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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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이 있던 자리-자연을 거슬러

 

축하는 불꽃놀이처럼 순간을 반짝인다결혼과 출산입학과 졸업입사와 퇴사우리는 꽃다발을 안기며 기뻐하지만 이때의 행복은 사진과 함께 고정 할 수 없다어쩌면 축하는 이제 그것이 기쁨을 제외한 무엇으로 변할테니 단단해 지라는 당부일지도 모르겠다마찬가지로 축제는 절정을 기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정과 잘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지순식간에 하늘을 채웠다가 바닥으로 하수도로 빠지는 꽃잎들, 겨울에도 벚꽃을 볼 수 있다면 봄날 도로가 막히고 나무밑으로 북적하게 모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잘 헤어지기 위한 성대한 만남사족처럼, '변하기 쉬운 것'이란 목록 아래 '사랑'을 조그맣게 쓴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연인이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고 금방 헤어진다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오히려 만났다는 것이 신기한 일일 것이다만나는 동안 엄청난 행복을 두고 그는 불안하다. 다른 사람들이 안녜를 보고 따님이세요? 라고 묻는 질문에 둘은 집안에서만 만나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행복을 생각한다. '행복은 수치스러운 것일까적어도 우리의 행복은 수치스러운 것이었다우리의 행복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므로우리의 행복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었으므로.' 166 자신의 '행복'이 자연을 거스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 불행의 곁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은 어째서 일까.


''는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그녀의 젊음이 오래 빛을 내는 동안에도 계속시간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을 거슬러 젊음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그녀와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당신은 앙테네와 헤어졌던 이유를 벌써 잊어버렸다. 앙테네와 당신은 같은 시간을 공유했기 때문에 헤어졌다. '나는 시간에 맞추어 달릴 수 없었다새로운 장소새집출산일상자연내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통제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내 인생인데도 왠지 겉돌고 있다는 느낌가만히 앉아서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동안 모든 것은 쏜살같이 나를 지나쳐갔다. '94


'나'는 시간 속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벌어졌던 일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간 밖으로 밀려나서는 나를 지나가지 않는 일들에 슬퍼한다급기야 복숭아가 썩어가는 것을 보고 복숭아가 탐스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백합은 너무도 하얀 빛을 견디지 못했던가국화는 길고 질긴 생명을 견디지 못했던가.' 탄식한다. 213 그는 결국 자신에게 남아있는 생을 견디지 못한다. '누구를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건데?'227 자신에게 물으면서시간에게 묻는다대답은 아무도 없다.


이상하게도그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라고 절절히 적는 말미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지울 수 없는 부조가 떠오른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은 때때로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시간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발악이 진해질 수록 사랑이 있던 자리를 선명하게 비추기 때문일까안녜가 좋아하던 복숭아는 주먹으로 맞은 것처럼 무른다. 그는 상하는 것을 보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언젠간 '별수 없이 복숭아를 버려야 할 것185' 이라 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그가 수십 번 복숭아를 버려야 할 때가 온다고 해도, 결코 복숭아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버릴 수는 없다혹시 그는 헤어짐을 수긍하는 것이 사랑이 '있었다'는 것 마저 치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설과 친구들의 '결혼'이 적힌 달력을 번갈아 본다. '변하기 쉬운 것'이라고 적었던 이름을 지우고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쓴다. '어쨌든 행복에 관한 책은 두꺼울 수는 없'겠지만149 이 얇은 책 제일 첫 번째, '사랑'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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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언어의 탄생과 죽음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사람은 어떻게 말을 하게 되었을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원시언어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반면, 음악적 측면은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음악을 다룬 연구들도 음악을 언어의 부산물쯤으로 치부한다. (‥음악과 언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이 둘이 인간의 마음, 몸, 사회의 진화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이 책은 취향이 바흐건 블루스건 브리트니 스피어스건 우리가 왜 음악을 즐기는지를 설명해줄 것이다. 23~25 /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인간의 선조는 어떻게 말하는 법을 배웠을까? 왜 이 세상 모든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이처럼 복잡한 언어를 만들어냈을까?(‥) 네안데르탈인이나 다른 선조를 찾아 인류의 원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은 아쉽게도 불가능하다(물리학이 타임머신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큰 희망을 걸 수 없는 실정이다). 006 /사람은 어떻게 말을 하게 되었을까


언어의 죽음은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빚어져 온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 6000개 혹은 그 이상의 언어들 사이에서 언어 소멸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금세기 말이면 6000개 언어의 반이 사라질 것이다. 최상의 추정을 한다 해도, 두 주 마다 세계 어딘가에서 쇠미해가는 언어의 마지막 화자가 죽음을 맞는다. 이제 어느 누구도 과거 선조들이 열었던 사색의 길을 걸을 수 없다. 26~27 /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우리 무엇일까?

고고학인류학언어학적인 관점의 교집으로 쓰여진 이 책들은 모두 '우리'의 근원을 묻는다각기 조금씩 다른 입장에서 우리즉 '', '언어'에 대해 곰곰하는 것이다이 중에<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언어의 발달과 함께 사실상 무시되고 있었던 '음악적 측면'에 관심을 쏟는다. '언어와 음악이 뇌의 연산과정을 얼마나 공유하느냐에 대한 문제'라는 저자의 물음은 '호모 사피엔스에 언어능력과 음악능력을 제공한 육체적심리적 성향의 진화'에 대한 답으로 연결된다음악 능력의 진화는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로 진화한 것과 연관있다는 주장이다.

 

인류의 진화를 축으로 삼았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던 '리듬의 발생'. 때문에 동작과 말과 함께 발달했을 제스처에 대한 논의도 잊지 않는다몸동작의 리듬과 조화를 이해하는 것이 음악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은 듣는 제스처'라는 설명이와 함께 '호미니드의 의사소통 체계가 유인원과 원숭이의 의사소통 체계와 달라질 수 있었던 점을 음악 같은 발성의 증가'200 로 보고 있다이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초기 호미니드의 의사소통 체계를 Hmmmm으로 부르며유인원과 가장 크게 구별되는 호미니드의 인지력은 마음읽기 능력이라고 명명한다때문에뇌가 비교적 크다는 것은 마음읽기 능력도 향상되었다는 뜻이라고 부연한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한 단계 뛰어오른 것은 집단이 커지고 이에 따라 사회생활이 복잡해졌기 때문'186 이라는 추측에 이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앞의 책이 인간의 진화학의 관점에서 언어와 음악을 이해했다면, <사람은 어떻게 말을 하게 되었을까>는 언어학적인 관심을 중심으로 언어의 발생을 들여다본다. '늑대 소년비화는 언어가 문화일까생물학적인 것인지 묻는다. 사회와 격리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면 인간은 언어를 타고나지 않는 것일까유인원은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등등 다양한 물음을 통해 언어의 형성과 발달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살핀다.

 

우리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언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지금도 사라지고 있을 언어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도'라는나 자신마저 포함하기 때문에 슬픈 지칭으로 언어의 죽음을 따라간다귀이울이지 않는 언어의 부고저자는 카야르딜드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서 언어를 사용하면서 카야르딜드어를 쓰는 호주의 원주민과 교류한다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장장 오백페이지에 이르는 탐사 보고서를 기록했다그는 '언어가 죽을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것 전반에 대해그리고 언어의 죽음이 왜 문제가 되는지인간의 앎의 방식이 서서히 붕괴되는 이 상황에 대응하는 최선의 질문과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다룬다. '사라져가는 언어는 인간의 사고그리고 자신들의 말을 돌이나 양피지에 남기지 않은 채 쾌활히 세상을 누볐던 사람들의 잊힌 역사에 대한 거대 서사'28 라는 말이 남는다

 

어디서 왔는가우리는 누구인가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다 쓴 페인트 통에 나무를 채워 불을 떼고 있었다면마다 찍어 구멍을 낸다바람이 통하고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나무는 죽는 소리마저 기분을 좋게 하는구나... 가까이 가면 머리를 씻기는 듯한 향기도 있다나무는 죽는 모습도 아름답구나이양웅 어르신은 저 쪽에 옮겨 심으러 뽑아 놓은 나무를 가리켜 말씀하셨다저렇게 말고 있는건 소나무여방석뿌리라고 하제참나무는 곧장 뿌리가 들어가참나무는 탈 때 결이 갈라져 이것봐숯으로 쓰는게 이 나무여.


 

몇 번을 곱씹어 옮겨 적었다내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알지 못할 지식이 어른신 한쪽으로 칡을 씹으시며 나오고 있었다물론 참나무와 소나무를 구별 할 수 있는 지혜/지식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그러나 평생을 가도 영영 모를 수도 있던 것이 불을 쬐는 5분간아무렇지 않게 흘러오고 있던 그때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알고 있는 것은 자꾸 좁아져 간다인터넷이라는, 모든 것을 알 수 도 있을 것 같은 백과사전 앞에서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가 궁금해 했던 것 뿐 아니었는지 묻는다궁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기억하지 못하는 옛날나에게까지 살아서 온 말들과내게 오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져간 말들을 떠올린다공중에 흩어지는 말 속엔 '방석뿌리'같이 말아진 깊은 시간이 있다보이지 않는 뿌리 위에는 나무의 단단한 등이 있어 작은 것들이 스친다다시그것을 보고 무어라 ''했을 눈빛이 우리의 말 속에 실려 있다그러니까 당신 또한 어떤 말을 남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물어볼 이유너무나 충분하지 않나.

 

 

 



 

*폴 고갱의 작품 제목.

원제 :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우리는 누구인가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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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파산 - 2014년 제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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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아야겠는 단어가 있다. 이들의 특징은 점점 늘어나고, 위치를 모르며, 넘쳐난다는 특징이 있다. 종북, 무슨사회, 힐링, 청춘, 전세, 등등.


단어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소리를 괴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몰랐다는 듯 단어의 뜻을 찾는다. 청춘은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이라고 한다. . 청춘이구나


나도 모르게 올라간 두 팔을 슬그머니 내린다.


의외도 있다. 이런 뜻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파산의 설명은 이렇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상인들이 장사하던 좌판을 부숴버리고(banca rotta)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음을 알린데서 유래했다고파산을 설명한 마지막 줄에서 피식 웃음이 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서는 파산이라는 게 없다.’

 

그러니까 청춘 파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단어의 조합이다. 봄날을 다 부숴버리고 더 이상 청춘 하지 않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리고 소설은 '개포동' 365쪽에서 끝난다.

 

마침내 365쪽이라는 질량을 갖췄다. 주인공은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중간태, ‘노련한 알바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태어난다. 서울, 뜻도 모르고 값 치솟은 동네의 오래된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봉고는 골목을 잘도 돈다. 뿌려지는 상가수첩. 상가수첩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포장하는 손놀림이 눈앞에 오간다.


청춘과 파산 사이는 어떤 의문도 없이 이어진다. 아주 동떨어진 두 개의 단어는 원래 하나의 단어였다는 듯이 불린다. 이 소설은 어떤 욕심도 없이, 인주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인주는 열심히 산다. 수십 가지 알바를 하면서. 나도 별 말 없이 묵묵하게 듣는다. 소설로 알게된 사실. 일단 개인 파산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선 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법언어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일은 어려우므로 법무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파산도 어렵다! 그래서 책도 나온다. 일반인들에게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책. 허탈한 웃음이다. 인주는 엄마의 사업 실패로 파산 신청을 하고도 돈을 빌리지도 않았는데 쫓긴다. 그런데 그는 늘 법원의 이름과 함께다. 법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남발한다.

 

저 세 장 파지 냈는데 그럼 4원 거슬러 주시는 거죠? 21

 

대화의 일부분이다. 받아치는 노련함 같은 건 모르겠고, 피곤하다. 먹고 사는 일을 생각한다. 먹고 사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동시에 괴로운 사람들을 떠올린다.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섞여 내린다. 나는 그곳의 어디쯤인지 생각한다. 청춘 파산은 좋지 않은 단어다. 서로를 몰라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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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4-10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군요. 청춘과 파산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소설은 별다른 매력이 없나 봅니다.

봄밤 2014-04-10 21:56   좋아요 0 | URL
어떻게 응원할 수 있을지 곰곰했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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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민음 한국사




 

  

올 초민음 한국사의 출간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16권 분량의 대기획이다조선을 기술하는 데만 9명의 저자가 모였고편저로 문사철이 함께했다조선시대는 2016년 완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봄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선인세로 화자 되었던 민음사를 기억한다선인세가 십수억이 넘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 우선 '금액'에서였다그 다음으로 놀랐던 것은 한국 굴지의 출판사가 이토록 한 작가의 선인세를 지불한 사실은 명백해졌으나출판사가 미래에 남길 책의 목록은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불식시킨다는 듯급하게 준비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역사서 만큼 새로울 것이 없는 책도 없겠으나역사서 만큼 새로울 수 있는 책도 없기 때문이다. 2011년 부터였으니준비만 삼 년을 걸쳐서 비로소 첫 발을 내딘 셈이다출간 전책 소개를 읽고 저자 이름을 읽으니 건실히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읽고나니 역시 '그렇다'는 끄덕임이다.

 

'그렇다'는 끄덕임은 여러 곳에서 온다우선 기존의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세기로 끊는 시대구분에서 그렇다조선의 역사를 설명 할 경우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근거는 양란이다세 시기로 구분할 경우 중종반정 이후중종1년을(1506)을 전후로 전기와 중기를 설명한다공교롭게도 조선의 건국은 1392년으로 14세기의 끝자락이고중기를 나누는 중종 1년은 1506년으로 16세기 초다. 15세기와 16세기를 나누는 것은 기존의 분류와 이질적이지 않으나그 이후의 시대를 세기로 나누는 것은 아마도(역사서로서는처음 있는 접근일 듯 하다.

 

시대 구분이 비슷하다고 해서 내용 또한 그렇지 않을까예상은 접는 편이 좋다그 다음 끄덕임은 한국사를 저술한 저자가자신의 이름을 앞에 내밀고 생동한다는 점에서 온다책임이다책을 저술하다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펜을 던지듯호기로운 물음을 던진다민족적 추앙에 휩싸인세종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

 

세종은 한글 때문에 종종 역사적 맥락에서 빠져나와 현대 한국인의 추앙을 받는다광화문 앞 광장에 근엄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세종의 동상이 그의 초역사적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민주주의 시대의 국민들이 왕정 시대의 지도자를 이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은 기묘하다민주적 원리에 따라 수천만 명 중에서 뽑힌 지도자들보다 몇 명의 아들 중에서 선택된 세습 군주의 업적이 두드러진다면 민주주의 시대의 주권자인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가왕정 시대의 유일한 주권자였던 군주가 최대한으로 발휘한 역량을 존경해야 하는가질투해야 하는가?100

 

강단 있는 물음은 역사를 역사로서 바라보는 것과그것을 토대로 지금을 바라보는 것을 구분하게 한다준엄한 목소리는 9명의 저자가 각기 다른 파트를 맡아 썼음에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15세기에 세종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길 수밖에 없는데, '공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던 무렵 찬반 여론 조사를 관민 대상으로 시행했다는 점을 옮겨본다.

 

1430년 공법의 찬반 여론조사는 특히 촌민으로 불리는 일반 백성의 의사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조선 왕조가 민본을 나라의 기본 방향으로 내세우고 위민을 정책 결정의 잣대로 삼았지만이는 어디까지나 치자의 입장에서 다스림의 대상이 되는 백성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따라서 백성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본과 위민을 현실적으로 실천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었다. 128

 

그런가 하면 ''이나 조금 더 처도 '점성술'로 치부하기 쉬운 천문학에 대해 '천문학은 제왕학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감히 거스를 수 없다어쩌면 가장 첫 번째에 와도 무방할 만큼의 무게다. '천문학을 학습하는 것은 제왕 된 자의 의무이고천문역법을 독점하고 세상에 반포하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요 순 이래 모든 왕조는 개창하면서 '수명개제'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역법을 제정해 반포하는 것이 예외 없는 정치 행위였다.' 136 천문학이 제왕학이라는 서술은 어디에서 볼 수 있었을까정치 사회 경제에 가려져 날로 칸이 작아져 가던 분야를 이토록 우뚝 세우는 힘이 있다.

 

조선 왕조가 개창된 지 불과 3년 만에 천상열차분야 지도를 제작한 까닭이 분명해진다조선 왕조가 천명을 받았으며요 순 임금처럼 모범적인 성군의 정치를 펼칠 것을 천하에 알리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136 여기까지간략히 왕권 강화를 위한 '별자리 지도'로 이해했던 지도는 조선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대의 명령으로 다가온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발췌해 그 때의 말을 옮겨 적는다시대에 직접 들어가서 듣도록 한다역시나 세종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임금은 음률에 밝았다신악의 절주는 모두 임금이 제정한 것으로지팡이를 짚고 땅을 쳐서 음절을 구분해 하룻밤에 제정했다세종실록 권126, 1449년 12월 11

 

지팡이를 짚고 땅을 쳐서 음절을 구분하는 세종의 모습이 보이는지한참 웃음이 나서 좋았다작곡이 의아하다면 그 뒤를 조금 더 읽는 것이 좋다.

 

세종 당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법은 기존에 전하는 선율에 노랫말을 얹는 방식이었다좋은 노랫말이 있으면 거기에 기존 선율에 어울리도록 가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많은 음악을 만들었다세종이 지팡이로 땅을 쳐서 음절을 구분해 가며 음악을 만드는 장면은 당시 작곡의 방식을 보여 준다이때 더 중요한 것은 '노랫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꽃 좋고 열매를 많이 맺으며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않고 솟아나 내를 이루며 바다에 이르니......158

 

15세기의 정치는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막을 내린다이따금 책을 덮고 멈춰야 했던 대목은역사로부터 돌아와 현재를 사는 나를 돌아보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안평대군과 대신들의 정변을 막기 위해 먼저 거사했다는 세조 측의 명분은 설득력이 부족하다세조 세력의 목표는 당연히 집권과 찬탈이었을 것이다세상의 많은 일처럼명분은 그런 노골적인 욕망을 가리는 포장일 뿐이었다. 194

 

마지막으로 세조가 왕권강화를 위한 직계제를 시행하면서 반대했던 하위지에게 질책했던 말을 옮긴다.

 

총재의 의견을 듣는 것은 임금이 죽은 제도다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또 아직 어려 서무를 결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권력을 아래로 옮기려 하는가? 200


'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사람에게여러 시대에서 울릴 말이다무엇보다 15세기 조선이 했던 말을 옮겨 적는다작년 봄출판사가 미래에 남길 책의 목록은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떠올린다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봄이고겨울과 봄의 간격은 날로 좁아들었다역사는 날로 새롭게 벼려져 현재에 놓인다그 날카로움에 눈멀지 않고 무엇을 벨 수 있을지생각하는 날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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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앙드레 & 파트릭 레제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민음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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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자연스럽게 보이려는 욕구만큼 자연스럽게 있는 것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라 로슈푸코.106

 

'프랑스어로 겁 'trouille'은 심한 복통과 엄청난 방귀를 의미한다.'고 한다. 46 엄청난 방귀라니읽는 것만으로도 불편하다참아야 하는 자리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다. 그곳에 대신 있어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말의 ''의 어원은 무엇일까. '엄청난 방귀'같은 것에서 왔다면 어떨까어원이 지역을 막론하고 의미가 통한다면,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사람 사는 것이 아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뜻 아닐까. ‘이라는 말로 프랑스와 한국을 지르는 방대한 스케일에 조금 겁먹지 않아도 된다그냥 떠올려 본 생각에 불과하다.




'너 겁 먹었니?'라는 말이 '엄청난 방귀?'를 뜻한다는 것은, ‘겁을 먹은 상태가 배가 많이 아픈 상태를 동반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그 옛날 사람들은 사회 불안이 신체 증상으로 잘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 했던 것 같다마음에서 오는 두려움은 몸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어원적으로 확인된다니, 하나 더. 'emoi(마음의 동요)는 누군가에게 힘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는 후기 라틴어 exmagare에서 파생됐다.' 46 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는 어원에 대한 개괄적인 검토를 통해 진지하게 말한다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놀리지 마세요불안을 겪는 이들은 분명히 몸도 불편해 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 사회 불안은 타인의 '판단'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라고 한다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하는 것은 두렵다이유는 당연히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 그러나 이건 쌤쌤이다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동안나 또한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그런데 문제는, ‘사회 불안은 대체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부정적인 시각과 연관 된다는 거다. 85 아하스스로에 대해 자신 없어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 다른이의 평가가 두렵고 → 불안(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남그러니까 (어느 정도)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나를 낮게 평가하는 나 자신이라는 것.

 

타인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제대로 평가 받기도 전에 나를 분명히 낮게 평가할거야’ 라는 추측이 이미 마음에서 완성된다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회 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데 약간의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89 다는 점이다그 아래 설명을 보자. ‘그들은 몇몇 확실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 한따뜻해 보이지 않는 모든 태도는 적대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첨언.89

 

대화를 구성하는 것을 ''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실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몸짓표정이 대화의 더 큰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생각해 보면대화에서 오는 놀라운 실망은 '뿐만 아니라말이 아닌 '무엇'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몇 마디 채 나누지 않았는데 화가 난 경우가 없는지. ''보다 '태도'에 마음 상했을 가능성이 높다오히려 말이 빈 곳을 더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러나 말이 아닌 것은 오해가 많다는 것을 또한 생각해야 한다습관화 된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많고아무리 보편적인 것이라 해도 상대의 기호와 자신이 아는 기호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의도가 왜곡될 뿐만 아니라오해가 연쇄적으로 터지는데 그 오해는 이 야기한 것이 아니라서 정확히 어디가 문제인지 꼬집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저자는 사회 불안을 겪는 이들이 흔히 하는 실수로 말 외의 것에 집중하는 것을 지적한다당신이 받아들인 정보는 맞지만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뇌는 완벽한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보통 잘된 일이다!) 정보를 다룰 때 실수를 할 수 있다실수의 첫 번째 유형은 몇몇 정보만을 취하고 다른 정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174

 

책의 중반쯤 흘러저자는 기원 후 1세기 이미 불안에 대한 통찰을 했던 철학자의 말을 읊는다. ‘인간을 불안에 빠트리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 사물에 갖는 의견들이다.’ 에픽테토스 235

 

저자는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사회 불안을 겪는 이들이 대체 의문하는 나는 왜 그럴까의 이해를 돕는다그리고 동시에 사회 불안을 겪는 이들 뿐만 아니라이들 주변의 부모친구동료가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책 말미에 가면미국 불안 장애 학회의 회장인 제리린 로스의 말이 나오는데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싶게끔 한다


발가벗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283

 

다소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불안증 환자들과 사회 공포증 환자들이 지극히 평범한 상황예를 들면 친구들 앞에서 발언을 한다거나 제과점에 빵을 사러 들어갈 때 느끼는 것입니다’ 283


얼마나 많은 불편에 휩싸여 있는 것인가사회 불안의 원인이 나를 낮게 평가하는 나의 마음에 있다고 하더라도그 마음이 불편으로 다가오는 것은 결국 타인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사회 불안을 겪는 이들의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리석다사회 불안을 느끼려면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21.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결코 알지 못했으니.21 그러므로 사회 불안을 겪는 그들의 문제 나를 포함해서 일어난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사회 불안을 겪는 당신은 '노출 하기'로 스스로를 탈출하는 시도를 하기를. 당신을 얽매는 룰은 부서져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타인은 적이라는 샤르트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 역시 때때로 원하지 않게 적이 되며 원하지 않게 적을 만든다. ‘원하지 않음을 내려놓고충분한 말과 충분한 몸짓으로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이해받고 싶다나도 때때로 타인을 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일 뿐인걸요. '이해'는 사회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있다는 생각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나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어정쩡하지만 나가면서 '엄청난 방귀'가 가져온 답답함과 비견되는 시원함으로 마무리 하고 싶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은 핑계를 대지 않고 저녁 초대를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쥘 르나르. 224







덧글 : 


이 책은요

: 실제 사회 불안을 겪는 이들에게 적절한 '의학적'지침과 이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 '사회 불안'을 테스트 해 볼 수 있고, 사회 불안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요약본을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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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4-01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런 내용 좋아합니다. 어원 설명하는 부분 말이죠. 확실히 어원을 알아야 뜻이 분명해져요.
맞는 말 같습니다. 겁을 먹으면 일단 첫 번째 증상이 속이 울렁거리잖아요. 토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
그런 기분...... 그러니 방구로 이어지고...ㅎㅎㅎㅎㅎ

봄밤 2014-04-02 15:15   좋아요 0 | URL
좋아하시는군요! 말뜻을 생각하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별 뜻없이 쓰는 말에도 다 저만한 이유로 소리와 모양을 갖추니 말입니다!<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일을 다시 돌아봅니다. 으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