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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들어가기 전에 :
화이트데이를 맞아 고백 하나☆
좋아하는 기업이 있다♡
당신은 좋아하는 기업이 있는가? 기업이 만들어낸 상품을 좋아하기는 쉬워도 기업 자체를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고 사탕이라도 받아보려는 심사일까. 오해는 금물이다.
나는 기업이라든가 경영, 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어떤 가치가 훌륭한 것인지는 더듬거려 볼 수는 있다. 그럴리 없겠지만, 거대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어 내느라 욕도 가장 많이 먹는 기업들이 지금 소개하는 기업의 홈페이지를 하루에 세 번씩 방문하면 넌 행복해지고 넌 건강해지고 넌 웃을 수 있고* 심지어 시험도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하여간 망설이지 말고 right now, 들어가 보기를. 일단 그곳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이런 소개가 뜬다. 답답하겠지만 어떤 기업인지 놀래 주기 위해 기업의 이름과 주력 상품을 블라인드 처리한다.
●●소개
○○기업 ●●는 노사관계, 소유구조, 경영방식에 있어서 민주적이고자 합니다. 만든 ○○의 내용과 기업의 운영 방식이 따로 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자와 구매자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의 상업적 수익을 늘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좋은 ○○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의 관점이 아닙니다. ●●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좋은 조합이 ●●의 ○○을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 우리가 중요시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겨우 <소개>를 읽고 감동해서는 곤란하다. 그 옆에 있는 <살림살이>라는 메뉴를 보자. 이곳에는 기업 내부에서만, 그것도 볼 수 있는 사람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 [수입 지출]이 상세하게 공개되어 있다. 숫자로 어지러운 보고서 밑에는 이해를 돕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다달이 올라오기 때문에 지금 보는 것은 바로 지난달의 현황이다.
판매는 지난달에 비해 줄었지만 외주제작으로 인해 수입은 2천만여 원가량 가량 늘었습니다. 하지만 밀린 4대 보험과 인쇄비 미지급분을 처리하느라 지난 달보다 지출 비용이 2배 가까이 올랐네요.
(중략) 그리고 출시된 지 5개월이 지난 ○○가 출시 때보다 더 높은 판매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어디서 반응이 촉발된 건지 알기 힘든 상황이 영업자로서 좀 답답하긴 하지만, 다이어트와 성형 등의 문제의식이 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자, 그렇다면 문제. 이곳은 어떤 기업일까?
바로 바로 바로,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이다. 블라인드처리한 ○○는 출판, 혹은 도서를 넣어서 읽으면 된다. ●●는 물론 후마니타스이다. 후마니타스가 뭐하는 곳인지 몰랐다면 오늘부터 알면 된다. 노파심으로 말해두지만 나는 후마니타스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런 책은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지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들어가봤을 뿐. 그 후로 가끔 들러 읽었던 소개를 읽고 이번 달은 적자가 아닌가…살펴보기도 한다.
후마니타스의 소개에서 어떤 부분에 가장 놀라웠느냐면은, 바로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관점이 아닙니다.' 라는 부분에서였다. 사실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이 대부분의 기업 아닌가. 그들은, 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런 희생을 발생시키는 것일까? 설마 소비자를 위해서? 맙소사. 책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는 훌륭한 제품에 가려진 희생을 추적한다. 소비자는 달콤하거나(네슬레, 콜라) 편리하거나(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챙겨준다는 것이나(노바티스 등) 이상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게 내 주변에 머무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 50개 기업의 윤리보고서를 작성한다.
2. 윤리보고서의 기준
리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제목에 맞춰 집중하기로 한다.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참, 들어가기 전에 세계 50대 기업에 삼성전자가 들어있다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실을 알린다. 리뷰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삼성전자는 서운해 하지 말길.
일단 등급평가를 어떤 기준으로 이뤄질까? 저자는 지속 가능성의 주제, 중요한 윤리적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세 평가기관의 자료를 이용했다. 뮌헨의 외콤 리서치, 취리히의 지속가능성 평가기관 SAM, 암스테르담 서스테널리틱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기준을 간단하게 알아보면, 외콤리서치(와콤이 아니다)-사회, 문화, 자연에 대한 친화성을 기준으로 평가. 사업 부문에 따라 가중치가 다름. SAM-경제, 환경, 사회적 요소가 일정한 역할, 지속 가능한 경제적 능력도 포함. 서스테널리틱스-환경, 사회적 요소, 기업 경영의 세 분야를 평가한다고 한다.
알파벳 평가와 함께 신호등 평가를 첨부해서 등급을 메기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평가기관들도 대부분 공개된 자료에 의존해 평가할 수밖에 없어 객관성의 한계를 지닌다. 공개된 자료는 대부분 자사가 낸 보고서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 특별한 문제가 있는데, 바로 기관들의 등급 평가-업종 최고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최고인 기업은 비록 해당 분야가 전체적으로 큰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어도 좋은 점수를 받는다. 59' 이것의 문제는 예상 가능하다.
가령 원칙적으로 성능이 굉장히 우수한 자동차가 대부분 불필요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가려지고, 그와 함께 제약 회사가 많은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사실도 가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업종 최고>기준에 따라 평가를 내리기보다 전 분야의 윤리 문제도 함께 고려함으로써 우리한테 정말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고자 한다. 60
참고로 50대 기업중 페이스북은 빠져있는데, 이 이유를 저자는 쿨하게 고백한다. '평가를 포기했다'고.
페이스북에 대해서는 자체 평가를 포기했다. 이 기업이, 의도적으로 판단을 보류해 놓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던졌기 때문이다. 별점 다섯 개를 받은 기업은 한 곳밖에 없다. 60
평가포기, 이것은 우리가 공평무사하게 윤리를 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 새롭게 생기고 있는 부딪혀야 할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3.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본격적으로 애플에 대한 평가에 들어가자. 애플은 평점 별 세 개를 받았다. 아주 좋은 숫자는 아니나 그렇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애플이 처한 윤리적 문제는 우선 하청업체에 대한 것이다.
2012년 5월 애플의 발표에 따르면 하청 업체 직원의 95퍼센트가 한 주에 60시간을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국제적 최저 기준만 간신히 지키는 수준이었다. 204
애플의 발표를 따랐을 뿐인데, 직원 대부분이 한 주에 60시간을 일한 것이다. 저자는 그래도 국제적 최저 기준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내부 문제를 보고하는 것을 고무적(!)이라고 평가한다. 불필요한 의심일까? 60시간은 줄이고 다듬어진 60시간이 아닐까 하는 의심. 이런 내부 문제의 보고 중 중개인들이 개입하는 <비자발적 노동>에 대한 보고를 예로 든다.
<비자발적 노동>에 대한 보고가 한 예다. 비자발적 노동이란 중개인들이 노동자들에게 너무 많은 수수료를 갈취함으로써 사실상 중개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억지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따라서 애플은 만일 중개업자들이 청구하는 비용이 해당 노동자의 한 달치 세후 월급을 조과하면 그 초과된 돈은 모두 하청 업체가 지불하도록 했다. 이것은 중개업소를 거쳐 중국 내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들과 관련된 문제다. 204
다시 정리하자. 비자발적 노동, 말 그대로 자발적이지 않은 노동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처우다. 내 손에 쥐어있는 스마트한 아이폰은 그런 노동 위에 지어져 있다. 이 책은 기업의 윤리 상태를 체크하게 하면서, 나의 소비 또한 돌아보게 한다. 최저의 돈으로 최상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소비의 윤리 아니던가, 싸고 질 좋은 물건을 구입한 현명한 자신을 토닥이지만 그러한 값이 나오게 된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가격 뒤에 숨어있는 노동의 댓가, 윤리적 소비란 이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애플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2010년, 폭스콘에서 노동자들이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폭스콘 노동자 연쇄 자살사건. 폭스콘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생산하는 주요 공장이다. 공장에서는 작업중 동료들 간의 대화 금지, 화장실도 5분 내로 다녀와야 하고, 식당에서 밥을 남겨도 별점을 매긴다. 세 번 적발 시 해고라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열한 번째 투신자가 발생하자 기숙사 옥상에 3미터 높이의 철망과 아래쪽에 추락 방지를 위한 이른바 ‘사랑의 그물’을 설치하고 심리 상담사를 배치하는 것 외에 근본적 해결책은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 내용은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사랑의 그물이라니? 노동자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 그물을 설치한다니?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심지어 노동자들이 고액의 배상금을 노리고 투신한다며, 노동자들에게 앞으로 자살이나 자해에 대해서는 회사가 배상하지 않는다는 협의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가 엄청난 반발로 바로 폐기해야만 했다'는 내용이다. 이후, 폭스콘과 애플에 대한 비난과 규명을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다. 이 중, 영국 가디언의 주말판 <옵저버>의 사설을 소개한 프레시안 기사를 눈여겨볼 만하다. '애플 아이폰을 중심으로 논쟁이 커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세계화가 불러온 노동자들의 비극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는 것.
기업의 윤리 프로필은 하나의 기업 두 장 반-세장의 분량을 차지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이 일부를 독자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윤리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애플과 폭스콘, 자살 사건 모두 오늘 알게 된 일이다. 책으로 말미암아, 화려하고 달콤하고 편리함에 가려진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보이는 것에 가려지는 눈을 뜨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소비를 바꾸는 것은 생활을, 물건으로 연계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