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자냥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엔도 슈사쿠작가님은 1923년 검은 돼지띠시다.)

우연히 인도 패키지여행에 동승하게 되었으나. 그들의 인연이 우연이 아닌 듯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가 생각하며 품었던 생각들이 등장인물들의 마음마다 깊은 강으로 흘러넘쳐서일까.



마지막 순간 다시 당신에게 돌아오겠다는 아내의 말을 기억하고 인도에 온 남자 이소베. 당연하던 아내의 존재가 결국은 이소베의 삶에 필수조건이었을까. 그립고 공허한 삶 속에서 이소베는 매번 아내의 말과 아내의 행동을 자신이 상처 줬던 순간을 기억한다.

죽어가는 이소베의 아내를 간병해준 자원봉사자 미쓰코. 그녀는 불경하고 아름답고 어둡다. 사랑을 가장 갈망하지만 사랑을 모르고 본 적도 없다. 아니 잠시 양파의 향기를 맡아보았을 뿐, 그래서 그녀는 그 잠시의 양파를 찾아 이 곳에 왔다. 오쓰, 신을 믿고 그 신이 어디에든 무엇으로든 있다고 믿는 남자, 미쓰코에게 양파냄새를 맡게 한 그 남자, 그래서 핍박받고 쫓겨나 걸인처럼 떠돌며 예수처럼 살아가는 남자다.

동물들에게 위안과 사랑을 받으며, 매번 빚을 졌다 생각하는 동화작가 누마다, 그에게 신은 어릴 적 키운 검둥이 강아지이며, 코뿔소새이며 구관조이다. 구관조 한 마리를 사서 풀어주며, 자신의 빚을 갚기를 바라는 누마다에게 동물은 자연은 나무는 그 모든 것은 그에게 그만의 신이다.

미얀마전선에서 참혹했고 비참했다. 그 와중에 전우 쓰카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정작 쓰카다는 미나미가와의 고기를 먹었다는 죄책감으로 죽어간다. 그 와중에 불쑥 나타난 가스통이란 한 남자는 병원의 피에로 역할을 하며, 쓰카다의 죽음앞에서 그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모든 고통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려 하는 여신 차문다로 양파로, 아내로 오쓰로 혹은 피에로, 죽어가던 동료, 검은 숲, 새들의 소리 모든 것은 신의 또 다른 모습일까.



작가의 삶이 녹아있는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약속이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 인더스강에 그 모든 것을 놓아두고, 그런 상념들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기를.

선과 악은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섞여 흘러간다. 절대적이란건 없다.

절대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종교들은 결국 갈등과 분쟁으로 살생을 부른다. 싸움을 부추긴다.

오쓰의 양파가 그런 다툼을 위해 골고다의 언덕을 걸어간 것은 아닐 것이다. 타인의 슬픔을 묵묵히 지고 오르며, 그 무게를 견디며 오쓰는 가장 낮은 사람을 가장 높에 받쳐 드는 자이다. 그의 등에 멘 가장 낮은 자의 시체는, 그 슬픔이 바로 십자가가 아닐까. 누군가에겐 다른 종교의 눈엔 십자가가 아닌 그 무엇인가로 보이겠지만, 그것 또한 다르지 않다. 십자가면 어떻고, 양파면 어떠하며 사랑이라 부른들 어떤가.



인간을 담고 흘러가는 강, 굽이 아 삶과 죽음이 섞여 흐르는 깊은 강. 그 앞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은, 다른 듯 그러나 결국은 같은 무엇인가를 얻은 후에 떠난다.

돌아간 곳의 생활은 변함없겠지만 그들의 삶은 달라져 있겠지.

얕은 강에서 자신의 이기심을 건져올린 산조에겐, 그저 불결하고 한심하다는 그 곳에서, 다른 이들은 자신들만의 양파와 사랑, 혹은 광대나 차문다를 낚아 올려 가슴에 품는다.

각자의 처한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등장인물 중 더 마음이 가는 이가 있을 것이다.

누에다가 가슴에 와닿았다.

마음에 빚을 진, 그러나 결국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어린 날의 내 강아지.

누에다가 다른 구관조를 살렸듯, 지금의 내 강아지에게 더 잘해주려 하는 것, 그것이 마음의 빚을 갚는 것일까.



그리고 미쓰코

거짓의 연기, 착한 척 선량한 척 위선의 말들로 넘쳐 흐르는 미쓰코의 삶, 나 또한 진실이 아닌 말들을 더 많이 뱉으며 산다. 껍데기 속 기괴하게 커다래 보이는 구멍, 그 심연 속엔 냉소적이고 잔인한 생각의 죄들이 가득하다. 덜 무모하고 덜 용감해 행하진 않으나, 위선과 거짓의 연기들 사이에, 진짜와 진실의 삶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는 미쓰코다.



나는 신을 믿는걸까.

형상화된 차별화된 인간의 신이 아닌, 그 어디에도 있고 그 무엇에도 공평한 신? 나는 오쓰의 양파를 믿는 걸까. 그러나 신이든 아니든 그 무엇인가가 가끔 나를 돌아보게 함을 믿는다.

누군가의 슬픔을 업어들고, 그 긴 언덕 오르진 못해도, 내 슬픔과 위선이 타인의 어깨를 짓누르진 않도록 내 방식으로 기도하는 밤.



우리는 모두 광대처럼 살아간다. 슬픈 광대. 그리고 그 광대의 분장 뒤에 우리만의 양파를 숨기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길가에 쓰러진 사람들 말인가요? 물론 모를 테지요. 하지만 힘이 다한 그들이 강변에서 불꽃으로 감싸일 때 저는 양파에게 기도드립니다. 제가 건네는 이 사람을 부디 품에 안아 주십시오 하고 ”

(아래는 이 책을 읽고 떠오른 그림, 루오의 <마주보는 두 사람>이다. 색채의 마술사이자 20세기 종교화가로 독실한 가톨릭신자로도 유명한 화가이다. 가난한 자와 광대 등을 주로 그렸으며, 그 속에서 예수를 찾았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루오의 그림 속 가난한 자들과 광대들 사이에 계시지 않을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03-31 18: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이코 제 이름(?)이 떡하니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ㅎㅎ 별 다섯 개 주신 걸 보니 왠지 뿌듯하네요. 루오의 그림도 정말 잘 어울리고요.

mini74 2021-03-31 18:20   좋아요 5 | URL
훌쩍거리면서 읽었어요. 제가 갖고 있던 생각들과 닮은 듯 해서 더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잠자냥님 *^^* ㅎㅎ

잠자냥 2021-03-31 18:25   좋아요 4 | URL
엔도 슈사쿠 작품 읽으면 꼭 울게 되더라고요. 비종교인인 저마저도.

mini74 2021-03-31 18:26   좋아요 4 | URL
헉 다행이군요 저만 훌쩍거린게 아니라서 *^^*

새파랑 2021-03-31 21: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랑 그림만 봐도 왠지 슬픈 기운이...(난 왜 이런걸 좋아하는지...) 훌쩍거리며 읽으신 책이라니 완전 읽고 싶어지네요^^ (게다가 잠자냥님 추천이라니~! )

scott 2021-03-31 21: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모두 광대처럼 살아간다.‘‘‘‘
오늘도 사회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광대로 가정에서는 슬픈 광대로 . 그 광대의 분장을 지우고 나면 지쳐버리는 ,,,자아,,,

루오의 그림속 스스로를 마주보며 울먹,,울먹,,,

붕붕툐툐 2021-03-31 2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단 읽고 싶은 책에 담고, 흘쩍 훌쩍을 기대하며~ 한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 가끔 그 책의 분위기가 뭍어 나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미니님 리뷰도 알흠다운 걸 보니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