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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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주페 몽 드부아르?”(나는 내 의무를 다했는가)
그 뒤를 이은 군중의 함성 “위 위!”
최후의 결투에서 이긴 자는 누구일까.


중세 시대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거기다 실화란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사가 떠올랐다. 전쟁이나 결투 등의 이야기는 생각해보면 항상 집중해서 읽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목숨이, 작전 하나로 혹은 새로운 무기 하나로 판도가 뒤바뀌며 빠르게 전개되는 전쟁사 혹은 결투의 장면들. 우리나라의 전쟁사도 나름 박진감이 있다. 돌격부대 앞엔 강호동 체격의 부월수들이 포진한다. 부월수들은 도끼 부대로, 주로 적군들의 말 다리를 도끼로 찍어서 떨어뜨리며, 다리를 놓고 나무를 잘라 길을 만드는 등의 일을 한다. 우리나라 말들은 중세 시대 갑옷 무게를 이기기 위한 거대한 말들과 달리 날렵하고 크지 않았다. 그래서 낙마로 죽는 일은 드무니, 떨어진 적군은 창으로 찔러 확인을 했다고 한다.(피가 튀는 걸 막기 위해 창 끝에 붉은 수술을 달았다고 한다.) 참마도로 말의 목을 베고, 온갖 활들이 동원되는 고구려 시대의 전쟁터. 그리고 엄청난 꼼꼼함으로 온갖 것을 다 참견해서 장군들을 괴롭혔다는 조선 시대 세종의 여진족 우랑카이 부족에 대한 침공작전 등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전쟁사도 다채롭다. 그 중에 고려시대 몽골과 함께 일본을 침공했던 사건을 읽으며 중세의 기사들을 떠올렸다. 일본은 전쟁 시작 전에 장수들이 먼저 자신의 소개를 한다고 한다. 나는 누구누구 집안의 누구이며...... 이때 날라온 화살들. 난리가 났지만, 안타깝게 태풍이 불어와 배들이 떠내려가는 바람에 일본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그들은 이 바람을 가미카제, 신의 바람이라고 불렀다.
그에 반해 중세의 기사들은, 덩치도 크고 갑옷의 무게도 20키로가 넘게 나간다니, 말이 커야 했고 그러니 낙마는 곧 죽음으로 이어질 큰 사고 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책의 중심은 전쟁사가 아닌, 마지막 기사들의 결투이다. 일명 신명재판이라고 불리는 결투.
왕 등에 의해 내려진 판결에 불복하여,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겠다는 것이 바로 이 신명재판이며, 아직 왕권이 강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한다.(그러고보면 푸시킨도 아내의 명예를 지키려 결투룰 하다 목숨을 잃었다.) 후에 왕권이 강화되면서 점차 모습을 감추었고, 간혹 불법적으로 결투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마지막 신명재판을 다룬 것이 이 책 <라스트 듀얼>이다. 이 둘의 결투신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다. 창으로 시작해서 단검으로, 마지막엔 결국 몸으로 싸우는 결투. 특히 말에서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결투는 중세의 전쟁터 모습이 어떨지 보여준다.
( 중세재판이나 결투 등엔 사람대 사람만은 아니었다. 사람을 먹어버린 돼지와 피해자 가족의 결투, 살해당한 주인의 충성스런 개가 한 사람에 대해 유난히 짖고 적개심을 보이자, 그 개와 개가 적개심을 보인 이와의 전투 ~ 개가 승리했다 )

피에르 백작 아래 종기사로 있는 카루주와 르그리에 대한 이야기다. 카루주는 루주(물랑루주의 그 빨간)빨강 이란 색에서, 르그리는 회색에서 나온 성이라고 한다. 원래 둘은 아주 친해서, 르그리는 카루주 아들의 대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루주의 아내와 아이들이 죽고(아마 흑사병 등으로 ) 새로 바뀐 주군인 피에르 백작이 르그리를 편애하자. 둘의 사이는 멀어진다. 조금 고지식하고 답답한데다 융통성은 없으면서 땅에 대한 욕심은 과한 카루주는 피에르 백작과 관련된 토지 분쟁에서 번번이 지게 된다. 카루주는 나이도 어리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마르그리트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마르그리트의 아버지는 백년전쟁 동안 프랑스 왕을 두 번 배신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카루주는 자신에게 과분한 젊고 아름답고 돈도 많고 신분도 더 높았던 마르그리트와 재혼을 할 수 있었던 것.
돈도 없고 성주의 지위도 인정받지 못한 카루주는 스코틀랜드 원정을 떠나게 되지만, 그렇게 고대했던 약탈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와 병, 빚만 지게 된다. (이 때의 전쟁은 대의명분도 있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약탈을 통해 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가는 이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
카루주가 스코틀랜드원정을 간 사이, 마르그리트는 시어머니와 지내게 되고, 시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르그리는 마르그리트를 강간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카루주는 르그리를 고소하게 되고, 피에르백작은 르그리의 편을 든다. 카루주는 왕에게 가 신명재판을 요구하고, 신명재판이 열리게 된 이야기다. 르그리가 이기게 되면, 카루주는 교수형에 마르그리트는 산채로 화형에 처하게 된다. 르그리가 지면, 르그리가 참수형에 그리고 배상금을 물어주게 된다. 둘 다 지는 상대는, 배상금과 목숨, 그리고 영토 까지도 내어놓아야 할 상황이다.
거기다 마르그리트는 임신한 상황, 결혼하고 5년간 없었던 아이가 생긴 것, 그런데 이 시대엔 여성이 성관계시 행복해하지 않으면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니 그 아이는 강간으로 생긴 아이가 아니거나, 혹은 강간으로 주장하는 것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증거도 될 수 있는 것.


마르그리트는 어땠을까. 괘나 높은 신분의 기사 부인이며, 재산도 많은 집안의 외동딸이다. 그럼에도 속수무책으로 르그리에게 폭행 당했다. 법률상으로 강간은 엄격히 다루는 중범죄다. 그렇지만 강간 사실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며, 그 증명의 방법엔 고문 등이 쓰이며, 온갖 구설수와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은 중세 시대 그저 재산일뿐이다. 그래서 여성이 강간을 당할 경우, 그 피해보상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나 오빠에게 행해진다. 재물손괴죄에 해당되는 것, 남자들의 재산을 훼손했다고 보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상상해본다.
마르그리트가 날렵한 포즈로 말에 올라타, 창을 높이 들고 르그리와 결투를 하는 장면, 화형대에 묶여 남편의 결과가 곧 자신의 운명임에 눈물짓는 모습이 아니라 깃발을 휘날리며 돌진해서 박살을 내는 장면.


(르그리 가문 등에서는 마르그리트가 사람을 혼동했다던가, 혹은 카루주가 르그리에 가진 반감으로 거짓고발을 했다는 등의 주장을 한다.)


(중세시대 로망스에 대해서, 로맨스 즉 로망스는 로마와 앙스를 합친 글자로 로마적인 행동,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주로 귀족들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라틴어를 썼는데 평민들은 라틴어가 너무 어려워 특유의 간단한 방언으로 만들어 사용했고 이것을 그냥 로망스어로 불렀다고 한다. 십자군으로 남자들은 떠난 성에서 독수공방하던 귀부인들은, 음유시인들의 노래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고, 이런 음유시인들은 주로 로망스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음유시인들에 반해 돈도 주고 반지도 주고 땅도 준 귀족부인들. 어쩌면 평생 오빠나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다가, 사랑이 뭔지도 모른 체 나이 든 남자에게 시집 온 그들에게 음유시인들의 유치한 이야기들과 부드러운 손길은 그 값어치를 했는지도 모른다. 거짓이라도 말이다. )

생마르탱 수도원은 예배당과 회랑과 다른 종교 시설들과 더불어 재판소와 감옥도 갖추고 있었다. 수도원은 형사 법원을겸하고 있었고, 그 주위를 에워싼 생마르탱 구역의 법무를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판 기록에는 살인, 절도,
강간, 폭행을 위시한 각종 죄목이 나열되어 있고, 재판소가 죄인에게 내린 형벌은 채찍형에서 조리돌림, 신체 절단, 교수형,
생매장, 화형 등을 망라하고 있었다. 1355년에 타생 오조라는이름의 사내는 옷감을 훔친 죄로 한쪽 귀를 잘렸다. 1352년에잔 라프레보스트라는 여성은 절도죄로 산 채로 매장당하는 형에 처해졌는데, 이 경우에서 보듯 여성은 같은 죄를 지어도 종종 남성보다 중한 처벌을 받곤 했다. 동물들조차도 재판에 끌려 나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생마르탱가에서 갓난애를 죽이고 먹은 암퇘지는 거리를 끌려다니다가 교수형에 처해졌고,
어린애의 얼굴을 깨물어서 심하게 훼손한 다른 돼지는 화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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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20 16: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다 원작이 훠얼씬 흥미진진!
아쟁쿠르 전투에서도 투구 속에 갇혀 버린 프랑스 군은 자신들의 몸에서 발열 하는 열과 산소 부족으로 도끼를 맞기도 전에 진흙탕 위로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달려드는 영국군에 그만 ㅜ.ㅜ

중세 시대 수도원은 그야 말로 온갖 잔혹한 처형과 살벌한 재판으로 뒤덮혔던 피의 감옥 ㅜ.ㅜ

mini74 2021-11-20 16:29   좋아요 5 | URL
정말 묘사가 생생하고 스콧님 글대로 그 갑옷이 참 힘겹겠더라고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스콧님 ~

새파랑 2021-11-20 16: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뭔가 영화같은 느낌의 책이군요. 역시 결투는 총보다는 칼로해야 멋지게 느껴져요~!!

mini74 2021-11-20 16:31   좋아요 4 | URL
근데 약간 개싸움? 느낌.ㅠㅠ 멋지다기보단 처절했어요. 저도 검싸움 하면 뭔가 챙챙 총총 하면서 멋있을줄 알았답니다 ~~

미미 2021-11-20 16: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끝부분 인간과 개의 결투라니..! 그레이하운드 순진한 외모인데 상상이 안됩니다. 이 작품 찜했다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재밌을것 같아요!! 이 달 마지막 구매를..😳

새파랑 2021-11-20 16:29   좋아요 4 | URL
이 달 마지막 구매가 아니라는데 적립금을 걸 수 있습니다~!!

mini74 2021-11-20 16:30   좋아요 4 | URL
미미님 ㅎㅎㅎ 재미있는 역사책, 생생해서 좋았어요. 좀 전에 책 산 저로서는 찔려서 말릴수도 없고 ㅎㅎㅎ

scott 2021-11-20 16:34   좋아요 3 | URL
저도 미미님 마지막 구매가 아니라는 것에 강한! 확신을 걸며
로또 구입할꺼임 ۴(๑ꆨ◡ꉺ๑)

미미 2021-11-20 16:38   좋아요 3 | URL
여러분 저한테 이러심 안됩니다. 😭 모두 제가 이렇게 된데 한몫 단단히 하셨거든요?ㅋㅋㅋㅋ 내년에는 꼭 달라질거라고요!

페크pek0501 2021-11-25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책 그만 사기로 했는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너무 재밌게 쓰셔서 제 마음이 흔들리잖아요. 쌓여 있는 책을 읽기에도 벅찹니다용..
큰일났네용...

mini74 2021-11-25 17:26   좋아요 0 | URL
저도 북플에서 그렇게 유혹당하며 책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