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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이야기 -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
김웅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생물계 큰 줄기에서 '내려온descent'존재
데본기, 캄브리아기, 4,800만년 전 같은 단어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연에라도 마주치기 어려운 이름들. 아침, 지하철,
허기, 늦은 저녁은 데본기를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황망함이라고 해야할까. 생물학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이해한다는 듯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코끼리와 개미는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것 외에 서로 닮은 데라곤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전자들은 상당히 서로 비슷합니다. 154> 늦은 밤 열한 시, 생물학 이야기라는 책을 들고 개미의 몸으로 코끼리를 이해해보려는 무모함을 응원하는 말 같다. 코끼리 발등에 올라서 코끼리를 찾게 되는 우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생물학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생물학을 감상한다는 기분(?)으로 시대적 순서에 따라 자유롭게(?) 쓰겠다는 말을 남기며 서문을 떠난다. 이것을 이루겠다는 듯 목차는 '생물 이야기', '진화 이야기', '생명 이야기', '생물학과 사람 이야기'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라고 붙이는데. 시종일관 높임말은 흡사 동화책 읽어주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생물(학)이라면 중학생때 완두콩과 린네를 떠올리는 것이 다인터라 어떤 것을 이야기해도 처음 만나는 아이처럼 신기한 까닭이다.
'
어류의 시대'라고 불리는 데본기의 한 시점인 약3억 7,500만 년 전, 어류로부터 최초의 사지동물인 네발 달린 물고기가
나타났습니다. 당시 바다 속에는 길이가 2m~5m나 되고 강력한 이빨로 무장한 거대한포식 어류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지요. 이빨과
갑주의 군비경쟁과 살벌한 포식전쟁을 피해 누군가가 육지로 탈출하는 것이 시간문제였던 겁니다. 75
이
런 대목을 읽을 때, 옆에 그림이라도 있었으면, 거기에 노련한 성우의 목소리까지 있다면 박진감 넘치는 데본기의 한
장면. 그건 것 없더라도 다큰 성인 남녀는 이 정도 깔아 줬으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지에 네발 달린 물고기가 나타난
심정을 말이다. 우글거리는 포식 어류를 피해 뭍으로 나오려는 마음을 미생으로부터 이해하자. 물에서 뭍으로 다시 공중으로 나를
살려놓고 싶은 생물 진화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새로운 주제의 책을 만날 때, 다른 언어를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보의
전달, 깊은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한 앎의 다른 구간이 있음을 알기 위함아닌지. 그것만으로 충분히 읽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별은 캄브리아기에는 아직 그 별로부터 빛이 지구까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별들을
그때에는 더러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욕지의 바위 아래나 그늘지고 습기 있는 곳에서는 조류가 이끼처럼 자라고 있지나
않았을까. 혹시 작은 연체동물들이나 절지동물들이 그 조류 속에 숨어 있지 않았을까. 87
캄브리아기, 발음도 어려운 이 시기에는 별빛이 없다. 아직 그 별로부터 빛이 지구까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 시간을 이렇게 당겨 돌아가면 이곳은 별빛이 없는 깜깜한 하늘이다.
만일 생물계가 강호의 무림과 같고, 생물들이 기발한 생존기수로가 싸움의 비급을 개발하고 익혀온 무예의 고수들과 같다면, 그 고수들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하며 연마한 무예와 내공을 체계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생물들은 수많은 비밀과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외형적 다양성과 행동, 생태적 분포는 모두 생물의 기원과 과거의 역사를 반영합니다. 111
진
화를 설명하는 장에서 강호와 무림을 부른 것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름 없는 무수한 개체에게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계파의 고수로서, 어느것 하나 만만치 않은 시간을 지내왔다는 역사를 부여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정도 되면 고리타분 혹은
어려움이라는 생물학의 이미지는 날아가고 없을 것 같다. 이 뒤의 설명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코드 역시 그렇다며 팔레스타인 사람을
부르고 북미 원주인들, 남북의 대치에 대해 일침한다. 평면적인 관찰로 알 수 없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다고 꼬집으면서 앞면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면 그 외 다른 수많은 면을 만나야 함을 생물학을 들어 설명한다.
생물과 무생물은 원래 하나였으니 생물학과 물리과학이 결국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만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255
이
쯤되면 거의 종교적인 통찰이다. 알고보니 다윈이 인간에 대해 통찰한 것 역시 그렇다. 다윈은 <인간이 생물계의 큰
줄기에서 '내려온descnet'존재라고 겸손히 표현287>했다고 한다. 내려온 존재. 유달리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받아 온 것 뿐이라는 설명은 인간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 같다. 저자는 이어서 다시 한 번 다윈을 인용하는데. 다윈은
<"약하고 의탁할 데 없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커다란 악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다윈은 진화의 방향성이나 목적성을 인정한 바 없습니다.
진화에는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이죠. 288> 진화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는 마지막은 '발전된', '더 나은'으로 오해하는
'진화'를 일축한 모양새다. 악하려고 특별히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다윈의 선언을 정면으로 맞서는 기분이다. 약하고 의탁할 데 없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산다, 이곳의 하늘은 캄브리아기 때와 다른 이유로 별빛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의
생물학은 오늘의 밤하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후의 독자는 오늘의 난투전을 어떻게 읽을까. 인간이 생물계의 큰
줄기에서 '내려온descnet'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눈이 유일하게 있었던가 하면, 인간 외의 가치를 지표삼아 인간-아닌 것으로 내려다 보는
눈이 빈번하게 많다. 한낱 미물이라도 그가 이뤄온 역사는 쉽지 않았으므로 뜻밖에도, <생물학 이야기>라는 체를 통과해
마지막으로 받은 말은 '겸손'이라는 단어인데. 노력하지 않아도 악해지는 삶에서 '겸손'이라는 말을 소화할 수 없게 된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새해가 이틀 앞이다. 딱딱한 떡을 오래,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