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풀써는 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 있다.

 

"풀써는 일"이 뭐인고 하면 '비탈진 밭에 흙이 비에 쓸려가지 않게 하고 땅을 걸구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 '풀'은 우리가 아는 풀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함께 이른다쉽게 말하자면 마을 공동 퇴비를 만드는 작업으로서로 품을 팔아서 농사에 쓰일 풀을 작두로 썰어 마련하고 썩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이 책은 지역 중에 강원도 일대와 경상북도 봉화군 일대에서 채록한 풀써는 소리를 소개한다. 강원도에서는 풀을 '심하게' 썬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여러가지 환경이 척박하여 지을 수 있는 농사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퇴비를 공들여서 마을 단위로 준비를 많이 했을지, 그래서 풀을 '심하게' 썰었던 건지도 모른다. "풀써는 소리"는 "풀써는 일"이 사라지면서 전승이 중단되었다고 한다다행인지, <강원국제민속예술축전>같은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동네마다 30~40년 전에 풀써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는데,(2005년 발간비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풀을 써는 일이 사라진 것 같다.

 

저자는 <제보자>를 소개하고풀써는 일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개괄>한다구체적인 시기모집하는 방법품 비용작두를 뭐라고 부르는지 등등의 설명이 따라온다. <상황엮음>에서는 노래에 쓰이는 구절을 풀이해 놓았다이렇게 재밌고 생생할 수가 없다간추려 보자면 1. 지역명으로 언어유희하기 2. 풀과 나무에 별명 붙이기 3. 마을 사람 놀리기 4. 일을 성적인 농담에 빗대기가 특징인 듯 하다그 다음으로 <풀과 나무엮음>이 있고마지막으로 <엮음의 특색>을 이야기 한다.

 

책에 들어가기 전에 '풀써는 소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 본다. 


풀을 작두에 넣고 썰면서 부르는 "풀써는 소리"는 앉아서 풀을 골라 넣는 사람이 선창자이고서서 작두를 디디는 사람이 후창자노동요의 일종인 이 노래는 풀을 작두에 넣는 사람이 소리를 메기면서서 작두를 딛이는 사람이 '어이하면서 받는 교창형식으로 연행된다.


(메기는 소리) "자 풀 가주온나." (받는 소리). "어 들어대." (메기는 소리) "자 디에라 얼른 빨리."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섭벅 섭벅 디데라."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물러리다."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싱거리."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보침이다." (받는 소리). "어이." (메기는 소리) "디데라." (받는 소리). "어이." ··· 운운.


출처 : 한겨레 음악대사전 


음악대사전을 찾아 봤지만 "풀써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노래의 형식에 선창자와 후창자가 있음을 숙지할 수 있겠다. 책은 노래의 전 구절을 실은 것이 아니고, 특징적인 구절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선창자와 후창자의 말은 알 수 없다. CD를 수록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만 유튜브에는...왜 "풀써는 소리"같은게 있지. 조금 더 찾아보니, <한국민요대전 홈페이지>에 계시되어 있는 것과 같은 소리다. '다 들어간다' '디디라', '막들어간다' 중간에 나무 이름도 나오고, '잘싼다' 등등의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갈빗대다' (무른풀이다) '참 처녀불알이구나' '과타과해' (많다)라는 말로, 지금 들으시는 이 소리는 <삼척지방의 풀써는 소리>입니다.(클릭!)

 

귀에 익숙한 멘트- 혹시가 맞다. MBC 한국민요대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녹음했다. (이 자료를 이렇게 만나다니) 조금 더 풀자면, 여기에는 북한의 소리도 있다. 북한의 소리는 70-80년대 입수한 것이라고.    


다시 풀써는 소리로 돌아온다. 이런 흥이로구나. 왜 나무 이름에 별명 붙여 말하나 했더니, "작두에 풀을 메기는 사람이 작두 디디는 사람들에게 힘을 조절할 수 있도록 들어가는 나무나 풀의 종류를 알려주는 것이 소리를 하는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 물론 흥을 돋궈 일을 수월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겠다. 이 녹음에서는 두 사람이 일을 하지만 마을의 작업에서는 열 다섯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두 명의 풀을 메는 사람과 디디는 사람 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작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두를 여러개 모아서 2인 일조로 일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작두가 많았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러나 혹시 7개의 작두를 놓고 마당에서 풀을 자르며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아아 그것 참...굉장히 기이할 것 같다.   


이 아래는 홍천군 내면 자운 1리의 얘기다.

 

                                           [홍천군 내면 자운리의 위치]


▶ '단천 문천이다딛는 사람이 풀이 잘 끊어질 때 하는 말.

풀을 멕이는 사람이 이 말에 대한 답례로 '여주 이천이다'라고 답한다. (맙소사)

▶ 어라 과천 풀이 많이 들어간다 (과하다에 또 ''을 붙여 과천이라고 지역명을)

 

▶ 저울대 자지 깨묵 불알 자지가 빳빳하고 불알이 커서 거멓게 되었다는 뜻으로 작두를 딛는 사람이 잘 딛는다는 뜻.

 (일 잘한다고 놀리는건가, 아니 추켜세우는건가)

 

다음으로.

<풀과 나무 엮음> 나무에 별명을 붙여서 부른다

 

▶ 대장의 메자루 고로쇠나무 혹은 물푸레나무.

▶ 양반이 쌍놈 길들이는 나무 물푸레나무.

▶ 칼로 찔러 피나무 피나무는 물렁하다.

 

물푸레나무가 위세 등등한 나무인가보군나무 별명으로 미루어보아 나무의 쓰임도 알 수 있는 것 같다신기한지고.

 

'처녀불알'이라는 엮음은 다른 동네에서 확인되는데 여기에서는 불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의 통상적인 뜻은 <매우 구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 노래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주 좋은 풀, 또는 아주 좋은 힘이라는 뜻인지! 삼척 풀써는 소리의 해설에는 이 말이 아무 뜻 없이 말하는 거라고 나와있다. 

 

"풀써는 노래"가 골골이 있던 마당을 모두 뒤로하고 이제는 "풀써는 일"조차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비료가 생겨난 후에 풀써는 일은 사라졌지만 공동으로 퇴비를 마련하는 일은 계속 있다. 추수가 끝나고 나면 논에 짚을 갈아 넣어 퇴비를 마련해 땅을 든든하게 하기도 하고. 콤바인 기계소리에 추수라고 노래를 부르실 일은 없으시겠지만 콧소리 흥얼거리기라도 하셨으면 좋겠다참. 우리 동네에서는 추수를 '바심'이라고 하는데 나는 바심을 먼저 알고 한참 뒤에 추수를 알았다. 무슨 자랑이 될 수는 없어도 어디를 가건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다. 내가 모르는 기억과 바람과 고향,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전부터 오래 살아온 귀한 단어이며 그 옛날 얼굴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서 떨렸을 이름을 나도 낼 수 있다는 기쁨이므로. 훗날 내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전해줄 수 있다면 손에 쥘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몸 속에 살아온 이름을 잊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설렘 아닐까. 


"풀써는 소리"를 다시 한 번 듣는다, 읽는다. 이렇게 소용없는 일과, 책이 있다. 



*한국민요대전 홈페이지 _삼척 풀써는 소리 설명 중에.


+저자는 책 발간 후 논문을 발표했다. <풀써는 소리 사설의 엮음 원리> 책에는 풀써는 소리의 채록에 관한 기술만 되어 있고, 그것으로 고찰한 내용은 없어서 아쉬웠다. 후에 이 내용도 보강해서 나오면 좋겠지만 다른 책으로라도 묶여 나왔기를. (내가 모르는 것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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