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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호랑나비를 보았니? ㅣ 내가 처음 가본 그림 박물관 1
재미마주.목수현 기획, 조은수 글, 문승연 꾸밈 / 길벗어린이 / 1995년 5월
평점 :
<길벗어린이 책을 읽고 : 민서가 보여준 책-봄날, 호랑나비를 보았니?
내가 처음 가본 그림 박물관 시리즈>
1. 민서의 당부: 책 찌찌마~
민서가 8살 되던 크리스마스에 이 책을 기증했네요. 어디보자, 지금쯤 민서는 중학생이겠지요.
어쩌면 나보다 키가 더 클지도 모르겠어요.
'책 찌찌마~'라는 말에서 웃음이 나왔다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불퉁하게 입이 나온 아이를 그려보기도 했어요.
나는 민서를 모르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죠.
책 찌찌마~ 가장 큰 글씨로 적혀 있었어요. 그건 아마도 민서 이름이나, 민서가 기증한 날짜보다 더 중요한 목소리였기 때문일까요. 이 책은 민서가 무척 아끼던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엄마의 권유로 책을 다른 동생들에게 주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서운함과 기쁨이 교차된 말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는 민서의 당부를 따라서 살며시 책을 펼쳤어요.
2. 동화책에 동양화를 보는 비법이?
나는 한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었어요.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답니다. 그리고 부러웠어요. 민서의 8살과 이 책을 어렸을 때 읽었던 수많은 민서들을요. 민서가 8살 때 기증한 책을 나는 서른이 되어서 볼 수 있었으니까요. 놀랍게도 이 책이 짚어주는 '그림 읽기'는 내가 대학에 가서 배웠던 그림 읽기와 맥이 같았답니다. 그러니까 동양 미술사가 되겠지요. 수업을 듣고, 두꺼운 책을 찾아보고 공부 끝에 배웠던 그림읽기가, 이토록 쉽게, 글씨도 별로 없이, 어려운 설명 없이 쓰여 있었어요. 옛날에 그려졌다는 이유로 다가서기 어려운 것 있잖아요. 한자도 막 써 있고. 그런 것 훌훌 털고서 '그림하고 놀자~'하는 것이었어요.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보기에도 쉬운 책이지만, 동양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었어요. 옛 그림은 어렵지 않다는 것, 재미있는 이야기는 작게 있으니 자세히 들여다 볼 것, 그곳에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말이죠.
3. 그림에서 나온 그림, 아이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아이디어가 있어요. 옛 그림의 원본을 확대하거나, 이야기 해주고 싶은 부분을 잘라서 보여주거나, 재배치하는 것이죠. 과감하게 옛 그림의 배경을 날려버리고 아이들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비면 나비, 개미, 귀뚜라미 등만을 포착해 내고 있어요. 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도 그림을 자세히 보는 것은 어려워요. 확대경이 있으면 모를까, 오히려 그림을 보러 온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도 흔치 않지요. 무엇보다 이 책은 ‘옛 그림이 재미있다!’ 는 것을 알고 있고, ‘재미있는 것을 같이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해요. 중간 중간 곤충이나 식물, 동물에 얽힌 속담도 이야기 하고, 그것에 얽힌 설화도 이야기 하고 있지요. 얼마나 흥미진진 하든지요. 그림으로 꿩이나 맨드라미, 당나귀를 이해할 수 있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요.
4. 더 신나게 흔들어요, 더 놀아도 돼요
책을 보여주는 부모님들은 원본에서 빠져나온 고양이나 참새, 나비를 볼 때 원본이 주는 감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원본을 더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통할 수 있는-어린이 그림책에서만 가능한 순간이 아닐까요? 더 호기롭게 그림에 달려들어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림 배울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배우는 학생으로서 진지하게 그림을 대해야 한다는 마음이 교실에서 함의되었기 때문일까요. 긴 시간을 지나온 그림들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많은 숨을 내쉬었어요. 그것은 만만하게 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지요. 그러나 그런 진지함이, ‘그림과 한바탕 놀아야겠다!’ 라는 앎의 즐거움을 숨죽이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이 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실제로 이 그림을 보게 된다면 어떤 감회가 올까요, 저로서는 조금도 헤아리기 어려워요.
5. 좋아서 보탠 말
지금 이 책을 재판해 낸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셈해보니 근 20년 전에 나온 책이었어요! 지금도 충분히 좋지만 지금의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꾸밈의 책들에 비하면 밋밋한 감이 있지요. 제일 걸리는 것은 활자의 단조로움인데, 캘리그라피가 없거나 익숙하게 사용된 때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가장 아쉬운 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과 함께 약동하려는 구불구불한 활자들은 얼마나 책의 의도를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요.
덧 :) 부모님께 알려요!
참, 이 책을 본 아이들이 조금 더 큰 후에도 옛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간직한다면 이 책을 추천해 드려요. 오주석 선생님이 쓰신 우리 그림 읽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읽다보면 흥이 나고 궁금해서 끝을 다 보고야 말게 돼요. 말하는 이의 흥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제 흥에 겨워서 말이지요. 그림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니! 당시의 생활상, 문화는 물론이고 사상까지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오주석의 한국의 美특강
오주석/솔/2005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2
오주석/솔/2005,2006
빙긋 웃고 있는 '소'를 찾았나요?
그렇다면 저기 밭을 가는 사람들에 걸린 미소도
찾아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뒷모습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람의 얼굴도 넉넉히 그릴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런데, 저 덩치의 소, 저 사뿐한 걸음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