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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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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는 자기기만에 대한 이야기다. 로버트 트리버스는 살아있는 최고의 진화심리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최신의 방법론 중 하나.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양태를 수백만년 동안 진척되어 온 육체적/사회적 진화와 상대적으로 뒤늦게 진행된 마음의 변화의 격차로 설명한다. 이는 마치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추수를 기준으로 하는 명절을 기념하느라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사이클과 많이 닮았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일을 아노미 현상이라고 부르던가. 급격한 시스템 변화에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진화심리학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이백만년 전 수렵시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 그리고 내일을 무엇을 먹고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을까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왜 사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따질 겨를이 없었던 거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고 헤아리는 것이 인간의 뇌에 얼마나 낯선 일인지 생각해 보면, 그런 문제들이 왜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일들인지 알게 된다.”

 

농구에선 노룩패스란 기술이 있다. 패스를 받을 같은 팀 선수에게 전혀 시선을 던지지 않은 채 공을 던져 상대방의 수비를 교란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기만술이다. 그런데 이게 너무 완벽하다보면 공을 받을 선수마저 자신에게 패스가 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해 공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자기편마저 속인다라고 한다. 자기기만이 꼭 그렇다. 자신마저 사실과는 다른,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는 다른 정보를 스스로에게 입력해두는 것. 책에서는 자기기만이란 결국 남을 더 잘 속이기 위한 방편으로 인간에게 발달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만이 아니다. 각종 동물들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기만술을 사용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만큼 자기기만에 능한 종족도 쉽지 않다. 세상 거짓말의 90%는 돈과 섹스에 관한 것이라 했던가.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기만하고, 남을 더 잘 속이기 위해 자신 스스로 왜곡된 인식을 진실인양 믿게 되는 상황은 인간에게 비일비재한 일상과도 같다. 이것이 개인의 일이라면 그나마 낫다. 더 큰 조직일수록 자기기만의 결과는 파멸적이다. 나사의 자기기만은 챌린저호를 폭발시키는 대형사고를 불러왔고, 이라크 전쟁에서 보인 대량살상무기라는 미국의 자기기만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들의 자기기만은 자기확신과 직결된다.

 

생각해보면 왜곡된 자기확신처럼 위험천만한 것도 없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한 화가 지망생의 망상은 하필 그에게 주어진 연설능력과 정치력 덕에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 중 하나를 그와 그의 일당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했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이들이 학살당하는 미증유의 비극을 불러왔다. 이 화가 지망생의 이름은 물으나 마나 2차 세계대전의 주역으로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다. 자기기만은 결국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을뿐더러 두고두고 대외정책 운영에 부담을 안게 됐다. 히틀러는 결국 벙커 안에서 권총자살로 최후를 마감해야 했다. 결국, 남을 속이기 위한 자기기만이라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기만이라는 달콤한 덫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들이 열릴 것이다. 이 책은 자기기만의 숱한 사례들을 매우 흥미롭게 보여주어 자기기만이라는 진화의 부작용을 우리가 냉정히 바라볼 수 있도록 거들어주는 미덕을 가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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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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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친구 하나는 자기는 조선일보만 본다고 했다. 다른 신문들이 가볍게 입을 놀리며 방정을 떨어도, 조선일보는 진중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오보 비율도 적고, 품격있는 신문이라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사실, 친구의 주장일리 없었다. 당연히 그것은 조선일보를 보는 녀석 아버지의 입장이었으리라. 그런데, 글쎄, 조선일보가 그랬던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은 문민정부가 막 들어서던 시점이었다. 921211, 초원복국집 사건이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으로 지목되는 당시 법무부장관 김기춘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라며 부산지역 주요 기관장들을 모아 연, 명백한 선거법 위반모임이었다. 모임의 내용이 폭로되자 심지어 노태우 정권마저 그 모임에 참석한 부산시장을 해임하고 부산지방경찰청장과 안기부지부장, 기무부대장을 직위해제시켰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김영삼 구하기에 앞장을 섰다’. “보수 언론 가운데 특히 조선일보가 김영삼 구하기에 앞장을 섰다. 그 신문은 초원복국집 사건이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국민당이 도청을 한 사실이 더 심각한 범죄라는 논조를 펼쳤다”(372페이지) 이거, 뭔가 최근 같은 드라마를 본 것처럼 유사한 장면이 막 떠오르고 그렇지 않은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어땠던가? 김영삼이 정치적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논란이 될만한 멍청한 말들을 쏟아내느라 지금은 신망을 잃었지만,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19938, 그가 깜짝쇼로 단행한 금융실명제는 한국의 경제체질 개선에 한 몫을 단단히 한 쾌거였다. 그런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인 조선일보는 어땠더라? 같은 해 822일자 김대중 칼럼을 보자. “새 정권은 재산 공개로 정치인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관료 역시 재산 공개와 사정으로 얻어맞고 고통 분담으로 실질적인 손해를 입고 있는데다 관리로서의 인센티브마저 잃어가고 있다.(...) 기업인은 이번 실명제로 지리멸렬 상태이다.(...) 특히 중소기업인들은 실명제라는 핵폭탄을 맞고 어떤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할 정도이다”(377) 20년의 세월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그 장렬한 코믹함은 잃지 않았다. ‘관리로서의 인센티브운운하는 대목은 김대중 씨가 개그에도 욕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한국언론의 역사를 기술한 책을 놓고, 너무 한 언론사에만 지나치게 지면을 할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일등신문만을 난타할 일은 아니다. 식민지 시대부터 군사독재와 민주정부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동안, 언론이 보여준 교언영색, 지록위마, 표리부동, 호가호위, 권모술수, 양두구육, 어불성설, 일구이언, 후안무치한 행태들을 떠올리면 이 책에서 보여준 언론의 역사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위해 뛰고 있는 언론인들을 보면 잠시의 희망을 갖는다. 물론, 이내 그들이 처해있는 객관적인 상황을 떠올리고 암담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대학 1학년 교양국어 시간. 강사는 우리에게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를 비교해서 읽어보라고 했다. 한 사건을 두고 두 개의 매체가 어떻게 보도하는지를 살피면 언론의 공정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알게된다고 했던 것 같다. , 객관적인 글쓰기라는 것이 얼마나 가 닿기 어려운 것인지 보여줄 거라고도 했다. 과연, 두 매체는 같은 사안을 이야기하는 데도 전혀 다른 말들을 쏟아냈다. 언론이 못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거, 조선일보가 친구가 말한 것처럼 품격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걸 이때 적나라하게 깨달았다.

 

권불십년이라 했건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 언론은 50, 아니 100년의 역사를 두고 한국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허술히 넘기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해두어야 할 이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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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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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표지에는 “밤 12시 기묘한 요리집이 문을 연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얼핏 ‘인육만두’나 ‘손가락 튀김’같은 괴기스런 요리들을 내어놓고는 손님들을 회쳐버리는 엽기적인 식당을 떠올릴 법도 하다. 안심하시라, 이 책에는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은 없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영웅도 귀여운 아가씨도 나오지 않는다’며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선남선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인생의 다양한 맛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식당의 운영원칙은 간단하다. 밤 12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까지 운영한다는 것. 메뉴는 돼지고기된장국정식 하나. 나머지는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을 그때그때 있는 재료에 따라 만들어 준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원하는 요리를 주문하라, 는 배포를 부리기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이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들 이래봤자 빨간 비엔나 소세지에 냉국, 카레라이스, 달걀샌드위치, 삶은 달걀, 버터라이스 등 대부분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는 심상치 않은 얼굴의 칼자국으로 보건대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사연을 숨겨놓았을 것 같은, 솜씨 좋고 사람 좋은 식당 주인이다.

나이 마흔에 만화가로 데뷔한 작가 아베 야로는 한 인터뷰에서 “음식에 대해 만화에서 지식을 과시하는 게 싫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심야식당>에는 심오한 음식의 세계나 천상의 맛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한밤중 헛헛한 속을 달래줄 뜨끈한 국물 같은 이야기들이 찰랑찰랑 고여있다.

매회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지는 구성은 담백하고 깔끔한 이야기의 맛을 보여준다. 음식을 매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이들의 각양각색 이야기들은 인생의 맛을 음식으로 치환해 오밀조밀하게 보여준다. 그 중에는 밤새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고양이 맘마(뜨거운 밥에 가츠오부시를 얹고 간장을 뿌려 먹는 밥)를 주문하는 팔리지 않는 엔카 가수도 있고, 시합에 이길 때마다 카츠돈(‘카츠’는 일본말로 ‘이기다’라는 뜻도 있다)을 시켜먹는 복서도 있다. 험악한 외모에 어울리잖게 항상 문어모양으로 볶은 빨간 비엔나 소세지를 시켜먹는 야쿠자도 있고, 통째로 절인 오이를 호쾌하게 씹어먹는 여자 프로레슬링 선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복잡한 맛은 음식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달콤한 꿈이기도 했다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기도 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감칠맛이기도 했다가 아플 정도로 매운맛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던가.

배고팠던 시절, 내게도 단골식당이 있었다. 꼭 배가 고파서 간 것만은 아니었다,고 하기엔 허겁지겁 부지런히도 먹어대던 그 때. 아들처럼 대해주신 것은 아니지만, 배고픈 자취생의 마음을 헤아려주시던 주인아주머니는 느지막한 아침이나 한밤중에서야 홀로 찾아드는 ‘불량 손님’에게 자주 당신의 아들 이야기를 해주셨던가. 아직도 게 다리 한쪽이 들어간 된장찌개의 구수함과 혼자 먹는 밥상에 몇 번을 덜어오던 묵은지의 깊은 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먹을 만한 밥집 하나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재작년이었던가 희망제작소에서 주최한 불만합창단 콘테스트에서 한 팀이 부른 불만합창에는 ‘동네에 쓸 만한 식당하나 없다’는 하소연이 들어있었다. 정말이지, 저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만들고 관계를 맺어주는 식당이 있다면야 매일 밤이라도 찾아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야식당>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면, 음식에 담긴 추억들을 나눌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만 한 가지, 안 그래도 식욕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심야에 이 작품을 보는 건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 못하게 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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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고다마 사에 지음, 박소영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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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인간답다’는 걸까. 인간의 도리? 인간의 길?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행동의 준칙? 따라야 할 기준?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는 ‘인간다움’에 대한 인식이 인간종 중심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인식일 수도 있다는 걸 아프도록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아니, 이것은 책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생명을 무책임하게 방치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호소에 가깝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유기동물,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유기동물보호소에 수용된 동물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집에 양귀자, 박원순, 임순례, 김정은, 스노우캣, 강경옥 등 저명인사들의 짧은 문장들을 함께 엮었다. 책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충격적이다. 그저 개와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그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전달된다. 죽음을 예감한 듯, 텅 비어있는 저 작은 생명들의 눈동자. 차마 정면으로 보기 괴로워 회피하고만 싶어지는 풍경. 안타까움과 좌절, 분노와 실망이 겹치는 와중에도 ‘주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에 대한 한줌의 기대감을 간직한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다시 가슴을 친다.

얼마 전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한 분이 유독 예뻐하며 기르던 개가 주인을 기다리며 음식을 거부해 끝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까 영안실에 함께 가지 못하다, 상태가 끝내 좋아지지 않아 데려간 그곳에서 개는 주인아저씨의 영정을 보고 눈물을 흘렸단다. 수의사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간과 오랫동안 살던 동물은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반려동물과 눈빛으로, 쓰다듬과 몸부빔으로 나누는 교감은 인간 사이의 그것만큼 복잡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일방적으로 무시당할 만큼 가벼운 것도 아니다. 아니, 한 번이라도 동물과 교감을 나누어 본 경험이 있다면 존재와 존재간의 소통의 본질은 같은 거라는 사실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동물애호가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장 싸늘한 시선을 대변하는 논리는 ‘그 정성으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돌아보라’는 것일 테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휴머니즘 넘치는 언사로 무장하신 분들일수록 실제로는 주변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입이나 키보드로만 어려운 이들을 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동물에 대한 ‘투자’가 과하다 싶은 일부 유난스런 사례가 없지 않지만(실제로는 이런 사례들만 자극적으로 다뤄져 왜곡을 조장한다), 동물을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이들은 사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 생명과 존재에 대한 태도는 쉽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편집자는 후기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사냥견, 목양견 등 개의 가치가 생활 속에서 분명하게 자리잡은 데 반해 한국이나 일본은 ‘애완동물’로 유입되어 ‘반려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이들로 인해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다는 것이다. 또, 반려동물을 받아들여 기르는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도 동물을 사랑하는 한 방식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책 서문에 인용된 간디의 말을 재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자.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을 그 나라에서 동물이 어떠한 취급을 닫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자, 우리의 도덕적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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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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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는 몇 년 전 ‘발렌타인데이를 망쳐놓겠다’며 친구들과 함께 도심에서 모종의 ‘액션’을 감행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이 중에도 그 선배를 마주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침 토요일이었던 발렌타인데이, 대낮에 불콰해진 얼굴과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알콜 기운을 풀풀 풍겨가며 연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종로 일대를 배회하던 서너 명의 주정뱅이들을 말이다. 

웬 찌질한 짓이냐고? 그저 ‘없는 이’들의 투정일 뿐이라고? 맞다, 지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며 지탄을 받은 ‘발렌타인데이 습격’은 솔로남들의 불타는 질투와 신세한탄이 승화된 객기가 빚어낸 한편의 해프닝일 뿐이었다. 그러나 수백 명이 동시에 '진상'을 부리며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면?
 
<가난뱅이의 역습>에서 ‘발렌타인데이 습격’ 사건과 유사한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일명 ‘크리스마스 분쇄 찌개집회! 롯폰기힐스’다. 대형쇼핑몰이 들어선 시내 중심가에 ‘롯폰기힐스를 불바다로!’라는 전단을 뿌리고는 찌개를 끓여먹는 어처구니없는 집회다. 크리스마스 당일 반짝반짝 빛나야 할 거리경관이 대거 출동한 수백 명의 경찰과 때 아닌 소란을 즐기는 군중들로 마비가 되다시피 한 걸 보며 ‘임무완수’라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크리스마스에 편승한 상업주의, 적들의 으리으리한 이벤트는 분쇄되었다!

이 책, 물건이다. 어떻게 저항해 볼 도리 없이 유쾌하다. 책을 읽는 동안 지하철 등에서 폭소를 터뜨려 주위의 눈총을 받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뭐가 그리 재밌냐고? 백문이 불여일견. 당연히 읽어봐야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으나, 아직까지 가난뱅이들의 포복절도할 역습을 만나지 못한 가여운 당신을 위해 맛보기로 간략하게만 알려주겠다. 준비, 됐나?

올 한해, 경제위기에 대한 온갖 얘기들이 사정없이 귀를 때렸다. 서브프라임모기지부터 월가, 코스피, 실물경제, 금값, 부동산... 근데, 그게 뭐? 부자들의 위기, 자본주의 작동방식의 위기를 왜 우리가 골머리 썩히며 걱정해야 하나. 물론, 사정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 ‘몰락’의 속도는 그 구성원들 특히 ‘하류인생’들에 가혹한 조건을 양산해내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그것과 애초에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면 어떨까. 월급쟁이로 평생을 산다? 생각만 해도 숨통이 죄어오는 것 같다. 어째어째 은행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는 10년이고 20년이고 집값 갚느라 허리가 부러진다? 맙소사, 단단한 밧줄로 목이 졸리는 기분이다.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답게 살자’는게 마쓰모토 하지메의 이야기다. 가난뱅이답게 닥치고 고난을 감내하고 사는 게 필요하단 얘기냐고? 그럴 리가 있나. 우리를 가난뱅이로 몰아넣는 세상의 존재를 인식하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지 말란 얘기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사회를 위해 고생이 되더라도 노력한다 -> 세상이 나아진다 -> 떡고물을 얻어먹는다’라는 말은 부자들이 듣기 좋으라고 내뱉는 거짓부렁, 뻥이라고 일축한다.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좀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 ->몸부림친다 ->어떻게든 된다(무슨 수든 쓴다)’야 말로 인간답고 즐거운 일이라고 제안한다. ‘제대로 살아보라’는 시시껄렁한 말일랑 듣지 말고 멋대로 씩씩하게, 시끌벅적한 한판을 벌이자는 거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싼 집을 구하는 기술, 밥값 절약 기술, 저렴한 옷을 구하는 방법 등으로 운을 뗀다. 노숙 작전이나 걸식 작전을 거쳐 다다미를 우려먹었다는 이야기까지 도달하면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길 없다. 그야말로 포복절도, 요절복통 노하우들이 빼곡하다. 가난뱅이들의 실전 처세술이라 해도 모자람 없겠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대학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난 후 도쿄 외곽의 고엔지라는 곳에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재활용 가게를 만든다. 결국, 재테크 책 아니냐고? 당연히 돈 좀 아껴서 큰 차 사고, 30평대 아파트가 로망인 당신을 위한 게 아니다. 가난이라는 부조리한 조건을 무기삼아 세상의 불합리에 맞서잔 얘기다. 

세상의 불합리? 맞서자? 대강 이 말만 듣고 혹시 ‘일본 좌빨 아냐?’라며 고개부터 흔드는 당신. 빨간 머리띠 두르고 팔뚝질하는 장면부터 떠오르는 당신. 당신의 지리한 인생에 유감을 표한다. 가난뱅이의 역습에는 그렇게 고리타분한 저항 따윈 없다. 운동의 온갖 매뉴얼들은 잊어라. 유쾌하게 즐겁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데 가장 큰 적이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면 ‘저항의 엄숙주의’ 역시 그 못지않은 적이다. 

그가 벌인 반란의 목록만 봐도 보면 그런 걱정일랑 싸악 잊혀진다. 난로 투쟁, 찌개 투쟁, 술 투쟁, 갈고등어 암치 투쟁, 페인트탄 투척까지. 대학의 상업화를 막기 위해 그가 결성한 조직의 이름은 ‘호세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이다. 아무 제약 없이 거리에서 발언과 행사가 가능하단 이유로 선거에 출마해 무도회ㆍ토크쇼ㆍ콘서트 등 온갖 이벤트와 흥겨운 소란을 빚어내고, 3인 데모, 내 자전거 돌려줘 데모, 월세공짜를 위한 데모, 공포의 바람맞히기 데모 따위를 조직한다. 여기까지 오면 두손 두발 다 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얘기를 들어봐도 역시 찌질하다고? 루저들의 투정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이거 왜 이러시나. 세상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있다는 걸 당신은 몰랐단 말인가. ‘자본으로 대동단결’한 세상은 지리하고 무미건조한 사막 같은 골짜기다. 거리로 나가면 온통 돈으로 발라놓은 공간들이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정체성을 교체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 이 지옥 같은 쳇바퀴는 아래로는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뺑뺑이를 도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끔찍한 현실에서부터 카드값과 대출이자에 짓눌리는 중년 가장에까지 거대한 구조물을 형성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 노예선에서 일탈하자는 게 <가난뱅이의 역습>이 보여주는 세계다.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재밌는 일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것이 마츠모토 하지메의 제안이다. 이 책은 그가 스테레오타입화된 삶에 던지는 페인트 세례다. 가난뱅이가 다르게 사는 것, 가난뱅이가 가난뱅이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무기삼아 유쾌하고 즐겁게 사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저항이자 반란이다. 

올해 운 좋게도 마쓰모토 하지메와 그의 동료들이 활동하고 있는 고엔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프리터들이 결성한 노동조합 관계자, 불심검문을 밥 먹듯 하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골탕먹이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 에로만화를 그리면서도 자신을 좌파라 소개하는 만화가 등등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가난뱅이의 역습>을 올 한해를 관통하는 책으로 주저 없이 추천하며, 한국에도 유쾌한 공간과 사람들의 반란이 점점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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