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마리오 사비누 지음, 임두빈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2월
절판


가끔씩 안토니무는 오후 느지막이 찾아드는 우울함을 봉지에 든 비스킷을 씹으며 달래곤 했다. 이러한 순간에는 그럭저럭 자유로운 연상을 하며 보냈다. 과거의 그 어떠한 사실도 연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그를 만족시켰던 자유 연상 가운데 한 장면은 비틀거려 넘어질 뻔한 사건이었다-93쪽

사실, 학식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도스토옙스키는 악과 고통이 존쟂하기에 신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려 했다고 하지. 만일 세상이 본질적으로 좋기만 한 것이라면 신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이런 관점으로부터 나는 악도 성스러운 구도의 통합체의 일부일 뿐만이 아니라 신의 본질 가운데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136쪽

내가 숨 쉬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회피할 방도가 없다는 게 아니라 내 결정에 대한 확인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 내 결정은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이루어졌다. 뭐라고 하건 그것을 수식하는 형용사가 중요하지는 않다.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실에 대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174쪽

유전적으로 여자는 자기 남자에 대한 통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태곳적에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에게 자기 소유의 씨 공급자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소유욕을 행사해 왔다고 하네요. 나이가 많아지거나 양육할 자식이 생기면서 남자를 빼앗기게 되면 그 자체로 그녀들은 사회적, 자연적으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논리죠.-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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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구판절판


모든 것이 끝난 후, 우리의 축 늘어진 몸은 서로에게 익어 달라 붙는다. 마치 오래 쓴 장갑 한 짝씩처럼. 혹은 핏줄이 같은 어린 두 아이처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나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린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깊은 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주택가에 있어, 귀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계는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다. -32쪽

내게 인생이란 운동장 같은 것이다. 입구도 출구도 없고,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테지만, 있어도 별 의미가 없다. 무질서하고, 전진도 후퇴도 없다. 모두들 그곳에서, 그저 운동을 할 뿐이다. 나는 그곳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76쪽

슬픔.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슬픔에 대해, 빈틈없이 생각하고 밝히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진귀한 식물이나 무엇인 것처럼 여겨지고, 전혀 슬프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만 눈앞에 엄연히 있을뿐. 나는 이 집에서 그 진귀한 식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환경이 웬만큼 잘 맞는지, 그것은 놀랍도록 쑥쑥 자라고 있다. 그것 앞에서 나는 감정적이 되기가 힘들다. 슬픔은 나와 따로 떨여저 있어서, 나는 나의 슬픔을 남 일처럼 바라본다-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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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절판


이번에는 단편이 아니었다. 그녀의 모든 느낌을 완전히 실어낸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웨하스 의자. 여기서 웨하스란 우리가 어렸을 적에 많이 먹던 그 과자이름이다. 나는 다 커서도 자주 먹고 있는 과자이지만.. 후후.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소설에서는 빠름이나 긴박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느리고. 감성적이고 단순한.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이번 소설에도 역시 그랬다.

소설에 등장하는 그녀는 미혼의 중년여자이고 화가이다. 상당히 여린 모습으로 상상되어 진다. 그녀는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도 하고, 절망과 함께 얘기하고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동생. 현재 엄마와 아빠는 돌아가시고, 갈색털의 늙은 개도 죽었다. 그녀의 옆에 존재하는 사람은 결혼한 가정이 있는 남자 애인과 여동생 뿐.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한치의 불행이라고는 보이지 않아보이지만, 그녀의 곁에 항상 머물러 있는 절망이 애인을 한없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다. 두 사람은 그녀의 집에서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사랑한다. 사랑해서는 안될 불륜이라는 사이이지만 전혀 그런 내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동생은 6살 차이 나는 연하의 대학원생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고, 잠을 자고 차를 끓여 마시고 애인을 만나고, 여주인공은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랑의 절망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 애인에게 헤어짐을 선고하지만, 그 사랑은 다시 돌아온다. 불륜임에도 전혀 불륜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은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용하고 찬찬한 생활의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소설에서 느낄수 있는 모든.. 이것이 딱 그녀의 느낌이다! 라는 것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역시 단편보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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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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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란 쑥스러운 것이라서 싫지만 기분은 신기하게도 고양된다. 해거름의 플랫폼에 서서 저녁 햇살을 담뿍 받으며 우리는 모두 그 묘한 흥분감 속에 있었다. -104쪽

이렇게 여기저기 무턱대고 전화를 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밤에는 누구와 얘기를 하면 할수록 고독해진다. 지겹도록 잘 알고 있다. 혼자 있는 방에서, 무심코 텔레비전을 켜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가 쏟아져 나오면 더욱 고독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도, 천지신명께 맹세코 그 누구도, 타인의 고독을 덜어줄 수 없다.-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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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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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단편집이 아니길 바랬으나, 역시 단편이었다.
그러나 첫번째 이야기가 마음을 내내 울려서 첫번째 단편인 '듀크'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강아지 듀크가 죽었다. 하루 종일 눈이 붓도록 울었고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자기 앞에 한 남자가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왠지 보호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남자와 하루를 보내게 된다. 듀크가 죽은 날. 듀크는 그 남자가 되어 찾아왔다. 그걸 알게 된 계기는 그 남자가 그날 떠날때쯤 한 말에서 비롯된다. " 지금까지 아주 즐거웠어. 아주 많이 사랑했다." 라는 말. 그리고 키스는 듀크의 키스와 닮아 있었다.

이 단편집에 실린 총 21편의 단편들은(정말 얇은 책인데도 꽤나 많은 단편들이 실려 있다) 이런 비슷한 느낌들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미신과 관련된 이야기. 죽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착각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노망든 할머니를 매일저녁 찾아가는 그 할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자 아이.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단편들은 모두 다른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는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다음 글을 만날때는 다른 느낌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그런 책을 만나보고 싶다는 나의 바램은 너무 큰걸까? 아니면 이것만이 그녀의 느낌이다! 라는 그녀만의 색깔에 찬사를 해야 되는 걸까. 점점 더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헷갈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뭐 잔잔하게 괜찮게 읽은 단편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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