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에 꿀꺽!
카이오 히터 글, 로랑 카르동 그림 / 느림보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기 오리 일곱 마리가 연못에서 참방참방"


그림책은 '아기 오리 일곱 마리'로부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말해볼까. 아기 오리는 '어미'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참방참방, 이라는 귀여운 말에는 어떤 근심도 없이 태평하다. 표지에서는 일곱 마리 아기 오리는 똘똘 뭉쳐 수면 사방을 내다보는데, 서로를 제법 단단히 지키는 것 같지만, 위험은 그 밑에 도사리고 있었다. 악어는 수면 아래에서 뽀글뽀글 숨을 쉬며 한눈에 아기 오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그림에 "한입에 꿀꺽!"이라는 (!느낌표까지 가미된) 제목. 긴장을 이렇게 단순한 장면에 한 줄의 글귀만으로 이뤘다.



책을 작은 손으로 집어 든 아이가 있다. 자신처럼 작고 귀여운 아기 오리를 바라볼 너덧 살의 아이. 이 나이 아이의 내면은 '초자아'라는 새로운 심리적 구조를 준비한다. 초자아는 자아를 관찰하고, 명령을 내리고, 판단하고, 처벌의 위협을 주는, 부모와 완전히 똑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일까. 동화에는 '어미'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직 연못과 아기 오리 일곱 마리와 거대한 악어 바나베만이 전부다. 네 살배기는 자연히 아기 오리 일곱 마리에게 자신을 이입하는데. 아기 오리들의 모습은 자신이 맞닥뜨리는 세계를 이제 자기의 것으로, 부모와 분리된 '나의 세계'로의 인지를 돕는다. 아기 오리들이 부모를 찾거나 보호를 바라지 않고 엄청나게 큰 악어와 대면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내가 아기 오리라면, 이라는 가정을 설 풋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커다란 악어는 '바나베'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아기 오리 일곱 마리는 첫째, 둘째, 셋째라는 서수의 호칭만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름' 하나에 자신 하나를 같이 작동하지 못하는 일을 이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기 오리 한 마리가 아니라 일곱 마리나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이 생겨서 분간하기 어렵고,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악어에게 먹히는 순서대로 불리는 막내, 여섯째 등의 숫자일 뿐이다. 책 표지를 다시 볼까. 오리 일곱 마리가 하나로 모여 있는 그림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오리, 성장하게 될 큰 오리가 겹치는 것 같다. 결국, 일곱 마리는 한 마리 큰 오리 이전의 모습을 뜻하고 성장하지 못한 미숙한 아이가 그리게 될 어엿한 큰 오리의 '상'을 암시한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이 종잡을 수 없고 여러 개의 꿈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아이의 특성이 일곱 마리의 오리에서 각각 나타난다. 혼자서 참방참방 헤엄치는 걸 좋아하는 막내 오리, 허둥지둥 도망을 못 쳤던 여섯째 오리,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다섯째 오리, 멋진 이모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넷째 오리. 악어 바나베는 여섯째 오리까지 순탄하게 잡아먹고(한 입에) 나머지 오리는 힘으로 잡아먹는 게 어려워지자 여러 가지로 변신을 한다. 특히 배트맨으로 분장하고는 '나와 함께 바나베를 잡으러 가자'며 꾀는 부분은 놀랍다. 배트맨이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더 탁월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야기는 파탄으로 흘러, 이제 아기 오리는 여섯 마리나 잡아먹혀, 마지막 남은 새끼 오리는 울면서 바나베에게 빈다. 어디서 그런 말을 주워들었는지 당뇨병이 있다며, 뼈마디도 욱신거린다며(웃음) 잡아먹지 말라고 애원한다. 이렇게나 티 나는 거짓말, 어른의 말을 잘 담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인다. 아기 오리 일곱마리가 한 마리의 큰 오리가 되기까지. 일곱 개의 수난 일곱 번의 좌절, 일곱 번의 역할을 겪어야 한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지. 자, 이제 이야기는 어떻게 끝을 만들까. 하나 남은 아기 오리는 이 위험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책을 다 덮은 후, 아이는 일곱 마리가 한데 올망졸망했던 모습에서 늠늠한 큰 오리를 하나를 발견하게 될까?


*네이버 지식백과_심리 성적 발달 단계, 심리학 용어사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