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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최후의 식민지쯤으로 여기는 시선들이 있다. 바다의 풍요와 생산성을 찬양하며 마치 마르지 않는 샘인양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미 인류의 탐욕이 가 닿지 않는 곳이 지구에 남아있던가. 현생인류는 지구에 나타난 종족들 중 가장 몹쓸 종족임에 틀림없다. 대체 어떤 족속이 자신의 생활근거를 남김없이 해치워버리고 벌버벗는 쪽을 당연하다는 듯 선택하겠는가 말이다. 황량해지고 있는 바다의 현실에 경종을 울릴만한 책으로 기대한다.



동시대 가장 뜨거운 철학자/사상가로 꼽히는 알랭 바디우가 저 세상으로 간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14편을 모았다. 그 중에는 바디우와 학문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웬수에 가까웠던 들뢰즈나 데리다도 포함되어 있단다. 라캉과 사르트르, 알튀세르, 푸코, 사르트르 등 철학자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바디우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이들의 사상 역시 흥미롭지 않으려나?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묵직한 한 방을 날렸던 박해천 선생의 새책. 얼핏, ‘주변 누군가들의 이야기를 굳이 디자인연구가가 쓴 픽션을 통해서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보여준 해박함과 집요한 탐구가 떠올라 쉽게 넘길 책이 아니란 자각이 불쑥. 대체 이 나라는 왜 이리 빤히 보이는 어설픈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들로 득시글거리게 된 걸까. 개인적인, 사회적인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읽어봐야 할 책.




고종석의 책들을 보면서 글쟁이의 꿈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 아직도 절반은 유효하지만 절반쯤은 방기하고 있는 꿈이다. 꿈의 운명이 고종석의 현재 스탠스와 닮았다. 그는 작년인가 올해 초인가, 글쓰기의 영향력에 대한 회의가 든다며 돌연 절필을 선언해버렸다. 절필의 대상에서 단행본은 제외가 되는 건지, 아니면 절필을 번복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팬의 입장에선 그저 반갑다. 한국사회의 논쟁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그의 거침없으면서도 단단한 문장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사사키 아타루의 전작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렴풋이 알던 사실을 그냥 얼음물 한 바가지 끼얹듯 싸늘하게 까발리는 데... 아우, 정신이 다 얼얼해질 정도였다. 요약하면 두 가지다. ‘니들은 쓸데없는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있다. 그거,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반복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책을 읽고 그대로 행동하고 살지 않으면 읽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읽기의 혁명이다’. , 다시 생각해도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더 알고 싶어졌다. 사사키 아타루라는 이 젊은 학자를. 그의 두 번째 책이 번역되어 나왔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줄창 언급됐던 그의 박사논문도 번역중이라고 한다. 즐겁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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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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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는 자기기만에 대한 이야기다. 로버트 트리버스는 살아있는 최고의 진화심리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최신의 방법론 중 하나.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양태를 수백만년 동안 진척되어 온 육체적/사회적 진화와 상대적으로 뒤늦게 진행된 마음의 변화의 격차로 설명한다. 이는 마치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추수를 기준으로 하는 명절을 기념하느라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사이클과 많이 닮았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일을 아노미 현상이라고 부르던가. 급격한 시스템 변화에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진화심리학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이백만년 전 수렵시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 그리고 내일을 무엇을 먹고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을까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왜 사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따질 겨를이 없었던 거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고 헤아리는 것이 인간의 뇌에 얼마나 낯선 일인지 생각해 보면, 그런 문제들이 왜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일들인지 알게 된다.”

 

농구에선 노룩패스란 기술이 있다. 패스를 받을 같은 팀 선수에게 전혀 시선을 던지지 않은 채 공을 던져 상대방의 수비를 교란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기만술이다. 그런데 이게 너무 완벽하다보면 공을 받을 선수마저 자신에게 패스가 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해 공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자기편마저 속인다라고 한다. 자기기만이 꼭 그렇다. 자신마저 사실과는 다른,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는 다른 정보를 스스로에게 입력해두는 것. 책에서는 자기기만이란 결국 남을 더 잘 속이기 위한 방편으로 인간에게 발달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만이 아니다. 각종 동물들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기만술을 사용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만큼 자기기만에 능한 종족도 쉽지 않다. 세상 거짓말의 90%는 돈과 섹스에 관한 것이라 했던가.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기만하고, 남을 더 잘 속이기 위해 자신 스스로 왜곡된 인식을 진실인양 믿게 되는 상황은 인간에게 비일비재한 일상과도 같다. 이것이 개인의 일이라면 그나마 낫다. 더 큰 조직일수록 자기기만의 결과는 파멸적이다. 나사의 자기기만은 챌린저호를 폭발시키는 대형사고를 불러왔고, 이라크 전쟁에서 보인 대량살상무기라는 미국의 자기기만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들의 자기기만은 자기확신과 직결된다.

 

생각해보면 왜곡된 자기확신처럼 위험천만한 것도 없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한 화가 지망생의 망상은 하필 그에게 주어진 연설능력과 정치력 덕에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 중 하나를 그와 그의 일당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했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이들이 학살당하는 미증유의 비극을 불러왔다. 이 화가 지망생의 이름은 물으나 마나 2차 세계대전의 주역으로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다. 자기기만은 결국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을뿐더러 두고두고 대외정책 운영에 부담을 안게 됐다. 히틀러는 결국 벙커 안에서 권총자살로 최후를 마감해야 했다. 결국, 남을 속이기 위한 자기기만이라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기만이라는 달콤한 덫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들이 열릴 것이다. 이 책은 자기기만의 숱한 사례들을 매우 흥미롭게 보여주어 자기기만이라는 진화의 부작용을 우리가 냉정히 바라볼 수 있도록 거들어주는 미덕을 가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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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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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친구 하나는 자기는 조선일보만 본다고 했다. 다른 신문들이 가볍게 입을 놀리며 방정을 떨어도, 조선일보는 진중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오보 비율도 적고, 품격있는 신문이라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사실, 친구의 주장일리 없었다. 당연히 그것은 조선일보를 보는 녀석 아버지의 입장이었으리라. 그런데, 글쎄, 조선일보가 그랬던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은 문민정부가 막 들어서던 시점이었다. 921211, 초원복국집 사건이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으로 지목되는 당시 법무부장관 김기춘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라며 부산지역 주요 기관장들을 모아 연, 명백한 선거법 위반모임이었다. 모임의 내용이 폭로되자 심지어 노태우 정권마저 그 모임에 참석한 부산시장을 해임하고 부산지방경찰청장과 안기부지부장, 기무부대장을 직위해제시켰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김영삼 구하기에 앞장을 섰다’. “보수 언론 가운데 특히 조선일보가 김영삼 구하기에 앞장을 섰다. 그 신문은 초원복국집 사건이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국민당이 도청을 한 사실이 더 심각한 범죄라는 논조를 펼쳤다”(372페이지) 이거, 뭔가 최근 같은 드라마를 본 것처럼 유사한 장면이 막 떠오르고 그렇지 않은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어땠던가? 김영삼이 정치적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논란이 될만한 멍청한 말들을 쏟아내느라 지금은 신망을 잃었지만,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19938, 그가 깜짝쇼로 단행한 금융실명제는 한국의 경제체질 개선에 한 몫을 단단히 한 쾌거였다. 그런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인 조선일보는 어땠더라? 같은 해 822일자 김대중 칼럼을 보자. “새 정권은 재산 공개로 정치인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관료 역시 재산 공개와 사정으로 얻어맞고 고통 분담으로 실질적인 손해를 입고 있는데다 관리로서의 인센티브마저 잃어가고 있다.(...) 기업인은 이번 실명제로 지리멸렬 상태이다.(...) 특히 중소기업인들은 실명제라는 핵폭탄을 맞고 어떤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할 정도이다”(377) 20년의 세월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그 장렬한 코믹함은 잃지 않았다. ‘관리로서의 인센티브운운하는 대목은 김대중 씨가 개그에도 욕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한국언론의 역사를 기술한 책을 놓고, 너무 한 언론사에만 지나치게 지면을 할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일등신문만을 난타할 일은 아니다. 식민지 시대부터 군사독재와 민주정부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동안, 언론이 보여준 교언영색, 지록위마, 표리부동, 호가호위, 권모술수, 양두구육, 어불성설, 일구이언, 후안무치한 행태들을 떠올리면 이 책에서 보여준 언론의 역사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위해 뛰고 있는 언론인들을 보면 잠시의 희망을 갖는다. 물론, 이내 그들이 처해있는 객관적인 상황을 떠올리고 암담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대학 1학년 교양국어 시간. 강사는 우리에게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를 비교해서 읽어보라고 했다. 한 사건을 두고 두 개의 매체가 어떻게 보도하는지를 살피면 언론의 공정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알게된다고 했던 것 같다. , 객관적인 글쓰기라는 것이 얼마나 가 닿기 어려운 것인지 보여줄 거라고도 했다. 과연, 두 매체는 같은 사안을 이야기하는 데도 전혀 다른 말들을 쏟아냈다. 언론이 못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거, 조선일보가 친구가 말한 것처럼 품격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걸 이때 적나라하게 깨달았다.

 

권불십년이라 했건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 언론은 50, 아니 100년의 역사를 두고 한국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허술히 넘기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해두어야 할 이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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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년>

박흥용, 박흥용이다! <경복궁학교><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줬던 신선한 충격이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한 것만 같다. <내 파란 세이버>의 흥분감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이번에는 한국전쟁으로부터 대한민국 굴곡의 50년 현대사를 담아낼 예정이라 한다. 언제나 허를 찌르는 연출과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나를 즐겁게 했던 작가인 만큼, 10년만의 장편에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건축만담>

다시 태어난다면 건축가로 살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공간을 만지고 구성한다는 일의 매력을 일찍 깨닫지 못한 게 가금은 좀 억울하단 생각까지 든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서부터 미스 반 데어 로에, 루이스칸까지 세계 건축 거장 77인의 어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 책은 건축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매력적인 아이템일 거라 기대해 본다. 일테면 루이스 칸의 이런 말을 심상히 넘길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벽돌에게 뭐가 되고 싶니?” 하고 말을 건다. “아치하고 벽돌이 대답한다.“아치는 돈이 많이 드니까 콘크리트 가로대는 어떨까?” 하고 다시 물으니 아치가 좋다고 벽돌이 대답한다.이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 재료에게 경외감을 가져야 한다]

 


<잉여사회>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와 각종 칼럼에서 보아 온 최태섭의 재기와 분석력에 기대를 걸어본다. 앞서의 글들에서 보여준 성실한 분석이 잉여라는 키워드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잉여가 이만큼 주목받고 분석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데 대해 어리둥절하거나 못마땅해 할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보면 잉여의 존재론은 우리 시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시대의 주료에서 비껴난 이들, 혹은 외면받던 이들 가운데서 새로운 에너지와 역동성이 돌출되어 나왔던 게 역사이기도 한 것 아닌가.


 

<월경독서>

목수정의 글이 갖는 강점은 가장 냉철한 순간에도 자의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 배어드는 날카로운 감수성, 언제나 언어적 관능을 잊지 않는 문장들은 다른 문필가들과 그의 글을 구별짓는 가장 앞자리에 놓인 지표가 된다. 한국에서 프랑스로 다시 한국으로, 자식에서 어머니로, 문화기획자에서 당 활동가로 다시 작가로... 그가 경과해 온, 그리고 지금도 역시 지나고 있는 수많은 장소와 관계와 정체성들을 슬몃 엿볼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아 반갑다.


 

<이 치열한 무력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 안긴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다. ‘책을 너무 많이 읽는 것만큼 쓸데 없는 일도 없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읽은 그대로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라는 책의 혁명론은 강렬하게 내 맘에 남았다. 사사키 아타루의 다른 저작이 궁금했는데 이후의 강연과 글들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하니 반가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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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인생이라는 게 결국 경험치를 통해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라면, 역사는 인류가 쌓아온 경험치. 이걸 외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결론은 당연지사. 민족사라는 좁은 틀에 갇혀 한민족의 위대성을 동어반복으로 주절거리는 이야기만큼 꼴불견인 것도 없지만, 역사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 없이 몰역사적 관점으로 일관하는 이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박제가에 주목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정조가 가장 아꼈던 재원. 백탑파의 일원으로 남긴 숱한 일화. 서얼로 태어나 조선 지식의 최전선에 서게 된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 그러나 <북학의>는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제대로 된 독서를 한 적이 없다. 최초의 완역본이라 하니, 절로 눈이 간다.

 

 

 

 

 

 

인문학이 중산층의 지적유희나 장삼이사의 심심풀이 땅콩처럼 회자되고 있는 지금, 인문주의 정치비평서를 표방하는 <말과 활>의 창간은 의미심장하다. 대체 인문학이란 게 뭔가. 서구 학자들 이름자 좀 주워섬기고, 이런 저런 이론들 몇 개 줄줄 외운다고 인간의 무늬 운운한다면 가소로울 따름 아닌가. 인간의 삶이, 아니 우리들의 삶의 조건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고 어떻게 코너에 몰리고 있으며 어떻게 이 답답함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나누고 현실화를 위해 움직이는 것. <말과 활>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해적판으로, 불법복제 비디오로 알만한 사람, 볼만한 사람은 대개 거쳐갔을 작품. 너무 늦게 도착했지만, 그 영향만은 모두들 입을 모아 인정하고 찬양하는 작품. 구구절절 설명을 달아놓는 게 되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싶은 작업이다. 그래서 더 인쇄질에 대한 논란은 좀 아쉽다. 어찌됐든, 전설의 레전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

 

 

 

리얼리즘 만화가 가 닿은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 사실, 이 만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 달의 관심도서로 선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러니하지만, 불온도서 논란이 독서문화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청불등급논란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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