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민음 한국사
올 초, 민음 한국사의 출간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16권 분량의 대기획이다. 조선을 기술하는 데만 9명의 저자가 모였고, 편저로 문사철이 함께했다. 조선시대는 2016년 완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봄,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선인세로 화자 되었던 민음사를 기억한다. 선인세가 십수억이 넘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 우선 '금액'에서였다. 그 다음으로 놀랐던 것은 한국 굴지의 출판사가 이토록 한 작가의 선인세를 지불한 사실은 명백해졌으나, 출판사가 미래에 남길 책의 목록은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불식시킨다는 듯, 급하게 준비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서 만큼 새로울 것이 없는 책도 없겠으나, 역사서 만큼 새로울 수 있는 책도 없기 때문이다. 2011년 부터였으니, 준비만 삼 년을 걸쳐서 비로소 첫 발을 내딘 셈이다. 출간 전, 책 소개를 읽고 저자 이름을 읽으니 건실히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읽고나니 역시 '그렇다'는 끄덕임이다.
'그렇다'는 끄덕임은 여러 곳에서 온다. 우선 기존의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세기로 끊는 시대구분에서 그렇다. 조선의 역사를 설명 할 경우,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근거는 양란이다. 세 시기로 구분할 경우 중종반정 이후, 중종1년을(1506)을 전후로 전기와 중기를 설명한다. 공교롭게도 조선의 건국은 1392년으로 14세기의 끝자락이고, 중기를 나누는 중종 1년은 1506년으로 16세기 초다. 15세기와 16세기를 나누는 것은 기존의 분류와 이질적이지 않으나, 그 이후의 시대를 세기로 나누는 것은 아마도(역사서로서는) 처음 있는 접근일 듯 하다.
시대 구분이 비슷하다고 해서 내용 또한 그렇지 않을까. 예상은 접는 편이 좋다. 그 다음 끄덕임은 한국사를 저술한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앞에 내밀고 생동한다는 점에서 온다. 책임이다. 책을 저술하다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펜을 던지듯, 호기로운 물음을 던진다. 민족적 추앙에 휩싸인, 세종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
세종은 한글 때문에 종종 역사적 맥락에서 빠져나와 현대 한국인의 추앙을 받는다. 광화문 앞 광장에 근엄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세종의 동상이 그의 초역사적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민주주의 시대의 국민들이 왕정 시대의 지도자를 이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은 기묘하다. 민주적 원리에 따라 수천만 명 중에서 뽑힌 지도자들보다 몇 명의 아들 중에서 선택된 세습 군주의 업적이 두드러진다면 민주주의 시대의 주권자인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가? 왕정 시대의 유일한 주권자였던 군주가 최대한으로 발휘한 역량을 존경해야 하는가, 질투해야 하는가?100
강단 있는 물음은 역사를 역사로서 바라보는 것과, 그것을 토대로 지금을 바라보는 것을 구분하게 한다. 준엄한 목소리는 9명의 저자가 각기 다른 파트를 맡아 썼음에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15세기에 세종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길 수밖에 없는데, '공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던 무렵 찬반 여론 조사를 관민 대상으로 시행했다는 점을 옮겨본다.
1430년 공법의 찬반 여론조사는 특히 촌민으로 불리는 일반 백성의 의사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조선 왕조가 민본을 나라의 기본 방향으로 내세우고 위민을 정책 결정의 잣대로 삼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치자의 입장에서 다스림의 대상이 되는 백성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백성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 민본과 위민을 현실적으로 실천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었다. 128
그런가 하면 '점'이나 조금 더 처도 '점성술'로 치부하기 쉬운 천문학에 대해 '천문학은 제왕학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감히 거스를 수 없다. 어쩌면 가장 첫 번째에 와도 무방할 만큼의 무게다. '천문학을 학습하는 것은 제왕 된 자의 의무이고, 천문역법을 독점하고 세상에 반포하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요 순 이래 모든 왕조는 개창하면서 '수명개제'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역법을 제정해 반포하는 것이 예외 없는 정치 행위였다.' 136 천문학이 제왕학이라는 서술은 어디에서 볼 수 있었을까. 정치 사회 경제에 가려져 날로 칸이 작아져 가던 분야를 이토록 우뚝 세우는 힘이 있다.
조선 왕조가 개창된 지 불과 3년 만에 천상열차분야 지도를 제작한 까닭이 분명해진다. 조선 왕조가 천명을 받았으며, 요 순 임금처럼 모범적인 성군의 정치를 펼칠 것을 천하에 알리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136 여기까지. 간략히 왕권 강화를 위한 '별자리 지도'로 이해했던 지도는 조선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대의 명령으로 다가온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발췌해 그 때의 말을 옮겨 적는다. 시대에 직접 들어가서 듣도록 한다. 역시나 세종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임금은 음률에 밝았다. 신악의 절주는 모두 임금이 제정한 것으로, 지팡이를 짚고 땅을 쳐서 음절을 구분해 하룻밤에 제정했다. 세종실록 권126, 1449년 12월 11일
지팡이를 짚고 땅을 쳐서 음절을 구분하는 세종의 모습이 보이는지. 한참 웃음이 나서 좋았다. 작곡이 의아하다면 그 뒤를 조금 더 읽는 것이 좋다.
세종 당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법은 기존에 전하는 선율에 노랫말을 얹는 방식이었다. 좋은 노랫말이 있으면 거기에 기존 선율에 어울리도록 가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많은 음악을 만들었다. 세종이 지팡이로 땅을 쳐서 음절을 구분해 가며 음악을 만드는 장면은 당시 작곡의 방식을 보여 준다. 이때 더 중요한 것은 '노랫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좋고 열매를 많이 맺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않고 솟아나 내를 이루며 바다에 이르니......158
15세기의 정치는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막을 내린다. 이따금 책을 덮고 멈춰야 했던 대목은, 역사로부터 돌아와 현재를 사는 나를 돌아보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안평대군과 대신들의 정변을 막기 위해 먼저 거사했다는 세조 측의 명분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세조 세력의 목표는 당연히 집권과 찬탈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처럼, 명분은 그런 노골적인 욕망을 가리는 포장일 뿐이었다. 194
마지막으로 세조가 왕권강화를 위한 직계제를 시행하면서 반대했던 하위지에게 질책했던 말을 옮긴다.
총재의 의견을 듣는 것은 임금이 죽은 제도다. 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또 아직 어려 서무를 결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권력을 아래로 옮기려 하는가? 200
'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시대에서 울릴 말이다. 무엇보다 15세기 조선이 했던 말을 옮겨 적는다. 작년 봄, 출판사가 미래에 남길 책의 목록은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떠올린다.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봄이고, 겨울과 봄의 간격은 날로 좁아들었다. 역사는 날로 새롭게 벼려져 현재에 놓인다. 그 날카로움에 눈멀지 않고 무엇을 벨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날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