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의 바람 아래서 -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 프레드 바르가스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뿔(웅진)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길었다. <젠틀 매드니스>의 무게의 압박에 - 1천페이지 분량인데 하드 카바라서 물리적인 무게가 정말 장난아니다 - 잠깐 쉬어보려고 집은 책이었는데 이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두께면에서는.

  그렇다고 장편 서사시도 아니고 상세한 과학적 수사과정으로 페이지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애인과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는 독신남 경찰서장인 아담스베르그와 아내없이 다섯아이를 혼자 기르는 형사 당글라르의 만담같은 대화는 두꺼비에게 불붙은 담배를 피게 해서 배를 터뜨려 죽였던 어린 시절 무용담이 세발 작살 살인마의 오십여년에 걸친 살인보다 덜 중요한 게 아니라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그러니까 슬로우푸드같은 소설 분위기이다. 추운 캐나다로의 해외연수와 비행기 공포의 당글라르의 망상에 가까운 불안한 상상, 남녀 불평등과 부하의 하극상과 점심 메뉴를 따뜻한 난방이 있는 맛없는 집과 춥지만 맛있는 집 중 어디를 선택할까 고민하는 얘기가 천천히 펼쳐진다.

그러다보니 사건 얘기는 한참 뒤로 밀려있지만 일단 사건으로 들어가는 부분까지도 매우 슬로우분위기이다. 일단 해신인 넵튠에 대해서 먼저 공부를 해야한다. 이 부분은 당글라르가 담당인데 대체 다섯아이를 키우고 숙제를 봐주고 잘때까지 쉼없이 말썽을 부리고 "왜?"냐는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을 재우고 일을 하고 집안일까지 하면서도 활자중독일 수 있는게 신기한 당글라르는  항상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 프랑스 이름의 유래와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시(詩)와 정확한 단어(불문법이라고 해야할까?)와 캐나다 지리와 역사까지 모든 지식은 당글라르의 설명에서 시작한다. 그의 넵튠에 대한 긴 강의가 끝나면 아담스베르그는 학교때(30년도 지난) 역사 교과서를 뒤져서 자기 수준의 지식을 찾아낸다. 

그리고나면 이제 아담스베르그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세개의 상처자국을 가진 시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미 범인이 사망한지 십육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세개의 상처를 가진 희생자가 다시 나오고 그 세개의 상처는 동일한 크기와 동일한 간격을 지닌, 즉 세개의 날을 가진 흉기로 생긴 상처라는 것이다.

 범인이 무덤에서 부활했는지, 아니면 그의 제자나 후계자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방범죄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과거의 상처를 지닌 아담스베르그는 다시 범인 찾기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범인의 등장과 체포는 의외로 싱거웠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범인이다보니 오히려 당글라르와 아담스베르그의 인간(?)관계가 더 즐거웠었다.  

캐나다의 퀘벡의 불어 얘기와 - 그 곳 불어는 프랑스사람들이 못알아듣는 것이 사실이었다 - 파리의 일상의 얘기가 조금 낯설은 즐거운 소설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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