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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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을 보며, 자신의 안위에 만족하며 몇 푼의 동정을 던져주거나 혹은 교훈 따위를 말하는 것.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나 재수없다. 그렇지만 뭐라고 할 처지도 못된다. 지금도 학교에선 북한이나 아프리카아이들의 빈곤포르노를 보여주며”여러분은 행복한 줄 아세요. 그러니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등의 밑도끝도없는 선생님의 일장연설을 듣곤 천편일률적인 편지를 쓰곤 했으니.
학교를 못 가다니 너무 안됐다.는 편지들. 사실 어린 나이에 속으론 좋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런 곳에 태어나지 않았음에 가슴 쓸어내리며 은근한 우월감으로 편지를 써내려갔을지도.

이 책은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재난과 빈곤과 아픔을 관광상품화 하는 것이다. 집단학살이 그저 호기심으로, 그들의 재난과 빈곤이, 값싼 동정심으로 갖게 되는 우월감의 도구가 되는 곳.
그렇지만 재난에도 동정과 관심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법.
여행사 직원 고요나가 회사에서의 유효기간이 있듯 말이다.
결국 회사에서 밀려날 위기의 요나는 무이라는 곳으로 출장겸 위장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효기간이 지난 무이란 여행지와 역시나 직장에서의 유효기간이 간당한 요나. 요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홀로 낙오되면서 비밀스런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재난을 재단하다.
거짓이 진짜가 되는 곳, 파울과 폴이 지배하는 곳.

진짜 두려움은 쓰나미도 싱크홀도 아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을거란 두려움이다.

(참신한 소재다. 재미있고 불편하다.
범죄도 분업화되면, 그리고 멀리서 보면 그저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지루한 업무로만 보일뿐이다. )

(고요나. 이름이 왜 요나일까 일차원적인 나는 당연히 고래와 요나를 생각했다. 두려워서 도망가다 결국 파도치는 바다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며 제물로 바쳐진 요나, 요나는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남았다. 책 속 요나의 희생과 살아남은 악어들을 떠올렸다. 럭의 뇌 속에서 요나는 기억으로 살아남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고 있을까 )

사람들은 대부분 쓰레기의 경로가 자신들의 동선과 겹치지않기를 빌었다. 일상에서 위험 요소를 배제하듯, 감자의 싹을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사람들은 재난을 덜어 내고 멀리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배제된 위험 요소를굳이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생존 키트나 자가발전기, 비상 천막 같은 것을 챙기면서, 재난이라고 부를 만한것을 찾아다닌다. 그러니까 망망대해로 흘러간 쓰레기 섬을찾아 굳이 떠나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정글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여행사였다.

"너무 가까운 건 무섭거든요. 내가 매일 덮는 이불이나 매일 쓰는 그릇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더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이건 구명보트 같은 거라고, 그는 말했다. 모두공평하기 위해서 침몰하는 배 위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흔한 음모론의줄거리처럼, 그들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남아 있는 것들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 그렇지만 누가 소수가 되려고 하겠는가.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무이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그것도 사진 따위로는 찍을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 종류의 재난에 대해서 요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이 계획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단세 명이었다. 매니저, 작가, 그리고 요나. 그러나 저 구덩이를파고, 이 일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증언할 사람들까지 헤아리면 이미 수백 명에 이른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가 작가와 요나만 입을 다물면 이 사건에 대해 떠들 사람은 없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나머지 사람들은 분업화된 시스템 때문에 아주 부분적으로만 이 일과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구덩이를 파는 사람들도 이것이 어떤 일에 사용되는 구덩이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화장터에서 시체를 냉동고에 넣는 사람들은 시체를 냉동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었다. 트럭을 모는 사람들은 그날의 목적지가 어디며 그곳으로 몇 시까지 가야 한다는 것만을 알았고, 증언자들은 자신의 대사만을 죽어라 외웠다. 모두가 맡은 프로젝트의 목적과 이름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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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7-10 09: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 호기심 급증입니다.

지금 막 도서관에 가려고
하는데 있으면 좋겄네요.

mini74 2021-07-10 14:39   좋아요 2 | URL
찾으셨는지요. 스콧님 글에서 본건데요. 에코스릴러 장르라고 하네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단어조합 같은데 읽고나면 찰떡같이 맞는 말로 느껴집니다 *^^*

레삭매냐 2021-07-11 13:44   좋아요 0 | URL
아까비네요...

대출 중이라 대출에 실패
했습니다.

scott 2021-07-10 11: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재난과 빈곤과 아픔을 관광상품화‘
그동안 한국 문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참신한 구성으로 전개 시켜서 신선했지만
재밌고 불편함
미니님 말씀에 동감!!

가난과 빈곤에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시선과 동정
그런곳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 라는 마음 ㅠ.ㅠ


mini74 2021-07-10 14:37   좋아요 2 | URL
스콧님 글 덕분에 좋은 책 읽었어요 ㅎㅎ 아이가 지금 읽고 있는데 재미있답니다. ~~사실 그게 더 좋아요 ㅎㅎㅎ

웰리 2021-07-10 11: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단순하게 생각했던 출장같은
여행길이 뒤엉키면서 진짜
( 재난과 여행 ) 이 되버린
혼란스러운 순간이었어요.

‘재앙이 가져온 고난‘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mini74 2021-07-10 14:39   좋아요 3 | URL
저도요 *^^* 웰리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1-07-10 13: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의 내용이 넘 궁금해요.
그리고 미니님 리뷰의 글에 저 자신을 많이 돌아봤어요. 값싼 동정심에 내가 할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기심이 저한테도 많이 있는것 같아 반성합니다 ㅠㅠ

mini74 2021-07-10 14:34   좋아요 4 | URL
저도 그래요 ㅠㅠ 스콧님 리뷰에 영국 대거상 받았다는 소개글 보고 읽게됐는데 재미있고 불편하고 그랬습니다 *^^*

새파랑 2021-07-10 13: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런 내용이군요~!! 재미있으면서 불편하다니 호기심이 생겨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호불호 갈리는 작품이 많았는데 이젠 관심이 가네요 ^^

mini74 2021-07-10 14:36   좋아요 4 | URL
젊은 작가 시리즈라 그런게 아닐까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의 책들도 있고. 그래서 호불호도 ㅎㅎㅎ 저는 그 시리즈 많이 읽어보진 못했어요 ㅠㅠ 이 책은 좋네요 새파랑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