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을 쓰는 남자는 신문사의 부탁으로 여자에게 책을 전해주러 간다. 낯선 주소는 낡은 창고에 도착한다. 그곳엔 임신으로 배가 무거운 여자가 있다. 배를 부르게 한 이에게 버려진데다가 밀린 숙박 빚 때문에 창고에 갇혀 있었다. 남자는 책만 전해주고 가면 그뿐이었지만. 여자는 남자를 붙잡는다. '당신의 글을 읽어왔어요' 여자는 '그런 이야기'가 무척 목말랐으므로 '잠깐 얘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팔목을 잡는다. 둘은 밤이 새도록 대화를 나눈다. 


사람은 왜 사는걸까요. 당신은 왜 죽지 않지요. 지금도 충분히 자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자는 웃으며 뭐라고 대답한다. 가난이 다 드러나는 지저분하고 좁은 세간에서 남자는 여자가 쓴 시와, 그림과, 글을 보게 되고. 남자는 말을 잃는다. 말을 할 수가 없다. 후에 그는 그날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곳에서 몇 번이나 나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어지는 독백. "그녀를 몇 번이나 안고 싶었지만 역시 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남자는 그날 밤 늦게 그녀에게 돈을 좀 주고 나온다. 배고플 때 무엇을 먹으라며 두고온 돈은 그의 차비였고, 그가 갖고 있던 전 재산이었다. 남자는 몇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2

그런가 하면 자신의 '재능'이라는 것을 발견해준 남자에게 불안을 묻는 여자의 마음이당신은 내 재능을 보고 반했다고 했잖아요그런데 내가 당신의 생각보다 재능이 없으면 어떡하지요? 이 말에 남자는 빙긋 웃으며 '그게 무슨 소리냐'하는 얼굴로 묵묵히 글을 쓴다여자는 대답을 조금 더 기다렸다가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초를 켠다. 벽에 기대 앉아 글을 써내려 간다. '버린 아이'라는 제목이 화면에 크게 잡히고 눈물이 번진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아팠던 일을 글로 준비한다. 그에게, 그리고 그를 반하게 한 재능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간절히 쓴다.


#3

1930년대 중국의 천재 여성작가 샤오홍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다. 영화는 길지만 체감 시간은 보다 짧다. 동시대 중국의 문인을 알고 있거나 중국 문학사조를 안다면 더 없이 좋겠으나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 탕웨이는 오롯이 그녀의 분신으로 화한다. 탕웨이는 어떤 얼굴도 아름다워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마저 오래 남는다. 가령 치파오를 입고 작은 빈터에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 같은 것. 그러나 그것은 안아주고 싶거나 무엇을 덮어주고 싶은 등이 아니다. 작가로서 다음을 고민하는 무거운 등이고 마음과 달리 자신을 겉도는 사랑으로 인한 고뇌가 짊어진 등이다. 거슬러가면 집안에서 버려지고 그녀 역시 집안을 버렸던 날들이 새겨진 등이고 자신의 아이를 비롯해 많은 이들을 버리고도 여전히 버티는 등이다. 지난하던 날들을 지나 사랑을 만나고 루쉰과 우정을 나누고 문인들의 환대를 받아도 그녀에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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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1-0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는데요 봄밤님. 이 글을 읽고 봤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글이 참 좋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봄밤 2014-11-09 19:0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보셨군요. 그렇다면 더욱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 뿐이란 것을 아시겠지요. 하하. 영화는 길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몇 장면들은 충분히 멈추고 싶은 거였다고 기억해요. 그때와 지금 날씨는 몰라볼 정도로 다르네요. 그러니까 락방님 감기 조심하세요!

뷰리풀말미잘 2014-11-09 19:31   좋아요 0 | URL
아부쟁이

다락방 2014-11-10 08:50   좋아요 0 | URL
쳇, 내가 미잘한테 아부한것도 아닌데 왜이런담?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