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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최근에 있은 <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 과 같이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나, <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이 서양적인 시각으로 죽음을 정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 <코끼리의 등>은 일본인 작가에 의해서 죽음을 해석해서 그런지 동양적인 관점에서 그려진 듯 하다.
또한 <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은 주인공(죽음에 이르는 이)이 화자가 아니라, 그의 아내가 화자이나, 이 책 <코끼리의 등>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후지야마 유키히로의 입을 빌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표지에 있는 코끼리의 등을 보면서 우리가 죽음에 이르면 코끼리가 그러하듯이 혼자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은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지난 추억의 인물들을 찾아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유서를 전달하고자 하는 후지야마 유키히로가 결국에는 가정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그것이 더 포근한 마음으로 세상의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는 길임을 우리들에게 간접적으로 예기하고 있다.
폐암으로 인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런 상황에서야, 과거의 첫사랑, 사이가 소원했던 친구와의 화해, 자신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들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자신의 옆을 묵묵히 지켜온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고, 또한 아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하게 되며, 딸아이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나타내게 되는, 그리고, 지난날 실수로 인해 자신이 몰랐던 딸아이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후지야마 유키히로의 삶이 어쩌면 드라마 속에서 봤던 그런 삶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다가도, 죽음에 이르러서야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가슴에 찡하고 들어왔다.
작가의 이력이 작사가로 시작한 이력이라서 그런지 일본어를 번역한 것이지만, 곳곳에 아름답게 그려진 시화체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으며, 아직은 죽음이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지 않는 이들에게 이런 책이 무겁게 다가오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한 하나의 삶을 소설을 통해 엿봄으로써 정말 자신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관조의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소설의 몫은 다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간만에 읽는 일본인 작가의 소설, 일본인들의 감성을 울릴만한 소설이며, 아름다운 글들이 많이 나와서 좋았던 소설인 것 같다. 주인공이 호스피스라는 요양원에서 지내면서 누군가에게 듣는 다음의 글을 마지막으로 이 책을 덮는다.
“ 여긴 시간을 잊는 곳이에요. 인간이 시계로 재는 시간에는 아무 의미가 없지요. 즐거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따분한 시간은 거의 멈춰 있는 것 같잖아요.”
- 정말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가 여태 달려온 그런 속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기 주인공의 삶을 통해 저자는 그것을 우리들에게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