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고귀한 진리에서 보여 준 노련함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붓다는 청중에게 "그대는 고통 받고 있다." 혹은 "사람들은 고통받는다." 심지어 모든 창조물은 고통 받는다. 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렇게 이야기했다.
"거기 고통이 있다."
그는 고통이 우리 삶의 결정적인 특징인 것처럼 인간 조건에 대해 확정적으로 발언하기보다는 명상하고 사색해야 할 일반적인 관찰 대상처럼 표현했다. "공기가 있다." 또는 "구름이 있다."라고말하듯이 고통의 존재를 개인적 차원이 아닌,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단순한 사실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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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팔리어 경전에 사용된 단어 ‘두카‘는 오늘날 일상적으로쓰이는 불편함, 불건강, 불안, 불만족 같은 단어들의 의미에 사실상 더 가깝다. 어떤 불교 경전들에서는 그것의 의미를 도자기 빚는물레 돌릴 때 나는 ‘끼익‘ 소리 같은 생생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다른 주석서들에서는 바퀴가 살짝 깨진 수레를 탄 사람의 모습에 이를 비유한다. 깨진 바퀴 부분이 지나갈 때마다 수레에 탄 사람은 덜컹거린다.
따라서 고통 혹은 두카가 극단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붓다와 그 이후 불교 스승들의 시대에는 ‘무엇인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기분으로 쓰였다. 상황이 달라지면 삶이 더 좋아질것 같은 기분, 우리가 더 젊고 더 날씬하고 더 재산이 많고, 혹은좋은 관계를 갖거나 나쁜 관계에서 벗어나면 더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다. 불행의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와 같이 두카는 몸의가려움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만성적 통증이나 불치병 같은 좀더 충격적인 경험에 이르는 모든 상황을 포함한다. 아마도 언젠가는 이 두카라는 단어도 산스크리트어의 카르마처럼 여러 언어와문화권에서 사용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종 ‘고통‘으로 번역되어 온 이 단어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의사가 증사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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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선택은 현명한 여행자처럼 되는 일이라네. 자신의 문제들을 자신과 함께 가도록 초대하는 것이지. 두려울 때 그 두려움과 싸우려고 시도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지 말게. 그것과 거래를 하는 거야. ‘이봐 두려움, 내 곁을 떠나지 말아 줘. 나의 호위대가 되어 줘. 네가 얼마나 크고 강한지를 내게 보여 줘만일 그대가 이렇게 여러 차례 한다면 마침내 두려움은 단지 여러경험 중 하나일 뿐이고 왔다가 가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지. 그대는 두려움과 함께해도 편안하고, 어쩌면 그것을 그대가 가진 마음의 힘을 인정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어. 그토록 큰 문제를 만들어 낸다면 그대의 마음은 틀림없이 매우 강력한 것일 테니까. 안그런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해 보였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두려움 같은 강력한 감정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 때 그대는그 에너지를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되지. 그대의 문제들을 호위대로 고용할 때 그것들은 그대의 마음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그대에게 보여 줄 것이야. 그것들이 아주 사납다면 그만큼그대가 강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해 주는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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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은 순수한 과학자다.
순수한 과학자는 무슨 일을 할까?
그는 탐험을 통해 상황들의 진리‘를 발견한다.
순수한 과학자는 뭔가를 탐험할 때거기에 개입해서도 보태거나 빼서도 안 되며,
어떤 방식으로도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다만 연구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고자 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대상을 관찰하고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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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본성은 행위 없음과 내맡김을 의미한다.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내맡기는surrender 것을 말한다. 내맡김은 우리의 경험이 무엇이든 그것을 껴안는 자각이다. 내가 뭔가를 느끼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음을 볼 때, 내가그 느낌과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껴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내포한다. 보통 우리는그러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을 손아귀에 쥐려고 하고, 그것을 비틀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려고 한다. 참본성은 우리가 다른 선택권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이 있는 그대로 일어나도록 허용함으로써 경험과 하나로 일치시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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