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의 아름다운 개는
김명신 지음 / 기린과숲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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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심한쓸데없는질이 떨어지는"

긍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세 가지 꾸밈은 모두 접두사 '-'가 갖고 있는 뜻이다찾아보니 대략 세 갈래로 나뉘어 쓰이는 것 같다그러고 보면 '-'처럼 많이 불리는 이름도 없을 거니와, '-'처럼 뜻 모르고 비하되며 낭비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얼핏 살피면 동물 ''에 기댄 듯한 제목나의 아름다운 개는』. 그러나 이곳에는 하이픈이 빠졌다동물 개 그림이 표지부터 그려져 있지만 그건 개라는 동물을 그린게 아니다. '정도가 심하고 쓸데 없고 질이 떨어지는 것'들을 개라는 동물의 얼굴에 빌려 낸 거라고 읽고 싶다그렇다면 하이픈 없이 아름답고 순진한 눈망울에서 왜 '-'을 붙여 어둔 곳으로 내려가는 걸까. 그늘 깊은 곳에서 뒹구는 하찮은 것들을 살피는 이유가 말이다. 이곳은 '-'같은 곳이 그렇지 않는 곳을 잠식하는 세계. 목소리는 묻는다. 한 뼘 남은 곳의 참됨을 이르는 시는 너무 많지 않니개-같은 걸 시로 부르면 안되니여기는 동물 개와 접두사 '개-'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말놀이의 세계다.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꽃을 꽂은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엉덩이에 꽃을 꽂고 꼬리를 노래하는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오줌을 누지 않는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개들이 분명한가부분여기 '분명한가'의 반복은 '검은 개들이 맞느냐'는 의심의 반복이다대답은 없고 분명한지 물으며 검은 개를 살피는데, '검은 개'가 상기시키는 두려움손톱만한 흰자의 무서움매끈한 어깨를 확인하려는게 아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은 우스꽝스럽고 수치를 모르는 형태가 맞느냐는 거다. '엉덩이에 꽃을 꽂고 꼬리를 노래'하며 오줌을 누지 않는가. 그 개는 분명 짖지도 않을 것이다. 오줌을 누지 않으므로 영역이 없다'꽃은 바치기 위해 피는 거지꽃은 침을 뱉기 위해 지는 거지말미에 가면 좀 더 정확해질까. 이곳에 쓰인 꽃은 아름다운 일에 초대되는 속성이 남아있지 않다. 꽃이 피는 이유를 그 자체의 완성이 아니라 수단으로 '바친다'는 뜻에 의해 재단했다. 정도가 심한쓸데 없는질이 떨어지는의 '개-' 의미를 '검은 개'에 완전히 심은 것도 모자라 '꽃'을 더해 조롱한다. 불온한가그러기에 더없이 쉬운 세상이다. 그래도 춥지 않았던 기억이 있잖아. 그러나 추위만큼 괴롭혔던 더위를 따뜻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불온하다 


개들이 분명한가」는 '개-'에 대해 쓰인 시 중 가장 기분 나쁜 시다. 이 후로 시는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도 '개-'를 읽을 수 있다. '개-'는 개살구, 개떡처럼 원래의 상태를 나쁘게 설명하는 속성이 있다. 살구와 떡으로 온전하고 싶었으나.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의 논리정연을 새까맣게 다 적을 필요는 없다. '흙 산에서 보면 참 좋았어고만고만한 집들이 비를 맞을 땐 붉은 기와들이 더욱 붉게 피어났지축축하게 젖은 기와를 밟으며 도둑 놀이를 하던 그 시간도'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습니다부분시의 마지막은 '오늘 집 값이 매겨졌어,' 다. 뒤를 부러 잇지 않는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쉼표 하나가 긴 말을 담고 있으니.


'개-'가 있는 곳은 우스꽝스럽고 수치를 모르며 조롱한다. 온전치 못하고 까닭 모르게 밀려난다. 안부를 묻듯 그곳의 날씨는 어떨까. '춥다→→간절하다←←따뜻하다// 내 말의 눈망울이네첫눈은 하얗네어린 노동이 살고 있네부모는 틈을 잃었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부분'춥다'와 '따뜻하다' 사이를 '간절하다'라고 적는다. 국경에는 눈이 내린다. 길이 끊기고 다시 한 번, '간절하다'는 이렇게 자리를 매긴다. '죽을 것만→간절하다←살 것도// 생은 첫눈만 내리고/ 신은 첫눈만 달라하네'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부분. '죽을 것만'과 '살 것도'의 뒤에 생략된 '같다'는 말을 '간절하다'라는 뜻으로 바꿨다오빠는 취한 말을 끌고 국경을 넘는다. 동명의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 왔다. 오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생계가 막히고 겨울이면 길을 에우는 눈보라, 말조차도 술을 마셔야 견딜 수 있는 혹독한 추위에서 남매는 밀수를 하기 위해 떠난다. '살아남는다'는 말을 뱉지 못한다. 그 말을 지우고, '간절하다'라는 말로 채웠다. 이곳의 날씨는 간절하다. 여기는 '개-'라는 말로 피폐를 견뎌야 했던 곳이다. '개-'라는 이유로 원래 갖고 있는 뜻을 버려야 했던 곳이다. 시집 『나의 아름다운 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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