌓여 누적된 만큼만 애증으로 한세상을 바라보는 빈 마음. 오늘을 살아 낸다는 것과 어제를 살아냈던 모든 것들이 다만 사진에서 물끄러미 흘려보내는 것들이다. 빈 마음의 결핍된 삶이 참으로 고단했음을, 그리고 더 이상 고단하지 않는 이별도 있음을 알아차려 나가는 마지막의 준비만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