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을 쓰는 남자는 신문사의 부탁으로 여자에게 책을 전해주러 간다. 낯선 주소는 낡은 창고에 도착한다. 그곳엔 임신으로 배가 무거운 여자가 있다. 배를 부르게 한 이에게 버려진데다가 밀린 숙박 빚 때문에 창고에 갇혀 있었다. 남자는 책만 전해주고 가면 그뿐이었지만. 여자는 남자를 붙잡는다. '당신의 글을 읽어왔어요' 여자는 '그런 이야기'가 무척 목말랐으므로 '잠깐 얘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팔목을 잡는다. 둘은 밤이 새도록 대화를 나눈다. 


사람은 왜 사는걸까요. 당신은 왜 죽지 않지요. 지금도 충분히 자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자는 웃으며 뭐라고 대답한다. 가난이 다 드러나는 지저분하고 좁은 세간에서 남자는 여자가 쓴 시와, 그림과, 글을 보게 되고. 남자는 말을 잃는다. 말을 할 수가 없다. 후에 그는 그날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곳에서 몇 번이나 나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어지는 독백. "그녀를 몇 번이나 안고 싶었지만 역시 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남자는 그날 밤 늦게 그녀에게 돈을 좀 주고 나온다. 배고플 때 무엇을 먹으라며 두고온 돈은 그의 차비였고, 그가 갖고 있던 전 재산이었다. 남자는 몇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2

그런가 하면 자신의 '재능'이라는 것을 발견해준 남자에게 불안을 묻는 여자의 마음이당신은 내 재능을 보고 반했다고 했잖아요그런데 내가 당신의 생각보다 재능이 없으면 어떡하지요? 이 말에 남자는 빙긋 웃으며 '그게 무슨 소리냐'하는 얼굴로 묵묵히 글을 쓴다여자는 대답을 조금 더 기다렸다가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초를 켠다. 벽에 기대 앉아 글을 써내려 간다. '버린 아이'라는 제목이 화면에 크게 잡히고 눈물이 번진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아팠던 일을 글로 준비한다. 그에게, 그리고 그를 반하게 한 재능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간절히 쓴다.


#3

1930년대 중국의 천재 여성작가 샤오홍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다. 영화는 길지만 체감 시간은 보다 짧다. 동시대 중국의 문인을 알고 있거나 중국 문학사조를 안다면 더 없이 좋겠으나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 탕웨이는 오롯이 그녀의 분신으로 화한다. 탕웨이는 어떤 얼굴도 아름다워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마저 오래 남는다. 가령 치파오를 입고 작은 빈터에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 같은 것. 그러나 그것은 안아주고 싶거나 무엇을 덮어주고 싶은 등이 아니다. 작가로서 다음을 고민하는 무거운 등이고 마음과 달리 자신을 겉도는 사랑으로 인한 고뇌가 짊어진 등이다. 거슬러가면 집안에서 버려지고 그녀 역시 집안을 버렸던 날들이 새겨진 등이고 자신의 아이를 비롯해 많은 이들을 버리고도 여전히 버티는 등이다. 지난하던 날들을 지나 사랑을 만나고 루쉰과 우정을 나누고 문인들의 환대를 받아도 그녀에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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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1-0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는데요 봄밤님. 이 글을 읽고 봤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글이 참 좋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봄밤 2014-11-09 19:0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보셨군요. 그렇다면 더욱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 뿐이란 것을 아시겠지요. 하하. 영화는 길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몇 장면들은 충분히 멈추고 싶은 거였다고 기억해요. 그때와 지금 날씨는 몰라볼 정도로 다르네요. 그러니까 락방님 감기 조심하세요!

뷰리풀말미잘 2014-11-09 19:31   좋아요 0 | URL
아부쟁이

다락방 2014-11-10 08:50   좋아요 0 | URL
쳇, 내가 미잘한테 아부한것도 아닌데 왜이런담? 흥.
 


자크 랑시에르(1940~)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멀리 갈 것 없이 

여기서부터면 좋겠다.




눈 밝은 이들은 알고 있었겠지, 현역 철학자인 그가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분 심사위원으로 초청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부산국제영화제 2014. 10월 2일~11일)

그래서 이에 대한 기사는 물론이고 인터뷰도 여럿 올라왔다. 

(따끈따끈 오늘자 인터뷰_씨네21, 10.16일로 추정되는_국립현대미술관. 클릭하면 원문으로 이동!) 




(그 와중에 발견한 현대미술관 카피라이트 표시. 그리고 그 밑에 굵은 글씨.

저 표어가 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떠나지 않는다. '현대미술'을 보는 것 같다)



인터뷰 중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철학자가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반가움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 질문도 있어서(저 팬심이라니), 영화판에 속하지 않는 그가 이곳에 위촉된 것을 묻는

상기된 얼굴을 알 것도 같았고. 


이에 위트가 넘치는 랑시에르는 



철학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영화에 관한 판단을 오직 영화전문가가 독점하게 만드는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철학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눈으로 영화를 본다는 걸 말합니다. 제가 초대받은 이유도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전문적 애호가(amateur)’로 초대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비전문적 애호가'라며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겸손함에 

게다가 '철학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 시적인 표현까지.


꿈보다 해몽이라고, 부산영화제가 자신을 심사위원으로 선택한 데에 대하여 이렇게도 말한다. 

(아마 부산영화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산영화제가 나를 심사위원으로 선택한 건, 내가 영화에 대한 저서를 쓴 이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길 원해서가 아니었을까. 

누구나 비평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도 심사위원직을 수락했다.**


'비전문적 애호가'로서 영화를 보고, '영화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자크 랑시에르의 '일면'은 이해가 될까. 



이에 그의 책이 있어 소개.

<이미지의 운명>이 번역 출간되었다. (2014. 5월) 다음은 출판사의 책소개.


자크 랑시에르의 미학 강의 모음집. 저자가 영화, 회화, 사진, 비디오 작품 등 현대 예술에 대한 비평을 바탕으로 예술의 종언 시대에 예술의 해방적 가능성에 대해 다룬 책이다. 1990년대부터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랑시에르는 2000년을 전후해 미학을 주제로 강의하고 글을 발표했는데, 이를 모아 이 책을 출간했다. 


라고 한다.


표지를 보자. 표지의 사각 프레임.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빈 프레임이지만 

무언의 이미지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게 무엇인지 당신이 (꼭)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지는 난무하고 범란하고 급기야 덮쳐오며, 그것은 꼭 예술의 범주에 한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을 어떤 '이해'로 통과할 수 있을까. 

저 틀을 자유자재 당신의 것으로 만들기. 


당신의 프레임을 만들기. 에 대한 도움이 

여기 있다고 해야할까.




쉽지 않은 길에 한 가지 위로는



철학이란 여행과 비슷하다. 여행을 떠나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듯, 철학 역시 특정 분야에 한정된 학문이 아니라 예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



라는 그의 말이려나.  



참참. 그가 심사에 참여한 부산 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은 

김대한 감독의 <철원기행>과 이란의 호우만 세예디 감독의<13>이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인터뷰 중에서.

**씨네21. 인터뷰 중에서.


제목은 인터뷰 중 그의 말 "누구나 비평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변형했다.






그리고 그의 책 하나 더.
















혹여, 제대로 저자들을 읽었다가는 책을 떨어뜨릴지도 몰라

표지에 흐릿하게 처리된 저자 이름들. 찬찬히 따라 읽으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주디스 버틀러..."


그만 읽어야지. 제목은 <인민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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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풀써는 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 있다.

 

"풀써는 일"이 뭐인고 하면 '비탈진 밭에 흙이 비에 쓸려가지 않게 하고 땅을 걸구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 '풀'은 우리가 아는 풀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함께 이른다쉽게 말하자면 마을 공동 퇴비를 만드는 작업으로서로 품을 팔아서 농사에 쓰일 풀을 작두로 썰어 마련하고 썩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이 책은 지역 중에 강원도 일대와 경상북도 봉화군 일대에서 채록한 풀써는 소리를 소개한다. 강원도에서는 풀을 '심하게' 썬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여러가지 환경이 척박하여 지을 수 있는 농사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퇴비를 공들여서 마을 단위로 준비를 많이 했을지, 그래서 풀을 '심하게' 썰었던 건지도 모른다. "풀써는 소리"는 "풀써는 일"이 사라지면서 전승이 중단되었다고 한다다행인지, <강원국제민속예술축전>같은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동네마다 30~40년 전에 풀써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는데,(2005년 발간비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풀을 써는 일이 사라진 것 같다.

 

저자는 <제보자>를 소개하고풀써는 일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개괄>한다구체적인 시기모집하는 방법품 비용작두를 뭐라고 부르는지 등등의 설명이 따라온다. <상황엮음>에서는 노래에 쓰이는 구절을 풀이해 놓았다이렇게 재밌고 생생할 수가 없다간추려 보자면 1. 지역명으로 언어유희하기 2. 풀과 나무에 별명 붙이기 3. 마을 사람 놀리기 4. 일을 성적인 농담에 빗대기가 특징인 듯 하다그 다음으로 <풀과 나무엮음>이 있고마지막으로 <엮음의 특색>을 이야기 한다.

 

책에 들어가기 전에 '풀써는 소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 본다. 


풀을 작두에 넣고 썰면서 부르는 "풀써는 소리"는 앉아서 풀을 골라 넣는 사람이 선창자이고서서 작두를 디디는 사람이 후창자노동요의 일종인 이 노래는 풀을 작두에 넣는 사람이 소리를 메기면서서 작두를 딛이는 사람이 '어이하면서 받는 교창형식으로 연행된다.


(메기는 소리) "자 풀 가주온나." (받는 소리). "어 들어대." (메기는 소리) "자 디에라 얼른 빨리."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섭벅 섭벅 디데라."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물러리다."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싱거리."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보침이다."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디데라." (받는 소리). "어이." ··· 운운.


출처 : 한겨레 음악대사전 


음악대사전을 찾아 봤지만 "풀써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노래의 형식에 선창자와 후창자가 있음을 숙지할 수 있겠다. 책은 노래의 전 구절을 실은 것이 아니고, 특징적인 구절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선창자와 후창자의 말은 알 수 없다. CD를 수록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만 유튜브에는...왜 "풀써는 소리"같은게 있지. 조금 더 찾아보니, <한국민요대전 홈페이지>에 계시되어 있는 것과 같은 소리다. '다 들어간다' '디디라', '막들어간다' 중간에 나무 이름도 나오고, '잘싼다' 등등의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갈빗대다' (무른풀이다) '참 처녀불알이구나' '과타과해' (많다)라는 말로, 지금 들으시는 이 소리는 <삼척지방의 풀써는 소리>입니다.(클릭!)

 

귀에 익숙한 멘트- 혹시가 맞다. MBC 한국민요대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녹음했다. (이 자료를 이렇게 만나다니) 조금 더 풀자면, 여기에는 북한의 소리도 있다. 북한의 소리는 70-80년대 입수한 것이라고.    


다시 풀써는 소리로 돌아온다. 이런 흥이로구나. 왜 나무 이름에 별명 붙여 말하나 했더니, "작두에 풀을 메기는 사람이 작두 디디는 사람들에게 힘을 조절할 수 있도록 들어가는 나무나 풀의 종류를 알려주는 것이 소리를 하는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 물론 흥을 돋궈 일을 수월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겠다. 이 녹음에서는 두 사람이 일을 하지만 마을의 작업에서는 열 다섯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두 명의 풀을 메는 사람과 디디는 사람 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작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두를 여러개 모아서 2인 일조로 일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작두가 많았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러나 혹시 7개의 작두를 놓고 마당에서 풀을 자르며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아아 그것 참...굉장히 기이할 것 같다.   


이 아래는 홍천군 내면 자운 1리의 얘기다.

 

                                           [홍천군 내면 자운리의 위치]


▶ '단천 문천이다딛는 사람이 풀이 잘 끊어질 때 하는 말.

풀을 멕이는 사람이 이 말에 대한 답례로 '여주 이천이다'라고 답한다. (맙소사)

▶ 어라 과천 풀이 많이 들어간다 (과하다에 또 ''을 붙여 과천이라고 지역명을)

 

▶ 저울대 자지 깨묵 불알 자지가 빳빳하고 불알이 커서 거멓게 되었다는 뜻으로 작두를 딛는 사람이 잘 딛는다는 뜻.

 (일 잘한다고 놀리는건가, 아니 추켜세우는건가)

 

다음으로.

<풀과 나무 엮음> 나무에 별명을 붙여서 부른다

 

▶ 대장의 메자루 고로쇠나무 혹은 물푸레나무.

▶ 양반이 쌍놈 길들이는 나무 물푸레나무.

▶ 칼로 찔러 피나무 피나무는 물렁하다.

 

물푸레나무가 위세 등등한 나무인가보군나무 별명으로 미루어보아 나무의 쓰임도 알 수 있는 것 같다신기한지고.

 

'처녀불알'이라는 엮음은 다른 동네에서 확인되는데 여기에서는 불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의 통상적인 뜻은 <매우 구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 노래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주 좋은 풀, 또는 아주 좋은 힘이라는 뜻인지! 삼척 풀써는 소리의 해설에는 이 말이 아무 뜻 없이 말하는 거라고 나와있다. 

 

"풀써는 노래"가 골골이 있던 마당을 모두 뒤로하고 이제는 "풀써는 일"조차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비료가 생겨난 후에 풀써는 일은 사라졌지만 공동으로 퇴비를 마련하는 일은 계속 있다. 추수가 끝나고 나면 논에 짚을 갈아 넣어 퇴비를 마련해 땅을 든든하게 하기도 하고. 콤바인 기계소리에 추수라고 노래를 부르실 일은 없으시겠지만 콧소리 흥얼거리기라도 하셨으면 좋겠다참. 우리 동네에서는 추수를 '바심'이라고 하는데 나는 바심을 먼저 알고 한참 뒤에 추수를 알았다. 무슨 자랑이 될 수는 없어도 어디를 가건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다. 내가 모르는 기억과 바람과 고향,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전부터 오래 살아온 귀한 단어이며 그 옛날 얼굴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서 떨렸을 이름을 나도 낼 수 있다는 기쁨이므로. 훗날 내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전해줄 수 있다면 손에 쥘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몸 속에 살아온 이름을 잊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설렘 아닐까. 


"풀써는 소리"를 다시 한 번 듣는다, 읽는다. 이렇게 소용없는 일과, 책이 있다. 



*한국민요대전 홈페이지 _삼척 풀써는 소리 설명 중에.


+저자는 책 발간 후 논문을 발표했다. <풀써는 소리 사설의 엮음 원리> 책에는 풀써는 소리의 채록에 관한 기술만 되어 있고, 그것으로 고찰한 내용은 없어서 아쉬웠다. 후에 이 내용도 보강해서 나오면 좋겠지만 다른 책으로라도 묶여 나왔기를. (내가 모르는 것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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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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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창비, 2014.


'술과 햇볕에 목덜미가 벌겋게 익은 쉰일곱의 육체노동자경구는 자신에게 없는 여자를 생각한다개 같은 년 매정한 년 육시랄 년그리고 불쌍한 년까지그녀들의 이름을 잊은 걸까. 아니다. 그가 부르고자 하는 마음이 소화 되지 못하고 년놈으로 '육화'되어 나온 까닭이다. 그는 그년들에게 말도 못하고 씹어 넘기는 밥 새로 들릴 듯 말듯 욕지거리를 웅얼거린다. 자신이 욕한 걸 자신이 듣는다그가 말하는 방식이다속으로 이렇게이런 식으로울화가 가득 차 있는 그에게 평화는 술밖에 없다일 끝나면 다음 일 걱정에 마시고 일 하면 일의 고됨에 마신다술로 절은 몸을 끌고 들어오면 불 꺼진 집아비를 아는 척 하지 않는 딸년이 있어서 경구도 마찬가지로 제 딸에게 아는 척 하지 않는다대신 불쌍하다고 욕을 좀 하며딸년의 매정함에 이혼한 아내를 생각한다.


처음엔 사장님이더니 결국 씨발 놈이 되었다이 바닥에서 돈 내면 사장님이고 개털이면 개새끼였다. p. 125


단편 어디에도 '몇 차례'라는 말은 없지만 경구가 술값 외상값을 갚지 않아서 욕 먹고 어깨를 들이키는 일이 하루 이틀이었을 것 같지 않다. 해서 그날의 부딪힘을 유독 확대 분석할 이유 역시 없어 보인다그러니까 그가 살아온 시간 모두가 축이 되어 그날 칠면조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시마이 하고 오는 길 윤가가 경구에게 쥐어준 꽁꽁 언 칠면조이걸 어디에 쓸까 고민했지만 이렇게 쓸 줄 그는 알았을까외상값으로 시비를 걸던 쌍놈의 새끼상판을 오함마로 내리치듯 칠면조로 찧었을때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을 경구는 알았을 것이나 한편으론 그 잘못이 어디 나에게서만 있는건가라는 물음도 스물스물 올라와 더 힘껏 패대기 칠 수 있었으리. 57그의 등에 매어진 하나로 짜부 된 시간그 틈을 들추어 잘못된 시작점 '어디서'를 찾을 수 없고 설사 그걸 안대도 생을 거꾸로 살 수도 없다이쯤되니 경구가 달고 다니는 욕에서 그년들에 대한 울화와 함게 '나도 내 인생의 피해자라'는 분노가 보이는 것 같다.


지금 여기, 나는 경구 인생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을 엿보고 있는데도 비장함이나 엄숙함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다예예 굽신거리던 저 밑바닥 노가다꾼이 사람 하나 곤죽으로 만들고 있는데 우스꽝스럽다칠면조 모가지를 잡고 사람 면상에 패대기치는 모습이라그의 인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장면을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그렸다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칠면조 어디 흔하게 손에 쥐어지는것이던가경구 손에 오함마를 들리지 않고 칠면조를 쥐어줌으로써 소설은 '환상'의 가능성을 가진다아무래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쥐어주고 작가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처럼 경구가 갖고 싶은 현실(꿈이었으면 싶은)을 그려주는 것이다그러니까 칠면조는 경구의 분노를 해갈하면서도 소설 속 현실에서 그에게 닥쳐올 위험을 좀 덜어주는데나는 칠면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면서 그냥 칠면조라는 이름에 조금 고마웠다.


인생 뭐 있나백반 좀 먹고 빠구리 좀 치다 가면 그뿐이지. p. 110


소설의 처음 경구가 다짐처럼 했던 말을 끝에 와서 부르는 것은 그에게 '그뿐'이 아주 어려운 일 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그저 저 두가지만 할 수 있어도 '인생'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지만 어디 쉬운가경구는 마음으로 차린 백반 하나 제대로 챙긴 적이 없고 빠구리라니 역시 마음이 채웠던 일 없다싸구려 돼지부속집에서 일하는 찬모의 뭣 같은 냉대에 이를 갈뿐이다그가 대책 없는 인생이 되 버린 것은 끝 없는 가난 때문이다가난뱅이로 만든 사회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해서 뭐하나 싶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다만그가 도저히 품을 수 없는 '희망'에 대해서 좀 말하고 싶다그는 자신이 있는 곳을 탈출하고 있다탈옥이나 탈출은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여정이어야 하는데그의 탈출은 비참하다사람을 패대기치고 트럭을 훔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도착할 곳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희망경구가 오래전에 버린 이 말의 뜻은 '마음이 바란다'는 것인데 너덜한 육체에는 그 마음이 도저히 자라질 않는다질주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곤 행복했던 날의 아내를 찾는 일뿐이다시간여행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만날 수 없는 죽어버린 희망옆에선 얼었던 칠면조가 서서히 녹는다그걸 또 선물이라고 아내에게 주겠다고게다가 그걸 받고 좀 웃어주었으면 하는 경구의 마음을 생각한다. 자신안에서 싹틀 수 없는 희망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곳을 떠나면 무엇이 있을 거라고 믿는 마음을 어떻게 지켜봐야할까.


이 이판사판에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일이다나는 ''를 허투루 간수했다가 ''를 잃은 사람이다."라는 다산의 고백을 적는다. 이 말은 다산이 40세, 앞으로 시작될 18년의 유배생활을 앞두고 한 말이다. 외견상 그의 인생은 끝났다*. 그러나 다산은 이제껏 자신의 삶이 나를 잃었던 삶이라고 깨달으면서 '수오'(守吾)라는 말을 되새긴다. 모든 것을을 잃어도 '나'를 지키는 희망까지 잃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는, 아직도 자신의 외부에서 무엇을 더 찾으려는 경구의 위험한 탈출이 멈추길, 트럭이 온전히 세워지길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트럭이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사이 소설은 끝나 버렸으므로. 내게는 걱정만이 남는다. 그래서 뒤를 좀 이어서 써본다. 속 시원하게 두들겨 패던 환상은 끝났다. 칠면조를 들고가던 경구는 처치곤란한 그것을 어느 곳에 줘 버린다. 대신 양념치킨 한 마리를 산다. 말 없는 딸과 아들이 한 조각씩 먹는 것을 구경하다가 들어간다. 술을 하루 이틀 거른다. 외상값을 갚고 하루 걸러 하루 있을지언정 일판에 초연하게 나간다. 인생 60부터 시작이라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혹시 모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경구가 자신이 쓴 줄 모르는 경구(警句)를 좀 받아 적는다. 소설의 끝이 걱정되어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 '교훈'이란 말을 딱 질색할 것 같은 천명관이지만 어쩌랴.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경구 덕분에 수오라는 말을 알아간다. 빌어먹을 세상은 예전부터 틀려먹었고, 그런걸 딱지치듯 엎어보겠다는 젠장맞을 포부도 없으나 다만. 나를 지키려고 하는 것만은 온 천지도 어쩌지 못할 일이다. 



*정약용, 박혜숙 편역, 『정약용 산문 선집 다산의 마음』, 돌베개. p. 24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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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가을을 보내줬다. 




나는 그 애의 컷과 컷 사이가 좋고방심할 때마다 나오는 시 같은 문장이 좋다하지만 무엇보담도

자신을 믿고 묵묵히 나가는 모습이 가장 좋다



# 그녀의 플레이 리스트
















오노 나츠메 * 박희정 * 마츠모토 타이요



not simple

오노 나츠메의 그림은 흡사 북유럽의 풍경이다. 흔히 알고 있던 일본풍의 그림체를 깨고 나왔다. 강하고 굵직한 선은 파격적이고 복잡한 서사를 잘 받아낸다. 충격적인 가족사에서 한 남자아이가 바라본 풍경을 담는다. 충격적인데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 괜찮을거라고 믿게 되는 힘이 있다.


호텔 아프리카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


죽도 사무라이

장정이 매우 아름답다. 이렇게까지 책을 만들다니, 애니북스에게 놀랐다. 만화는 저 고정된 사각의 틀에서 잘도 움직인다. 붓으로 그려 결이 그대로 나타나는 선으로 일본 에도시대의 풍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글은 원전이 있고, 작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 시대의 골목을 함께 걷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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