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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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군'이 '시'가 되기 위한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졌다. '시'가 된 기념으로 펄럭였던 플랜카드에는 백 년만의 쾌거! 라는 문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맙소사. 물론 그럴수도 있었다. 읍이 두 개가 되었다. 새로 생긴 읍이 내가 사는 동네였다. 염전이 있던 자리는 어디였는지 알 수도 없게 되었고, 그 자리 멀리,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큰 우유곽을 여러개 세워 놓았구나 생각했다. 어렸고, 봄이었다.

이주단지라고 불렀다. 그 이름은 우리네만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을 이주단지에 사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주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공단이 먼저 지어졌고, 달방이 성행하더니 원룸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리 건너' 사람들에게는 희한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파트를 위시한 그야말로 여느 '동'에 버금가는 동네가 형성되었다. 은행, 병원, 미용실, 술집, 빵집, 없는 것이 없었다.  

어쨌든, 옛것과 새것은 쉽게 섞이지 않는다. 스리랑카에 있는 콜롬보 '데사코다' 외곽의 경우, "지역사회는 외지인과 토박이가 분리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도 없고 결속력 있는 지역사회를 구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인류학자 막달리나 녹이 멕시코의 사례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다. "전 지구화로 인해 사람, 물자, 용역, 정보, 뉴스, 공산품, 돈의 이동이 늘어났고, 이로써 시골에서 도시의 특징이 나타나고 도심에서 농촌의 특색이 나타나는 일이 많아졌다. " 25

다리 안쪽에 사는 사람들을 옛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여가구가 되지 않는, 청년들이 살지 않는, 가장 젊은 층이 이장일을 보는. 작년에 이장이 된 분은 예순에 가까운 쉰살이었다.  

나는 머잖아 쇠락하고야 마는 동네를 떠난 아이들 중 하나다. 돌아가면 다리 건너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이주해왔다. 그들은 땅을 지어먹지 않는다. 대화는 열리지 않는다. 도시사람들이다. 길가를 걷다가 차 창문을 내려 감자 가격을 묻고 휑 가버리는 사람들이다. 길가에 떨어진 밤을 주워 먹는 사람들이다. 그 길가에 난 밤은 모두 주인이 있는 밤나무인데도 말이다. 다리 안쪽의 시골사람들은 다리 건너 이주단지에 가서 장을 보고는 한다. 그곳에서는 돈이 활발하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보았다. 그곳에서 농촌의 도시화, 도시 속에 농촌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살고 있는데, 왜 그곳에 사는 것인지 스스로 설명이 어려울 때가 있다. 왜 그들은 그곳에 사는가, 더 나은 곳은 없는가, 그런 궁금증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들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왜 이곳에 살고 있는가. 그것이 내가 선택한 일인가, 선택되어진 일인가, 동시에 일어난 일이라면 어째서 그런 것일까. 신성아파트 102동 위에 뜨는 달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사는 곳에도 달이 뜬다. 그렇다면 저들은 이곳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조용한 원룸 단지 뒤편에는 더 조용하고 작은 농촌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황토색으로 밀어진지 오래고 아스팔트 까는 냄새가 진동 한다. 푸르지오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밀어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 가끔 궁금하다. 신라면과 참이슬만 팔던 작은 가게는 어디로 갔을까. 달빛에 은은했던 감잎사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이 그런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무정부주의 건축가 존 터너의 유명한 말처럼 "하우징은 동사다." 도시 빈민은 주택 비용, 주거 안정, 삶의 질, 출퇴근 상황, 때로는 신변 안전까지 고려하여 최적의 상황을 얻기 위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house는 주로 주택이라는 명사로 쓰이지만, to house의 어원을 고려하면 산다, 
혹은 살게 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44

그렇지만 적어도 서로의 위치에 머물기 위해서 복잡한 방정식을 풀었다는 증명은 해주었다.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인 것 같다. - 지타 베르마

나는 가끔 우리 동네 이야기를 생각한다. 길가에 흐드러졌던 뽕나무, 호두나무 집, 그네, 미상이네, 벽돌집, 좀 모자랐던 부부, 윗가게 아랫가게...해질 저녁, 굴껍질을 붓고 오라던 엄마의 심부름이 생각난다. 길가 패진 땅을 살피고 그곳에 자박자박 쏟고는 발로 콩콩 눌러주었다. 그 길은 이제 아스팔트로 까맣고 탄탄해졌다. 굴껍질이 그 밑에 층층이 쌓여 있다. 길을 메꾸던 굴껍질. 예전을 메우고 있는 굴껍질...나는 그런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뷰를 도시와 농촌에 한해서 썼지만 이 책은 다양한 목차를 갖고 있다. 슬럼, 거대하게 존재하는 변두리가 어떻게 도시의 미래가 되고 있는지 냉철하게 따진다. 자본주의-집의 관계에 대한 고찰. 국가가 외면하는 가난과 가난을 외면하게 하는 국제기구의 암(暗)을 이끌어낸다. 흥미롭다. 잘 풀어썼기 때문에 누구나 읽어도 좋다.  


약속한다, 자꾸자구, 쓰레기로부터, 흩어진 깃털로부터, 잿더미로부터, 망가진 육체로부터, 뭔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한다. -존 버거 rumor 

하나의 장을 시작하는 말머리가 간결하고 아름답다. 마지막 장을 시작하는 말머리. 존 버거의 책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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