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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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오는 눈, 금방 녹아내리는 눈이다.

봄이 온 듯 마음 놓고 있던 이들에게, 불시에 내리는 차가운 눈이지만, 봄에 내리는 눈은 오히려 포근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결국 봄 햇살에 금방 녹아버리고, 녹아버린 것마저 증발해 버린다. 누군가의 입으로 전해지지 않으면 봄눈이 온 줄도 모를 일이다.

마쓰가에 기요아키, 눈물을 머금은 듯한 긴 속눈썹의 미남자, 남자가 아닌 소년의 모습과 변덕으로, 온갖 무용함 속에서 오로지 아름다움과 고귀함에 마음을 두는 이제 곧 20살이 될, 바람처럼 나부끼는 깃발처럼 감정대로만 살아가는 인물이다.

아야쿠라 사토코, 아름다운 선으로 만들어진, 봄눈 같다 생각했지만 의외의 강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기요아키는 아름답지 않음에 대해 불결해하고, 고귀함과 나른함, 핏 속에 흐르는 귀족의 오만함을 보여주며, 그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묘한 끌림을 통해 주변인들을 모독하며 무의미한 나날들을 보낸다. 기요아키에게는 어린 시절 잠시 시중을 들었던, 비전하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절대적이다. 기요아키가 그저 나를 사랑한다고 자랑삼아 보여줄 법한, 그냥 아름다운 얼굴의 사토코는 왕자비로 발탁되면서, 예전 비전하가 가졌던 우아함과 고귀함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토코와 기요아키는 선을 넘은 사랑을 하게 된다. 여기에선 좀 더 복잡한 이야기도 숨어 있다. 사토코의 아버지와 기요아키 아버지 사이에서의 열등감과 모멸, 그리고 멸시다. 몰락하는 가문으로 기요아키 아버지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토코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통해 철저한 위선으로 그 모욕을 되갚으려 했었다. 사토코의 숱 많던 검은 머리카락은 벚꽃처럼 떨어진다. 아름답지만 유난히 짧은 벚꽃, 그리고 그 위에 잠시 봄눈처럼 내려앉았던 기요아키도 녹아 사라진다.



주변의 배경에 대한 아름답고 그린 듯한 묘사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유럽의 귀족제도를 본 뜬 일본 상류층의 생활상은 겉만 번지르한, 아름다운 진창을 보는 듯하다. 러일전쟁 후, 자본주의와 개혁을 통해 풍요의 바다에 던져진 아이들이 자라 20대가 되었다. 그들에게 제국주의는 천황은 일본은 어떤 의미인가도 생각하게 한다. 러일 전쟁 이후 세대들은 그 전의 세대들과 단절된 듯하지만, 불교의 윤회사상 등을 들며 이어진 세대임을 말한다.

10대의 무모하고 어찌 보면 악의적인 농담 같은 사랑, 그 사랑이 우연일까. 아님 윤회에 의한 되갚음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일들을 예견하는 것일까. 2부에선 기요아키의 친구 혼다가 어떤 이야기들을 할지 궁금하다.



누가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읽고 이건 미쳤다! 미친 글이다 라고 했다는데 뭘까.

누구나 젊은 시절엔 수 백 가지의 격정과 바람을 가슴에 담고 산다. 미칠 듯 해서 조금씩 바람을 빼면, 그건 또 피식거리며 웃기는 소리를 내며 빠지고 만다. 내가 보기엔 너무 크고 너무 엄청난 것 같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푸시식 거리는 바람 빼는 소리 같은 것. 그게 청춘 아닐까.

아름다운 미소년, 그리고 아름다운 미소녀, 더 늙기 전에 20살, 가장 빛나던 때에 삶을 던짐으로서 그 아름다움은 완성되는 걸까. 봄날 너무나 급작스레 피어 너무나 또 급작스레 떨어지고 마는 벚꽃처럼, 혹은 봄눈처럼.

(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실제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큰 일화여서인지 여기저기 인용되는 걸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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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07 20: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효대사 해골물‘ㅋㅋ저도 딱 이렇게 표현하는데요ㅋㅋ실화가 아니래요?!! 많이 써먹었어요.😅

mini74 2021-04-07 20:29   좋아요 2 | URL
사후에 만들어진 이야기고, 의상과 같이 당으로 간 행적등도 잘못됐다고 하네요. 예전에 스님께 물어봤더니 사실여부를 떠나 불교에서 중요한 이야기로 가르침을 위해 쓰이니,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고 그러시더라고요 ㅎㅎ

미미 2021-04-07 20:30   좋아요 2 | URL
와~♡미니님! 그 스님의 결론이
정답이네요. 👏👏

페넬로페 2021-04-07 21:00   좋아요 4 | URL
아! 말도 안돼요, ㅎㅎ
그게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뇨?
그게 실제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건 누가 말했어요? 저는 왜 그걸 못믿겠죠? ㅋㅋ
평생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글에서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미니님 죄송요^^

mini74 2021-04-07 21:08   좋아요 4 | URL
박은봉 선생님의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외 다른 책들에도 많이 다뤄졌는데 기억이 ㅠㅠ 이 책 재미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도서관등에 대부분 있더라고요 *^^*

페넬로페 2021-04-07 21:33   좋아요 2 | URL
네^^

mini74 2021-04-07 21:35   좋아요 3 | URL
피널로페님 너무 귀여우세요 ㅎㅎ 저도 처음에 해골물로 쳐맞은듯헌 배신감을 느꼈답니다 ㅎㅎ

scott 2021-04-07 20: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기요아키랑~
둘이서 해골물 얘기 나눔
근데 실제로 마셨던게 아니였던건가여??

지금 궁예랑 원효대사 배우랑 헷갈리고 있음 ㅎㅎ


라로 2021-04-08 0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아마 이달 말쯤에 받을 것 같아요. 책이 정말 이쁜가요???(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 더 관심있는 일인;;;)

mini74 2021-04-08 07:09   좋아요 1 | URL
표지도 예쁘고., 감정이나 배경묘사 등도 예쁘고. 내용은 예쁘지가 ㅠㅠ 라로님 즐거운 독서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