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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마녀들 -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김태우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국제민주여성연맹, 일명 국제여맹.
사람들은 국제여맹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 국제여맹에서 북한의 전쟁참사를 알고자 조사단을 파견한다. 조사단들은 유서까지 써놓고 성실히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펴냈다. 그들은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보고서는 이념과 냉전아래 묻혀 버렸다. 친소적이라는 오명과(오히려 그들은 프랑스와 베트남관련해서 반식민주의를 주장하다가 지부를 파리에서 동베를린으로 옮겨야했다. 프랑스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보고서는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를 선전하는 팜플렛이라며 진실성을 의심받았고, 유엔에서의 모든 지위를 박탈당하고 사라져 갔다.
국제여맹은 전쟁이 끝난 후, 그 시대 남성들의 사회에서 거인으로 우뚝 선 여성들이 앞장서 만든 단체이다. 회원 수는 약 9,100만 명에 유엔경제사회위원회의 자문 등을 맡았으며, 일선에서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국제여맹은 반식민주의, 반전쟁주의, 반인종주의, 반제국주의 등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북으로 갔다. 북한에서의 실상을 조사하고 글로 남겼고, 그 참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냉전시대 불어 닥친 레드컴플렉스와 매카시즘으로, 펠턴은 영국의 반역자란 오명아래 인도로 망명하듯 떠나야 했다.
조사단의 한 명이었던 영국대표 펠턴은 노동당 당원이었고, 재개발을 위한 스티버니지개발공사의 총재였다. 이 때 영국은 노동당이 집권당이 되어 사회보장제도를 전면에 확대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한국전의 발발로 이러한 개발이 주춤하던 시기였다. 군비의 확장이 발목을 잡은 것, 그래서 펠턴은 영국의 대표격으로 북한 조사단에 합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조사단에서 돌아와 북한의 실상에 대한 강연을 하다 선동죄로 재판장에 서게 된 서독출신 릴리 베히터 등, 서유럽권의 조사단원들은 곤욕을 치르게 된다.
무엇이 담겨있었을까, 이들의 보고서에는.
중공군의 개입 이후, 정밀타격에서 무차별 폭격으로 바뀐 이후 초토화된 신의주와 평양, 황해도 안악에서 이루어진 잔혹한 학살들, 그리고 증인들의 증언.
대부분은 미군과 미군통제하의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증언으로 사실 이 보고서는 신빙성에 의심을 받는다.
북한의 우익치안대의 만행과 존재가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역관과 북한에 의한 왜곡이라고 말한다. 우익치안대의 존재 자체는, 김일성체제의 완벽함에 대한 흠집이자 정치적 입지가 확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었기에, 통역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감춰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너무나 잔혹한 증언들이 많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잔혹함을 그대로 답습한 조선출신의 일본군 하급 장교출신들이, 그런 친일행위에 대한 처벌없이 한국군의 장교로 다시 활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1명의 국제여맹 소속 외국인 조사단들은 하루에 640톤의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이탄이 끝도 없이 불탔던 신의주에서 황해도에서 평양에서, 토굴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과 아이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우리는 고발한다>는 책을 펴냈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은 잊혀졌다.
이 책은 그런 국제여맹과 그들이 췌록한 증언들, 각종 사진들로 이루어져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소개,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북한의 모습, 잔인한 전쟁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전쟁을 결정하는 자들이 최전방에 최우선으로 나서야 하는 법이 만들어진다면 좀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전방에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총알받이로 죽어나가고, 후방에선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총에 굶주림에 폭탄에 죽어나간다. 고문과 성폭력이 난무하고 폐허만 남는다. 추리소설에선 언제나 무언가를 가지거나 얻는 자가 최우선의 용의자다.
전쟁은 모든 것을 빼앗지만, 전쟁에서 무언가를 얻는 자도 있다. 그 자가 범인이지만 고통과 죄의식 그리고 두려움과 상처는 죄 없는 이들의 몫. 조사단 또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도움을 주려 노력했지만, 그들은 빨갱이로 몰렸고, 보고서는 신빙성을 박탈당했다. 왜 무엇이 무서워서일까. 그리 친절하진 않지만, 해답은 책 속에 있다.
우리는 달빛 속에서 이동했다. 눈에 띄는 것은 황폐함뿐이었기 때문에 마치 달을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 어느 도시를 가든 굴뚝밖에 없었다. 집들은 무너졌는데, 왜 굴뚝은 안 무너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예전에 20만명이 거주하던 도시를 지나갈 때조차내가 본 것은 오로지 수천개의 굴뚝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본 전부였다.
마끼아벨리(N. Machiavelli)에 의하면, 폭력의 효율적 사용법은 일단 그 폭력의 적용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다음부터는 폭력의사용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다. 즉 피해자를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치심과 굴욕감을 갖게 하여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굴복시키는것이었다. 특히 1950년대 한국처럼 가부장제의 이중적인 성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성폭력은 남녀를 막론하고 상대에게 수치심과 굴욕감을 안겨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결국 전쟁기 북한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피해 여성 자신은 물론, 그 가족이나 그가 속한 커뮤니티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59이 같은 이중삼중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사회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북한여성들은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자기 자신의 성폭력 피해사례, 혹은 가족이나 이웃의 성폭력 피해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말 그대로 ‘나의 이름으로‘ 전시 성폭력 피해 사례들을 상세히 고발한 것이다.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외부의 조사위원들이 전장으로 직접 들어와 피해자의 실명을 밝히면서 전시 성폭력의 실태를 분석 석·보고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극히 보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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