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보루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유족과의 교류
야마카와 슈헤이 지음, 김정훈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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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보루

 

이 책 인간의 보루를 쓴 저자 야마카와 슈헤이1997년 골프투어로 제주도를 처음으로 방문한다. 그는 주택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택업계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일본내 큰규모의 회사간부사원들로 구성된 영업전략연구회라는 친목모임의 회원이었다. 이 모임 구성원 4명은 97년 골프여행을 목적으로 제주도에 도착한다. 2일째 되던 날 저자는 전날 막걸리를 많이 마셔서 속이 탈이 난 까닭에 모임의 다른 회원들이 골프를 치러 나갈 때 호텔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홀로 남은 저자는 호텔주변을 배회하던 중 다방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우연히 일본어를 잘하는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해방 전 오사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에 소재한 대학교 법학과를 다니다중퇴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김중곤이다. 그는 해방이후 광주 기마경찰대에 입대했다가, 서울에 처음으로 호국군 서울사관학교가 생기자 1기생으로 입학하고, 졸업 후 원주에 배치 받아 근무중에 한국전쟁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국전쟁에 대해 궁금한 것을 듣던 저자는 김중곤의 여동생에 관해 듣게 된다. 그의 여동생은 근로정신대의 일원으로서 나고야의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중 해방 1년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공장잔해에 깔려 숨졌다고 한다.

우연한 짧은 만남이후 형식적인 인사인 다음에 또보자는 말이 저자 야마카와 슈헤이의 인생항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줄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저자는 이를 자신의 운명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없었다면 제주도에 가서 골프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제주도에 가서 막걸리를 많이 마셔 설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약속다방의 문을 열지 않았다면 김중곤과의 만남은 전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만남은 우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법이다.”

 

2개월 후 다시 그는 홀로 제주도를 방문하게 되고 김중곤과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후 그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시민모임에 가입해 피해자들의 지원에 매진하는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인권활동가로서 살아온 과정을 쓴 자전적 에세이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의 활약상과 근로정신대에 관한 재판과정을 소상히 적고 있어서, 사실을 기록하는 역사책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책에서 그는 김중곤을 만난 후 자신이 근로정신대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와, 1998년 일본의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나고야 지원회)’을 결성하게 된 과정 그리고 이 모임이 주도한 근로정신대 피해자 소송 진행과정을 소상히 적고 있다.

 

근로정신대란 흔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오인 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여자 근로정신대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과 국내의 군수공장 등에 강제 취역됐던 조선의 여성들을 말한다. 당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조선 여성은 약 7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19377월 중일전쟁 이후 19458월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 까지 일본은 수십만명의 조선 남성을 강제로 연행해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전쟁이 확대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들까지 징용해 갔다고 한다.

 

일본은 나라의 정책으로 근로정신대를 계획했으며, 조선의 14세 전후의 소녀들은 일본에 가서 일하면 기숙사에 들어가 급료를 받으면서 여학교에 다닐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일본으로 갔다고한다. 하지만 학교는 커녕 넉넉지 않은 식량상황과 함께 비행기 생산에 종사하여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도난카이 대지진으로 건물이 붕괴함에 따라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고 한다. 김중곤의 동생도 그 때 사망하였고, 그의 부인 복례도 근로정신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고야 지원회 대표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는 게이오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비정규직강사로 일하면서 나고야역사학회에 가입하여 활동중이었다.

어느 날 재일역사학자인 박경식의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자신이 배운 역사와는 다른 역사를 알게 된다. 이후 그는 여러 자료를 통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피해자들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과 함께 모임을 결성하고 자료등을 수집하여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도 불고하고, 일본 나고야에서 진행된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받게 된다. 판결의 주된 이유는 일본과 미쓰비시 중공업의 불벌행위책임이 성립하지만 한일청구권 협정이라는 억지 이유를 들어 원고패소판결을 내린다.

한일청구권협정이란 국가간의 책임을 명확히 한 조약이고, 개인간의 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법원은 이를 근거로 원고패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항소심에서 원고측 증인으로 나온 서울대학교에서 법과대학에서 법사학을 전공하고 건국대학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던 김창록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이하한일협정’)은 영토분리분할에 따른 민사상, 재정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약이었으며, 식민지배에 관한 문제가 포함되는 것에 관해 조약의 당사자인 일본이 명확히 부정했기 때문에 식민지배에 관한 것은 조약의 내용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따라서 어린소녀들을 속임을 당해 끌려와서 자유를 구속당했고 무기한으로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이 소송 항소인들의 주장은 식민지배에 관한 문제이므로 한일협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동 협정제21항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이라는 문언과 동조 제3어떠한 주장도 할수 없다라는 문언의 해석은, 협정의 법적효과에 대하여 일본정부의 경우 외교보호권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정리했으며 1990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주장하는 법적효과를 보아도 개인이 가지는 청구권에 대하여 협정은 어떠한 효력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협정의 성질에 대하여도 협정체결당시 한일은 전쟁상태가 아니었으므로 강화조약이라고 볼수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증인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일본사법부는 한일협정 원고패소판결의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이책 인간의 보루 서두에는 항소심 주요내용을 요약하여 싣고 있다. 저자의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고야 고등법원의 판결내용을 알리고자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아래 판결내용요약을 그대로 옮긴다.

 

​① 국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불법행위 책임의 성립을 인정하며, 아직까지 미해결된 문제이다.

 

어린 소녀들의 향학열을 역으로 이용해 가족의 품에서 끌어간 행위는 기만 혹은 협박으로 정신대원에 지원하게 한 것으로 인정되며 강제연행이라고 보아야 한다.

 

소녀들에게는"연령에 비해 가혹한 노동이었던 점, 빈약한 식사, 외출과 편지의 제한.검열급료의 미지불등의 사정이 인정되며 게다가 정신대원을 지원하기에 이른 경위 등도 종합하면 강제노동이이라고 보아야 한다.

 

당시 일본도 비준한 ILO(국제노동기관) 조약29(강제노동에 판한조 약)를 위반했다

 

국가무답책의 법리 적용에서 명확히 벗어나 미쓰비시중공업이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논거로 삼아 오던 전쟁 전의 미쓰비시중 공업과 현재의 미쓰비시중공업별도 회사론에 대해 실질적으로는 계속성이 존재하므로 불법행위 책임을 질 여지가 있다.

 

이와 같이 국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엄하게 단죄하고 양자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원 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논거로는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전쟁 피해자 개인의 재판상 소구할 권능을 말살시켰다는 해석과 한일청구 권협정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재판소 입장에서 불법행위 책임의 이행을 명령할 수 없다는 점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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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
로버트 휴 벤슨 지음, 유혜인 옮김 / 메이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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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

 

이소설은 로마카톨릭교 신부이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중 한 사람이었던 로버트 휴벤슨의 작품이다. 그는 1871년 에드워드 화서트 벤슨과 메리 시지픽의 막내아들로 런던 외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성공회 최고위직인 캔터베리 대주교 자리에 올랐다. 벤슨은 이튼 칼리지를 거쳐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종교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1893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성공회의 교리에 의문을 품으면서, 점점 로마 가톨릭교에 매료되어 가던 그는 1903년 카톨릭교로 개종한다, 캔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이자 촉망받는 성공회 신부이던 벤슨의 개종은 당대 종교계는 물론 유럽 사회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유명 지식인들이 그를 따라 로마가톨릭교로 개종하면서 당시 영국 사회를 발각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벤슨은 1904년 로마 가톨릭교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케임브리지로 부임해 사목 활동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폐렴 증세 등으로 43세라는 이른 나이에 타계하였다고 한다.

 

이 책 세상의 주인1907년에 그가 쓴 작품으로, 세상이 인본주의를 신봉하면 결말이 비극으로 끝날 것을 경고하면서, 그리스도교정신으로 인본주의가 초래할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소설의 주요내용은 동방과 서방이 전쟁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이 위기상태를 평화롭게 해결한 인물이 세계 대통령이 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는 세계평화를 공고히 한다는 명분으로 인본주의를 내세우고, 합리적 이성을 신봉하는 인본주의는 하나의 종교로 발전한다. 하지만 인본주의라는 종교는 초월자, 신등을 부정하는 형식적인 종교로서 진정한 종교의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들이 종교와 유사한 점은 오로지 하나 뿐인데, 인본주의라는 교리에 심취되어 맹목적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인본주의가 기존 종교의 자리를 차지하자, 그들은 인간의 능력을 찬양하며, 사상을 통합한다는 명분으로 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세상을 지배한 인본주의자들과 그들을 반대하는 소수 카톨릭교도들간의 투쟁을 그리면서,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책은 인본주의를 취할 경우 초래되는 비극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무리 선한 목표를 가진 주의라도 이를 극단적으로 추구한다면, 이 책이 그린 그런 디스토피아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어떤 주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한다면 자신이 신봉하는 사상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자신과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억압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종교도 마찬가지다. 과거 역사는 힘이 센 종교가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개종시키거나, 없애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카톨릭이 인본주의의 탄압을 받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과거 카톨릭이 자신의 세력을 내세워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억압하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종교의 경우도 자신의 종교를 강요한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상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역사를 보면 종교나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왔다.

 

근대이후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의 존중이다.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다양성이 소멸하고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 된 사회가 바로 자유를 잃어버린 전체주의 국가인 것이다

 

이 소설은 인본주의 신봉자들의 탄압에 맞서는 소수의 카톨릭교도들의 이야기 이지만, 사상이 나 종교의 다양성 측면에서 본다면 종교와는 무관하게 읽어 볼 수 있는 책일 것이다.

물론 인본주의만이 옳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사회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이라는 개념의 속성에 불완전한 존재라는 속성이 반드시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필요하다. 그것은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사상이 될 수도 있다. 완전함을 가진 존재의 속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중 하나 일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 그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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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존재하기 -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조지 쉬언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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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존재하기

 

한문화 출판사에서 출간된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한 러너가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이 느낀 것을 적은 에세이이다.

그는 달리는 중에 유일한 대화 상대인 자신과 만나게 된다.

달리면서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고동칠 때 그는 왜 자신이 이렇게 달려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은 나중에 왜 사는지에 관한 물음이 된다.

그는 달리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을 신문사 칼럼에 연재하게 되는데,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달리기를 철학의 수단으로 격상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로서, 마흔 네 살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의사 노릇을 접고 학창 시절에 즐기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달리기 선수라는 목표는 그의 나이에 맞지 않는 비이성적인 선택이었으나 그는 이 말도 안 되는일에 무조건적으로 몰입했고, 그 결과 새로운 몸과 삶을 발견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5년 뒤 그는 501마일 달리기 세계 신기록(447)을 세웠으며, 예순한 살의 나이에 3시간 1분이라는 개인 최고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저자는 달리면서 이제까지는 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한다.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자신의 한계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고비가 찾아온다. 그 때 자신을 응원해 줄 사람은 자신뿐이다. 지금 까지 달려 오면서 자신과 줄곧 이야기한 사람도 자신이고, 남은 구간을 완주 할 때 까지 자신과 함께 대화하면서 응원해줄 사람도 자신이다.

이처럼 장거리 달리기의 매력중 하나는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채 오로지 자신만을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므로 나는 한 시간 동안만은 내 목숨이 달리기에 달린 듯 달린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지금의 나와, 지난날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깨닫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느끼고 바라보고 듣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세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나를 신이 만 들었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그 존재자체가 존재이유인 생명이 왜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게 된다.”

 

거리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내 모습을 다시 찾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발견할 수도 없는 내면 깊은 곳. 경험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그 깊은 곳에 감춰졌던 그 모습. 철학자들이 그저 절대고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상태를 다시 찾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신호를 알리는 총성이 울리고, 러너는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오랫동안 경기를 준비해 왔지만, 1마일쯤을 달리면 더 나아가 가지 못하고 왜 달리는 지 궁금해 하게 된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1마일 정도를 더 달려가면 유혹은 더해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속도를 늦출 뿐이다. 결승점 까지 얼마나 남았을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채,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러다보면 마지막 전력질주가 살아나게 되고, 러너는 결승점에 이르게 된다. 결승점에 도착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는 알게 된다. 한계에 다다른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 한계너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를. 그리고 달릴 때는 알지 못했던 달리는 행위의 의미를 알게 된다.

 

인생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지금은 내가 겪는 시련의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인생의 끝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온 모든 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때, 지난날 고통스러웠던 시련이 내가 인생을 완주하기위해 반드시 지나쳐야할 길이었고, 어떤 의미였는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다음 발 디딜 곳만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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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리더들의 철학 공부
앨리슨 레이놀즈 외 지음, 김미란 옮김 / 토네이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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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리더들의 철학공부

 

경영학에서 리더십은 중요하다.

그래서 경영학이론서에는 리더십이론의 변천과정이 하나의 주제를 구성하고 있다.

경영학에서 리더십은 크게 거래적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성과에 대한 보상을 중시하고, 후자는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비젼을 제시함으써, 구성원들의 동기를 유발하여 구성원의 동참을 유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리더쉽이다.

이처럼 기존 리더십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제적 관점과 동기를 강조하는 심리적 관점에서 리더쉽을 이해한다.

 

이책 성공하는 리더들의 철학공부는 위 두 가지 관점외에 제3의 관점으로 철학을 제시한다.

리더쉽에 철학자들의 조언을 활용한다면, 조직내에서 구성원뿐만 아니라 리더 자신도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미있다고 느끼는 직장생활을 통해 에너지 넘치는 조직으로 변모함으로써 경영성과목표 달성에도 유리하다고 한다.

 

초기 경영학의 역사를 보면 지나치게 효율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없는 조직이란 비판을 받기도하였다. 제품을 만드는 것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정등은 무시하고 오로지 산출물을 늘리는 것에만 연구를 집중하였다. 이러한 대표적인 경영자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포드를 들 수 있다.

포드는 대량생산을 통해 근로자에게는 고임금을, 대중에는 저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므로써 포디즘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조직내에서 근로자는 감정있는 존재로 대우받지는 못하였다. 찰리채플린은 모던 타임즈에서 기계시대의 인간소외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후 경영학은 인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과 인간관계가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간을 경영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파악하고 인간에 대한 요소를 경영에 정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경영학의 지도원리는 효율성과 효과성이다.

전자는 비용절감을 추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목표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학의 지도원리를 생각해본다면 제품을 생산하는 인간을 생산도구로 생각하기 쉬운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책 성공하는 리더의 철학공부는 결과를 중시하는 경영에도 결과를 산출해내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위대한 철학자들의 지혜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을 기업경영에 적용함으로써 구성원들이 기계부품이나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방지한다.

 

예를 들면 이성을 자신 철학의 중심개념으로 삼은 아리스토테레스로 부터는 안정성과, 조화, 점진적 진보를 배우고, 성취와 욕망을 중시하는 니체로 부터는 과감한 실험과 열정을 배운다.

롤스로부터 구성원의 공평에 관해 배우고, 경영과는 관련 없을 것 같은 칸트의 정언명령에서 리더십을 뽑아낸다. 사람들에게 바라는 행동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하라. 다른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표로 생각하고 대하라. 리더가 정한 법은 똑같이 리더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이처럼 이책은 철학을 리더들이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인간은 항상 옳음이나 좋음이라는 문제에 집착한다. 그리고 관계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러므로 조직의 구성원이 인간이라는 점에서 보면, 옳고 좋음,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는 학문인 철학이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책은 기업경영자 뿐아니라, 일반인들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사변적이 철학이 현실적인 기업경영에 적용되는 것을 통해 철학의 유용성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아울러 유명한 철학자의 핵심주장을 쉽게 알 수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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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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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의 전범국으로서 주변국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행한 전쟁범죄행위에 대한 인식태도를 보면, 두 나라는 완전이 반대이다.

독일은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변국들에게 진정어린 사과함께, 나치를 찬양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법제도등도 마련하였다. 특히 독일총리 빌리브란트가 197012월 폴란드를 방문하여 바르샤바에 위치한 2차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태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두 무릎을 꿇으며 사죄하는 사진은 독일인의 진정성 있은 사과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 되었다. 전후 독일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의 출현은 주변국은 물론 자국민들에게도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경험하고는 독재자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법제도를 정비하는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진실한 역사교육을 통해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경계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노력덕분에, 독일은 하나로 통합된 유럽인 EU를 주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독일과 함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인접국을 침략하여 인적, 물적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 일본은 아직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진성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일본 전쟁범죄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주고 있으며,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미화하고, 왜곡된 역사 교육을 통해 주변국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들은 아시아를 백인 지배에서 해방시킨 해방 전쟁을 수행한 것이 라고 주장하고,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며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배하면서 근대화시켰다고 강변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과거를 사죄하는 태도를 '자학 사관'적 태도라고 매도하면서, 일본의 사과외교는 일본의 진보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적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정부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 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인 중에서도 일본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을 한 여성에 불과하다며,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나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강제징용은 일본이 배상할 사안의 성질이 아니라고 하며, 독도에 대하여도 일본과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자본에 의해 육성된 신친일파이다.

 

이러한 21세기의 신친일파라고 불릴 수 있는 자들이 펴낸 책이 바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고 이책에서 그들은 일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 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의 책은 역사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학자들을 속일 수는 없다. 1000가지 역사의 사실중 999가지가 오른쪽을 가르키고, 1가지가 왼쪽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면, 이들은 그 1가지를 자신들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삼고, 역사의 본류를 구성하는 999가지는 외면한다. 그리고 이 한가지를 소개하면서 역사적 사실은 왼쪽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대중은 역사적 사실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까닭에 이들의 주장에 휘말릴 수있다. 이에 대하여 호사카 유지 교수가 신친일파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밝히기 위해 이책 신친일파를 집필하였다. 이책에서 저자는 현대판 친일파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역사적 증거를 통해 드러낸다.

 

과거에는 반일종족주의와 같이, 전쟁범죄에 대하여 일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대담하게 일본의 범죄에 관해 그들을 옹호하는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친일파들이 그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생각한다. 해방이후 친일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일 것이다. 이들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그 힘을 이용해서 사회의 정의가 바로서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진실을 확고히 알고 있다면,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책은 출간되지 않을 것이고, 그와 같은 주장도 드러내 놓고 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인들이 그들의 주장에 휘말리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들의 정체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책 '신친일파'의 출간의의는 아주 크다고 할 것이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과 대한민국내 일본을 지지하는 자들을 볼때, 프랑스의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 떠오른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은 어리석은 짓이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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