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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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이 있던 자리-자연을 거슬러

 

축하는 불꽃놀이처럼 순간을 반짝인다결혼과 출산입학과 졸업입사와 퇴사우리는 꽃다발을 안기며 기뻐하지만 이때의 행복은 사진과 함께 고정 할 수 없다어쩌면 축하는 이제 그것이 기쁨을 제외한 무엇으로 변할테니 단단해 지라는 당부일지도 모르겠다마찬가지로 축제는 절정을 기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정과 잘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지순식간에 하늘을 채웠다가 바닥으로 하수도로 빠지는 꽃잎들, 겨울에도 벚꽃을 볼 수 있다면 봄날 도로가 막히고 나무밑으로 북적하게 모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잘 헤어지기 위한 성대한 만남사족처럼, '변하기 쉬운 것'이란 목록 아래 '사랑'을 조그맣게 쓴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연인이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고 금방 헤어진다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오히려 만났다는 것이 신기한 일일 것이다만나는 동안 엄청난 행복을 두고 그는 불안하다. 다른 사람들이 안녜를 보고 따님이세요? 라고 묻는 질문에 둘은 집안에서만 만나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행복을 생각한다. '행복은 수치스러운 것일까적어도 우리의 행복은 수치스러운 것이었다우리의 행복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므로우리의 행복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었으므로.' 166 자신의 '행복'이 자연을 거스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 불행의 곁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은 어째서 일까.


''는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그녀의 젊음이 오래 빛을 내는 동안에도 계속시간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을 거슬러 젊음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그녀와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당신은 앙테네와 헤어졌던 이유를 벌써 잊어버렸다. 앙테네와 당신은 같은 시간을 공유했기 때문에 헤어졌다. '나는 시간에 맞추어 달릴 수 없었다새로운 장소새집출산일상자연내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통제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내 인생인데도 왠지 겉돌고 있다는 느낌가만히 앉아서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동안 모든 것은 쏜살같이 나를 지나쳐갔다. '94


'나'는 시간 속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벌어졌던 일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간 밖으로 밀려나서는 나를 지나가지 않는 일들에 슬퍼한다급기야 복숭아가 썩어가는 것을 보고 복숭아가 탐스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백합은 너무도 하얀 빛을 견디지 못했던가국화는 길고 질긴 생명을 견디지 못했던가.' 탄식한다. 213 그는 결국 자신에게 남아있는 생을 견디지 못한다. '누구를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건데?'227 자신에게 물으면서시간에게 묻는다대답은 아무도 없다.


이상하게도그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라고 절절히 적는 말미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지울 수 없는 부조가 떠오른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은 때때로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시간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발악이 진해질 수록 사랑이 있던 자리를 선명하게 비추기 때문일까안녜가 좋아하던 복숭아는 주먹으로 맞은 것처럼 무른다. 그는 상하는 것을 보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언젠간 '별수 없이 복숭아를 버려야 할 것185' 이라 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그가 수십 번 복숭아를 버려야 할 때가 온다고 해도, 결코 복숭아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버릴 수는 없다혹시 그는 헤어짐을 수긍하는 것이 사랑이 '있었다'는 것 마저 치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설과 친구들의 '결혼'이 적힌 달력을 번갈아 본다. '변하기 쉬운 것'이라고 적었던 이름을 지우고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쓴다. '어쨌든 행복에 관한 책은 두꺼울 수는 없'겠지만149 이 얇은 책 제일 첫 번째, '사랑'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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