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들어 에세이를 많이 읽게 된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아. 친구? 작가들은 알지 못하지만 나만 아는 비밀친구, 에세이 속 작가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아, 나랑 같은 생각이잖아 그러면 괜시리 학기초 맘에 드는 아이옆에 앉은것처럼 쑥스러운 친근감에 히죽 웃음이 난다.
그런가보다. 친구찾기.
사실 현실에서 누군가를 만나 나를 표현하기란 참 힘들고 상대방도 나도 지루하고 험난한 길이다. 그 길을 젊은 시절엔 그래도 호감 하나로, 혹은 상대가 뱉은 단어 하나로, 손가락 하나를 뻗쳐들고 커피잔을 드는 날 닮은 모습 하나로 열심히 걷고 달리고 그러다 넘어지고 울고 그랬다.
지금은? 상대도 나도 부담스럽다? 혹은 이미 머릿속으로 너무 많이 되풀이해서 정작 입으로 나오지 않는 나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나란 존재는 이젠 재방송만 틀어대는 철지난 케이블티비같다고나 할까. 자꾸 입을 다물게 되고 뭐 더 이상 무슨 말을 할까 이런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 책에서 길을 걷는다. 책 속에서 나와 닮은 생각과 버릇을 만나면 연필 한자루를 들고 나란히 그 글귀를 따라 같이 걸어본다. 먹색의 구불함과 질감위로 공감이 지나가면 슬쩍 웃기도 한다. 남편은 변태같다고 했다. 우쒸.

작가님의 글들 위로 연필 하나 의지해 걷다보면 그렇게 나만의 비밀친구 하나를 마련하게 된다. 그런데!! 작가님도 그렇단다. 닮은 이를 만나면 몰래 우정을 쌓는단다. 당사자인 작가도 몰래. 몰래한 사랑, 몰래 한 우정이 원래 더 짜릿하다. ㅎ

빵을 만드는 과정과 글을 쓰는 일의 자연스런 연결고리, 소설과 어울리거나 언급되는 빵이야기, 제빵을 하는 이유와 소소한 이야기들이 길 가에서 우연히 주운 유리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어린 시절 나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비현실의 세계였다. 귀신이나 지옥처럼, 누구도 명료하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너무나 명료한 것들이 더 두려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칼로 벤 자국처럼 선명한 말이나 확신에 찬 주장 같은 것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이상한 신념들.
지나치게 눈부신 빛 속에 서 있다는 생각에 갑작스럽게 현기증이 나고 두려워지면, 언젠가부터 나는 기꺼이 어스름 쪽으로 눈을 돌린다. 창가에 어린 입김과 계절과 계절 사이의 바람 냄새, 새벽에 내리는 첫눈과 말이 되지 못한 채 기척으로만 존재하는 마음 쪽으로, 붙잡으려는 순간 사라짐으로써만 존재하는 어떤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소설가로서 나는 언제나 서사의 매끄럽지 않은 부분,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마음을주는 사람이다. 소설에서도, 그리고 인생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은 그런 지점들이 아닐까? 우리는 삶과 세계를 하나의 매끄럽고 완결된 서사로 재구성하려 애써 노력하지만, 사실은 끝끝내 하나가 될 수 없는단편적인 서사들을 성글게 엮으며 살아갈 뿐이니까. 그리고 바로 거기, 언어로 설명할 수 없고 때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도 없는, 서사와 서사 사이의 결락 지점. 그런지점이야말로 문학적인 것의 자리일 거라고 나는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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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04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읽고 싶은 에세이가 안보이더라구요ㅜㅜ 리뷰 보니까 읽고싶어지네요. 전 주위에서 책 줄치면서 읽고 있으면 수험생이냐고 그러던데 ㅎ

mini74 2021-03-04 21:58   좋아요 2 | URL
ㅎㅎ저도 그런 말 들어요. 공부하냐 뭐 이러면서. 지금은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읽고 있는데. 요즘은 이공계 자연계 분들도 글을 정말 잘 쓰시는 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1-03-04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하셨는지~~
글쓰기가 점점 두려워집니다^^

mini74 2021-03-04 22:42   좋아요 1 | URL
헉. 무슨 그런 말씀을. 저 페넬로페님 팬인데요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scott 2021-03-04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나만 아는 비밀친구! 나 대신 내얘기를 해주는 미니님 친구가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였다니 전 빵 만든는것만 잔뜩 관심있었는데 ^ㅎ^

mini74 2021-03-04 23:04   좋아요 1 | URL
전 빵 먹는 것에 더 관심이 ㅎㅎ. 빵순이랍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1-03-0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는 조금 더 직접적인 자기 얘기를 해서 그런지 mini74님 말씀대로 진짜 잘맞아서 너무 좋은 친구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작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외는 전혀 안 맞는 경우가 더 많고요. 나만 아는 비밀 친구란 표현이 정말 좋네요. ^^

mini74 2021-03-05 15:52   좋아요 0 | URL
저 어릴 적엔 탐크루즈한테 사랑한다고 편지를 썼는데 커서는 작가님께 가끔 아주 가끔 편지를 쓸 때도 있어요 ㅎㅎ 차이라면 탐크루즈한테는 편지를 기어이 보냈고 답장을 못 받았고 ! ㅎㅎㅎ 주책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