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피터 판과 친구들 기린과숲 e시선
유형진 / 기린과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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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판과 친구들

 

'피터 판'에서 두 가지*를 떠올린다그것은 '피터 팬'의 심심한 변용일 수도 있고피터라는 이름의 판Pan이라는 가능성일 수 있겠다는 것피터 팬은 그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요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Pan은 목신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키고 춤과 음악을 좋아하며 명랑한 성격을 가졌다는 반인반수다첫 장을 넘기고 피터 판이 '피터 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의 친구들이 그다지 매력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후문이다.) 피터 팬의 친구라면 팅커벨이라든가혹은 팅커벨이 아닐까그러나 피터 판의 꿈과 모험을 제일 먼저 맞는 이, <초록코털괴물>이었다그래서 피터 판은 판Pan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패닉'이라는 말이 판Pan에게서 유래한 사실을 아는지간혹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 악몽을 불어넣어서 그렇다고 한다뿔난 망아지처럼 초원을 뛰어다닐 피터 판의 '친구들'을 만나자그리고 잊지 말자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은 바로 '피터 판'이라는 것을.

 

피터 판과 친구들이 떠날 곳이 <허니밀크랜드>라고 했을 때 [워터멜론 슈가]가 잠시 떠올랐지만, <초록코털괴물>과 <풍선머리조종사>와 <옷걸이요정>의 생김새를 떠올리느라 둘의 연관성을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다음에 또 읽으면서 [워터멜론 슈가]와 <허니밀크랜드>의 유사점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데 친구들 이름이 뭐라고요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성급한 결론은, 우리가 가보지 못하는 세계는 저마다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 황홀하지만달콤하고 아름다운 만큼 현실의 추접스러움과 절망스러움을 동반한다는 것. <허니밀크랜드>도 다르지 않다. '흑탕물과 폐유가 뒤섞여 흐르는 여름날의 어떤 아스팔트에 서서 우리의 계약을 떠올립니다.'「피터 판과 친구들 프롤로그」 부분.

 

피터 판과 친구들이 '에피소드 12'까지 만들동안 피터 판은 등장하지 않는다그러나 피터 판의 친구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피터 판의 분신이라면피터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고 있는 셈이다짐작했겠지만. <초록코털괴물>과 <옷걸이요정>, 그리고 <풍선머리조종사>는 피터 판의 친구가 아니라 피터 판 '마음 속'에 사는 친구들이다이들은 각기 피터 판의 한 부분씩을 맡고 있다합치면 피터 판의 모습을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시도하지는 않겠다. 어떤 '윤리'라는 생각이다.

 

피터 판은 이렇다.

<초록코털괴물>처럼 '행복'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행복하다그러나 <옷걸이요정>처럼 행복을 돈을 주지 않고 살 수 없다고 믿는다그래서 나의 다른 일부, <초록코털괴물>에게 늘 1700원씩의 행복을 산다.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마음이 가장 예쁘게 생긴 것 같은)<초록코털괴물>은 거울보기 좋아하는 <옷걸이요정>을 사랑한다그러나 <옷걸이요정>은 <초록코털괴물>의 1700원치 행복을 사랑할 뿐이다이 둘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다. <초록코털괴물>이 <옷걸이요정>을 사랑하면 할수록 <옷걸이요정>은 불안하다행복을 사지 못할까봐. 그러나 <초록코털괴물>은 짝사랑에 슬퍼하느라 행복해’, 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눈물로 다 흘려버린다둘은 다른 곳에서 살아야 맞는 것 같다그러나 한 마음 속에 틀어 있다피터 판의 마음속에는 <초록코털괴물>이 있는가 하면, <옷걸이요정>이 있기도 해서 심란함이 그치지 않는다그리고삼천 번 죽고도 살아있는 <풍선머리조종사>도 있는데, <풍선머리조종사>는 매일 죽고도 살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이 둘의 괴리를 벗어나고 싶다.


<풍선머리조종사>는 <초록코털괴물>을 무척 싫어한다싫어하는 이유는 나오지 않는데 나를 근거해서 추측해 보건데아마도 병신 같은 나를 싫어하는 이는 누구보다 나인 경우여서가 아닌가 한다행복하면서행복을 팔면서 <옷걸이요정>에게 눈물을 질질 짜는 <초록코털괴물>이 꼴도 보기 싫다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두통이 자주 오는 <풍선머리조종사>는 여행가기를 좋아한다조부모에게 물려받은 바람이 <1밀리바>씩 빠지는 풍선 머리를 치유하기 위해 떠도는 것이다직감하겠지만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다시 풍선으로 태어나지 않고서는그리고 풍선머리조종사가 계속 여행할 수 있는 것은매일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판의 친구들은 친절하게도 외양을 알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모습의 일부에만 집중해 부르느라 전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이렇게 흔한 비유를 들고 싶지는 않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초록코털괴물>이라는 이름은 초록코털은 쉽게 떠올일 수 있지만 초록코털이 있는 얼굴, 다리(?)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옷걸이요정>은 옷걸이의 모습 그대로다. 요정이라니 우드재질에 고급스런 마감을 갖으려나 상상할수도 있지만 우리집에는 그냥 세탁소에서 주는 흰색끈으로 감은 철사 옷걸이가 많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옷걸이요정>을 생각하면 왜 행복을 돈으로 주고 사야 안심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어떤 옷이든지 입어 볼 수 있지만 모두 거울이 있는 옷장 속에서만 한정된다. 어떤 옷이든지 입을 수 있지만, 어느 것도 자신의 옷일 수는 없다. (게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은 그야말로 걸치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옷을 입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옷걸이요정>은 거울 속의 자신만 볼 수 있다. 이 허함, 허무함을 1700원으로 위로하는 알뜰함을 생각하건데, 그는 분명히 세탁소 철사 옷걸이일 것이다. 


<풍선머리조종사>역시 마찬가지이다. 외양은 '풍선'일 것 같은데 '조종사'라고 하니 떠올리기 쉽지 않다. 후에 양파를 좋아한다든지, 양파망을 하고 있다든지 세부적인 묘사가 나오지만 그것 역시 아주 일부를 표현하는 것 뿐이다. 피터 판은 친구들의 속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그들을 잘 구현해 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불러내는 이가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 '이만큼'이라는 한정일 수 있고, 그들을 훤하게 손바닥 보듯 보고 싶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가능성을 후자에 두고 싶다. 이유로 '비밀이 없는 영혼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어떤이의 말로 대신하자. 자기 마음 속의 친구를 알아보는 일이라도 그렇다. 나의 끝까지 달려나가, 내가 모르는 나의 원초를 파내서, 내 욕망이 부딪히는 소리를 모두 받아 적는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달그닥 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의 아주 '일부분'만을 알아채고 적는다. 이를테면 '삼키는 눈물'의 맛 같은 것. '휴가철 막힌 고속도로에서 파는 뻥튀기의 뻑뻑한 맛입니다.' 피터 판과 친구들 프롤로그」 부분.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에필로그다. 그곳에 '슈퍼문'이라는 기막힌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동네 슈퍼문(세븐일레븐)은 일단 닫히지를 않아서 언제 열릴지를 모르는데, 시인의 말에 따르면 '행복이란 슈퍼문처럼/동네마다 문 여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지만/일생에 한번은 무심코 쳐다본 슈퍼문으로부터/얼음같은 총알이 날아와/당신 심장에 박힐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피터 판과 친구들 에필로그」 부분. 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더 쓰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여 놓았다. 


그때 당신은 살고/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피터 판과 친구들 에필로그」 부분.

 

겁도 없이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시인이다. 

나는 이제 '피터 판'과 '친구들'을 다 만났다시집을 덮으면 이영주 시인의 간결하고 다정한 발문을 만날 수 있다이제 내 친구들을 불러야겠다하나 둘셋 넷‥‥. 이름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름을 잊고 있었던 친구다. 우리동네 슈퍼문이 잠시 밤을 갖고, 무심코 열리는 날까지 불러봐야겠다.

 






*(궁금) 피터 래빗에서 왔을 가능성은 없나요? 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답변) 토끼는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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