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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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작가님의 첫 장편소설「빨치산의 딸」은 제가 태어난 해에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가 불온도서로 지정되며 당시 출판사 대표님이 구속에 실형을 선고받으셨다는 소식을 개정판에다 실으셨던 것으로 기억이 나고 당연히 읽어보지는 않았거나 못했거나 그랬었고 2004년과 2008년에 출간된 소설집 「행복」, 「봄빛」또한 제가 아직 어렸을 때에 출간되어서 접해보지 않았거나 못했었고 10여년 전 세번째 소설집 「숲의 대화」가 출간되었을 때 읽은 것은 기억이 나는 데 당시에 리뷰를 남기지 않아서 읽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고 작년에 네번째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을 출간하셔서 앞에 실린 (자본주의의 적)과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이 2편만 읽어봤는 데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2번째 장편소설「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출간되어 일찍이 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 데 갑작스레 9월 중순에 일시품절되고 예약판매창이 나와서 왜 그런 것일까 찾아보니 유시민 교수님이 강력추천하셨더군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읽었고 리뷰를 남기는 이 순간에도 찾아보는 현재에도 종합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서 전혀 관련없는 제가 뿌듯합니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이고 동시에 유물론자인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쳐 허망하지만 아버지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시작부터가 예사롭지가 않았어요.
좋게 표현하면 사회주의자인 데 속된 표현으로 빨치산, 빨갱이라는 신분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스스로 선택하셨지만 그 걸로 인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출세며 혼삿길이 막혀버린 작은아버지와 불구로 평생을 살아야했을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결코 빨치산의 딸,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던 아리씨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아버지의 일생 속에 존재하던 인물들을 장례식장에서 만나며 아버지의 험난했던 삶과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반드시 다가오고야 마는 한 줌의 재가 될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져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110쪽).‘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224~5쪽).‘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뻘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231쪽).‘
이러한 문장들을 읽으면서 제 스스로 지긋지긋했던 삶으로부터 해방했다고 위안하고 있을 제가 언젠가는 후회의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순간이 찾아오기 전에 차라리 제가 먼저 한 줌의 재가 되기를. 그게 아니라면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하기를.
같은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워찌나 청산유순가 쎗바닥에 신이 내렸는 중 알았당게. 말문 터질라면 예수 믿어야 쓰겄대(114쪽).‘
‘긍게 사램이제‘ 같은 말들을 소리내어 읽어보며 마음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오늘은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정지아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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