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도화지에 물을 넉넉히 섞은 물감방울 하나를 똑 떨어뜨려 놓고, 빨대로 후 후 하고 분 적이 있다.
또르르 굴러 내려가는 물방울의 흔적들을 보며, 그 우연의 색감이 나타내는 명도와 채도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기찻길이 되기도 했고, 어떤 날엔 우울할 때만 눈에 보인다는 회색빗방울이 되곤 했다. 아이랑 물감 놀이를 하며 같이 감상하곤 했던 그림이 김창열작가님의 물방울 그림들이다.
서울대 미대생이었지만 이쾌대작가님과 교류했다는 이유로 전쟁 후 복학을 거절당하고 경찰 생활을 하다가 파리로 가게 된다. 거기서 작가님이 그린 것.
˝”파리 가난한 아틀리에에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들어 유화 색채를 떼어내 재활용하기 위해 캔버스 뒤에 물을 뿌려 놓았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습니다.˝
꽤나 많은 이들이 작가님의 물방울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했다. 의미없음이 의미라던 작가님의 어느 글이 생각난다 . 불교의 공과 도교의 무가 담긴 물방울은 그저 물방울이다.
작가님의 별세 기사를 보면서 문득 아이와 어릴 적 같이 했던 물감놀이가 생각났다. 후후 불기도 하고 도화지를 세우거나 흔들며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보고 좋아했던 그 시절, 머리 맞대고 같이 감상하던 김창열작가님의 물방울들. 우리에게 그 물방울들은 어느 날의 감정으로 어느 날엔 친구로 어느 날엔 몹시 추운 날 창문에 흘러내리던 기온차이기도 했다.
물방울은 스님의 손 아래 정갈한 염주 한 알, 새벽녁의 차고 맑은 이슬, 누군가의 간절한 묵주와 함께 하는 기도, 해맑은 아이들의 순수한 놀이, 유년의 추억. 보는 이에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물방울이다. 작가님의 명복을 빌며.
( 아이와 비가 오는 날에~ 란 이혜리작가님 그림책을 읽을 때면 꼭 같이 감상했던 물방울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