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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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건물이 되었고, 건물은 기쁨이 되었다. 27

 감정의 순환이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살아있는 것만이 감정이 있다고 믿겨지니 말이다. 그러나 딱딱하고 차가운 것으로 만든 건물을 보면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마음을 닮아서 마침내 감정을 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쉽게 집이라는 공간이 그렇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 곳은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웃음이 번지는 곳이 되니 말이다. 그곳에 혼자 있는 시간이라도 그 기운은 쉽게 변치 않는다. 공간이, 둘이 있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건물이 감정을 전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다'라는 긍정과 함께 건물을 처음 지었을 사연에 대해서 들여다 본다. 그리고 직접 만든이의 마음도 읽는다. 나중에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대개 우리는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그치기 쉽다. 저자는 모두를 아울러 소리를 전한다. 건물을 짓게 된 사연과, 짓는 이의 이야기와, 짓고 나서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책의 한 장을 만들었다. 없던 곳에 세워진 건물로 인해 내일을 피워나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딸의 죽음을 기억하고 싶은 아버지가 만든 도서관이었다. 

건축가는 이 훌륭한 장소와 이진아 씨의 슬픈 사연을 모두 담아낼 건물을 고민했다. 그리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고인을 기리는 것에 너무 무게를 두어 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기 보다는 "이진아를 기념하되 오히려 이진아를 잊는"도서관, 시민들이 다시 찾아오고 싶어하는 밝은 도서관, 그래서 고인을 기리는 뜻이 조용히 살아나는 도서관으로 구상을 한 것이다. 20

건축가의 속내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건물을 짓기 위해서 터를 방문하고, 주변의 건물과 역사를 살피고, 이것을 의뢰한 이의 마음과 이용하게 될 사람들을 잇는 도서관. 그런가 하면 마음을 전하는 말은 이렇게 단순하고 싱겁게 쓰였다. 둥글레 이야기가 그랬다. 

한형우 씨는 고인에게 건축가로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도서관 창 밖 화단에 둥굴레를 심기로 한다. 둥굴레는 예쁜 하얀 꽃이 유월에 핀다. 고 이진아 씨의 기일이 있는 달이다. 24

딸을 잃어서 시작된 도서관, 유월에 피는 꽃을 지나면 세진 엄마의 쪽지를 보게 된다. 누구라도 울게된다. 세진 엄마는 이렇게 간단한 메모를 남겼지만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무엇에 데인 것 처럼 이 구절만 지나가면 울컥 올라온다.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지만 
그래도 진아 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것
세진 엄마의 메모에서. 27

이 책은 희, 노, 애, 락 각각의 마음으로 시작해서 사회와 역사까지 훑는 방대한 시선을 갖고 있다. 어떤 건축관련 도서보다 더 친근하게, 그러나 깊게, 그리고 따뜻하게 건물과 사회와 사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가는 말을 책의 구절로 대신한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그 속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누군가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건축에는 이야기가 담기며,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에게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또 다른 행위를 하도록 한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책 만듦새가 무척 좋다. 책 내용에 쳐지지 않는 표지의 신선함은 물론이거니와 본문 편집도 세련되었다. 
서해문집은 그럴듯한 책은 만들지 않는다. 문질빈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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