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다고 우리는 말했다. 이 사랑의 침묵의 충만함은 죽음의 침묵에까지 건너간다. 사랑과 죽음은 서로 하나를 이루고 있다. 사랑 속에 있는 모든 생각과 행위는 침묵에 의해서 이미 죽음으로까지 뻗어 있다. 그러나 사랑의 기적은 죽음이 있을 수 있는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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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한계를 짓고 분명하게 해주며, 사랑에게 사랑에 적합한 것만을 주는 것은 말이다. 사랑은 말을 통해서 구체화되며, 말을 통해서 진리 위에 서게 되며, 말을 통해서, 오직 말을 통해서만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된다. "사랑은 단순한 하나의 샘물과 같다. 그 샘물이 둘레에서 꽃들이 자라나는 자갈 바닥을 뒤로 하고 이제 하나하나의 물결과 함께 냇물로서 혹은 강물로서 자신의 성질과 모습을 변화시켜가다가 마침내 가없는 대양 속으로 흘러든다. 그 대양은 미성숙한 정신을 가진 자에게는 참으로 단조로워 보이지만, 위대한 영혼은 그 해안에서 끝없는 명상에 잠긴다."(발자크)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까치. 110~111쪽
신림의 어느 책방에서는 책표지를 싸준다. 투명한 비닐을 잘 드는 가위로 재단을 하는 동안 손님은 그럴 듯한 이유로 조금 더 서성여서 좋다. 아쉬워 서점 안쪽을 한 번 더 다녀와도 좋고 표지를 잘 싸는 주인의 손을 유심히 보는 것도 좋다. 책 안쪽에 붙은 테이프는 처음에는 투명하게 붙지만 나중에는 노랗게 떠 지나간 시간을 짐작하기 좋다.
<침묵의 세계>는 신림의 어느 책방에서 왔다. 곁에 둔지 일 년이 지났으나 읽은 부분과 읽지 않은 부분을 헤아리기 어려워 언제나 낯설게 펴보는 책이다. '가까이 두고 싶지만 가능하면 끝까지 읽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될까. 언제나 새 책처럼 두려는 마음은 읽은 부분을 잊고 읽지 않은 부분을 헷갈려 놓기로 했다. '침묵'에 대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토록 두껍게 쌓인 말을 들여다 보면, 침묵에 대한 이해를 앞질러 사랑에 대한 이해를 전해 듣는다.
'그러나 사랑의 기적은 죽음이 있을 수 있는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려울 것도 모를 것도 없는 말 앞에서 마음을 절고. 다음 구절로 넘어가면, 말이 침묵보다 불완전 함에도 사랑에 있어서는 침묵보다 위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된다.
'사랑은 말을 통해서 구체화되며, 말을 통해서 진리 위에 서게 되며, 말을 통해서, 오직 말을 통해서만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된다'
고백하는 말은 우리 말이 없었던 날들과, 말을 주저하는 날들에는 언제나 조금씩 사랑 없었음이다. 말이 필요한 곳에 침묵이 있던 까닭은 침묵이 쉽고 침묵은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극진한 형태는 침묵일 것이나, 사랑은 말을 통하지 않고서 전해질 수 없다. 바다 속이나 하늘 위에는 인간의 말이 닿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말이 침묵과 같은 형태가 된다. 인간이 사랑을 약속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이 더럽고 위험한 땅위에서만이다.
새해 선물로 책을 세 권 선물 받았다. <너희는 고립되었다>세 권.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집이라는 설명이 간단하다. 사진이라는 '침묵'을 사진집이라는 책으로 엮어 그것은 하나의 '말'이 되었다. 사진집은 보통의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사진집은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분들이 직접 보내시는데 내일부터 오체투지를 또 하기 때문에 오늘 보내신다는 말을 들었다. 선물을 주신 분은 한 부는 내가 갖고, 두 부는 꼭 전해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길 바라셨다.
그래서 책은 내일 받을 수 있다. 그 내일은 누군가의 오체투지가 시작되는 날이다. 오체투지는 불교에서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삼보께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절의 이름이다. 신께 바치는 기도는 깊고 은밀해서 기도는 침묵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그들이 엎드리는 기도는 아스팔트 위에 있다. 신이 아니라 사람에게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무한히 낮추면서 오체를 바닥에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직 이 더럽고 위험한 지면 위에서만 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만 이곳에 말이 모여야 함을 온 몸을 당겨 크게 쓸 수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곳에서만 말하지 않는 이들의 침묵을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