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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노바-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3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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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인생이라는 게 결국 경험치를 통해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라면, 역사는 인류가 쌓아온 경험치. 이걸 외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결론은 당연지사. 민족사라는 좁은 틀에 갇혀 한민족의 위대성을 동어반복으로 주절거리는 이야기만큼 꼴불견인 것도 없지만, 역사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 없이 몰역사적 관점으로 일관하는 이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북학의 - 완역정본
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 돌베개 / 2013년 7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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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에 주목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정조가 가장 아꼈던 재원. 백탑파의 일원으로 남긴 숱한 일화. 서얼로 태어나 조선 지식의 최전선에 서게 된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 그러나 <북학의>는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제대로 된 독서를 한 적이 없다. 최초의 완역본이라 하니, 절로 눈이 간다.
말과활 - 창간호- 2013 7-8월호
말과활 편집부 지음 / 일곱번째숲 / 2013년 7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5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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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문학이 중산층의 지적유희나 장삼이사의 심심풀이 땅콩처럼 회자되고 있는 지금, 인문주의 정치비평서를 표방하는 <말과 활>의 창간은 의미심장하다. 대체 인문학이란 게 뭔가. 서구 학자들 이름자 좀 주워섬기고, 이런 저런 이론들 몇 개 줄줄 외운다고 인간의 무늬 운운한다면 가소로울 따름 아닌가. 인간의 삶이, 아니 우리들의 삶의 조건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고 어떻게 코너에 몰리고 있으며 어떻게 이 답답함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나누고 현실화를 위해 움직이는 것. <말과 활>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아키라 AKIRA 박스세트 - 전6권
오토모 가츠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7월
120,000원 → 10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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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적판으로, 불법복제 비디오로 알만한 사람, 볼만한 사람은 대개 거쳐갔을 작품. 너무 늦게 도착했지만, 그 영향만은 모두들 입을 모아 인정하고 찬양하는 작품. 구구절절 설명을 달아놓는 게 되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싶은 작업이다. 그래서 더 인쇄질에 대한 논란은 좀 아쉽다. 어찌됐든, `전설의 레전드`(응?)를 직접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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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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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표지에는 “밤 12시 기묘한 요리집이 문을 연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얼핏 ‘인육만두’나 ‘손가락 튀김’같은 괴기스런 요리들을 내어놓고는 손님들을 회쳐버리는 엽기적인 식당을 떠올릴 법도 하다. 안심하시라, 이 책에는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은 없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영웅도 귀여운 아가씨도 나오지 않는다’며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선남선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인생의 다양한 맛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식당의 운영원칙은 간단하다. 밤 12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까지 운영한다는 것. 메뉴는 돼지고기된장국정식 하나. 나머지는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을 그때그때 있는 재료에 따라 만들어 준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원하는 요리를 주문하라, 는 배포를 부리기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이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들 이래봤자 빨간 비엔나 소세지에 냉국, 카레라이스, 달걀샌드위치, 삶은 달걀, 버터라이스 등 대부분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는 심상치 않은 얼굴의 칼자국으로 보건대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사연을 숨겨놓았을 것 같은, 솜씨 좋고 사람 좋은 식당 주인이다.

나이 마흔에 만화가로 데뷔한 작가 아베 야로는 한 인터뷰에서 “음식에 대해 만화에서 지식을 과시하는 게 싫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심야식당>에는 심오한 음식의 세계나 천상의 맛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한밤중 헛헛한 속을 달래줄 뜨끈한 국물 같은 이야기들이 찰랑찰랑 고여있다.

매회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지는 구성은 담백하고 깔끔한 이야기의 맛을 보여준다. 음식을 매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이들의 각양각색 이야기들은 인생의 맛을 음식으로 치환해 오밀조밀하게 보여준다. 그 중에는 밤새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고양이 맘마(뜨거운 밥에 가츠오부시를 얹고 간장을 뿌려 먹는 밥)를 주문하는 팔리지 않는 엔카 가수도 있고, 시합에 이길 때마다 카츠돈(‘카츠’는 일본말로 ‘이기다’라는 뜻도 있다)을 시켜먹는 복서도 있다. 험악한 외모에 어울리잖게 항상 문어모양으로 볶은 빨간 비엔나 소세지를 시켜먹는 야쿠자도 있고, 통째로 절인 오이를 호쾌하게 씹어먹는 여자 프로레슬링 선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복잡한 맛은 음식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달콤한 꿈이기도 했다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기도 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감칠맛이기도 했다가 아플 정도로 매운맛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던가.

배고팠던 시절, 내게도 단골식당이 있었다. 꼭 배가 고파서 간 것만은 아니었다,고 하기엔 허겁지겁 부지런히도 먹어대던 그 때. 아들처럼 대해주신 것은 아니지만, 배고픈 자취생의 마음을 헤아려주시던 주인아주머니는 느지막한 아침이나 한밤중에서야 홀로 찾아드는 ‘불량 손님’에게 자주 당신의 아들 이야기를 해주셨던가. 아직도 게 다리 한쪽이 들어간 된장찌개의 구수함과 혼자 먹는 밥상에 몇 번을 덜어오던 묵은지의 깊은 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먹을 만한 밥집 하나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재작년이었던가 희망제작소에서 주최한 불만합창단 콘테스트에서 한 팀이 부른 불만합창에는 ‘동네에 쓸 만한 식당하나 없다’는 하소연이 들어있었다. 정말이지, 저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만들고 관계를 맺어주는 식당이 있다면야 매일 밤이라도 찾아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야식당>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면, 음식에 담긴 추억들을 나눌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만 한 가지, 안 그래도 식욕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심야에 이 작품을 보는 건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 못하게 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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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고다마 사에 지음, 박소영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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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인간답다’는 걸까. 인간의 도리? 인간의 길?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행동의 준칙? 따라야 할 기준?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는 ‘인간다움’에 대한 인식이 인간종 중심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인식일 수도 있다는 걸 아프도록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아니, 이것은 책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생명을 무책임하게 방치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호소에 가깝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유기동물,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유기동물보호소에 수용된 동물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집에 양귀자, 박원순, 임순례, 김정은, 스노우캣, 강경옥 등 저명인사들의 짧은 문장들을 함께 엮었다. 책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충격적이다. 그저 개와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그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전달된다. 죽음을 예감한 듯, 텅 비어있는 저 작은 생명들의 눈동자. 차마 정면으로 보기 괴로워 회피하고만 싶어지는 풍경. 안타까움과 좌절, 분노와 실망이 겹치는 와중에도 ‘주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에 대한 한줌의 기대감을 간직한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다시 가슴을 친다.

얼마 전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한 분이 유독 예뻐하며 기르던 개가 주인을 기다리며 음식을 거부해 끝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까 영안실에 함께 가지 못하다, 상태가 끝내 좋아지지 않아 데려간 그곳에서 개는 주인아저씨의 영정을 보고 눈물을 흘렸단다. 수의사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간과 오랫동안 살던 동물은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반려동물과 눈빛으로, 쓰다듬과 몸부빔으로 나누는 교감은 인간 사이의 그것만큼 복잡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일방적으로 무시당할 만큼 가벼운 것도 아니다. 아니, 한 번이라도 동물과 교감을 나누어 본 경험이 있다면 존재와 존재간의 소통의 본질은 같은 거라는 사실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동물애호가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장 싸늘한 시선을 대변하는 논리는 ‘그 정성으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돌아보라’는 것일 테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휴머니즘 넘치는 언사로 무장하신 분들일수록 실제로는 주변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입이나 키보드로만 어려운 이들을 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동물에 대한 ‘투자’가 과하다 싶은 일부 유난스런 사례가 없지 않지만(실제로는 이런 사례들만 자극적으로 다뤄져 왜곡을 조장한다), 동물을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이들은 사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 생명과 존재에 대한 태도는 쉽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편집자는 후기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사냥견, 목양견 등 개의 가치가 생활 속에서 분명하게 자리잡은 데 반해 한국이나 일본은 ‘애완동물’로 유입되어 ‘반려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이들로 인해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다는 것이다. 또, 반려동물을 받아들여 기르는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도 동물을 사랑하는 한 방식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책 서문에 인용된 간디의 말을 재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자.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을 그 나라에서 동물이 어떠한 취급을 닫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자, 우리의 도덕적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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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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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는 몇 년 전 ‘발렌타인데이를 망쳐놓겠다’며 친구들과 함께 도심에서 모종의 ‘액션’을 감행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이 중에도 그 선배를 마주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침 토요일이었던 발렌타인데이, 대낮에 불콰해진 얼굴과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알콜 기운을 풀풀 풍겨가며 연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종로 일대를 배회하던 서너 명의 주정뱅이들을 말이다. 

웬 찌질한 짓이냐고? 그저 ‘없는 이’들의 투정일 뿐이라고? 맞다, 지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며 지탄을 받은 ‘발렌타인데이 습격’은 솔로남들의 불타는 질투와 신세한탄이 승화된 객기가 빚어낸 한편의 해프닝일 뿐이었다. 그러나 수백 명이 동시에 '진상'을 부리며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면?
 
<가난뱅이의 역습>에서 ‘발렌타인데이 습격’ 사건과 유사한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일명 ‘크리스마스 분쇄 찌개집회! 롯폰기힐스’다. 대형쇼핑몰이 들어선 시내 중심가에 ‘롯폰기힐스를 불바다로!’라는 전단을 뿌리고는 찌개를 끓여먹는 어처구니없는 집회다. 크리스마스 당일 반짝반짝 빛나야 할 거리경관이 대거 출동한 수백 명의 경찰과 때 아닌 소란을 즐기는 군중들로 마비가 되다시피 한 걸 보며 ‘임무완수’라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크리스마스에 편승한 상업주의, 적들의 으리으리한 이벤트는 분쇄되었다!

이 책, 물건이다. 어떻게 저항해 볼 도리 없이 유쾌하다. 책을 읽는 동안 지하철 등에서 폭소를 터뜨려 주위의 눈총을 받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뭐가 그리 재밌냐고? 백문이 불여일견. 당연히 읽어봐야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으나, 아직까지 가난뱅이들의 포복절도할 역습을 만나지 못한 가여운 당신을 위해 맛보기로 간략하게만 알려주겠다. 준비, 됐나?

올 한해, 경제위기에 대한 온갖 얘기들이 사정없이 귀를 때렸다. 서브프라임모기지부터 월가, 코스피, 실물경제, 금값, 부동산... 근데, 그게 뭐? 부자들의 위기, 자본주의 작동방식의 위기를 왜 우리가 골머리 썩히며 걱정해야 하나. 물론, 사정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 ‘몰락’의 속도는 그 구성원들 특히 ‘하류인생’들에 가혹한 조건을 양산해내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그것과 애초에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면 어떨까. 월급쟁이로 평생을 산다? 생각만 해도 숨통이 죄어오는 것 같다. 어째어째 은행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는 10년이고 20년이고 집값 갚느라 허리가 부러진다? 맙소사, 단단한 밧줄로 목이 졸리는 기분이다.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답게 살자’는게 마쓰모토 하지메의 이야기다. 가난뱅이답게 닥치고 고난을 감내하고 사는 게 필요하단 얘기냐고? 그럴 리가 있나. 우리를 가난뱅이로 몰아넣는 세상의 존재를 인식하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지 말란 얘기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사회를 위해 고생이 되더라도 노력한다 -> 세상이 나아진다 -> 떡고물을 얻어먹는다’라는 말은 부자들이 듣기 좋으라고 내뱉는 거짓부렁, 뻥이라고 일축한다.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좀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 ->몸부림친다 ->어떻게든 된다(무슨 수든 쓴다)’야 말로 인간답고 즐거운 일이라고 제안한다. ‘제대로 살아보라’는 시시껄렁한 말일랑 듣지 말고 멋대로 씩씩하게, 시끌벅적한 한판을 벌이자는 거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싼 집을 구하는 기술, 밥값 절약 기술, 저렴한 옷을 구하는 방법 등으로 운을 뗀다. 노숙 작전이나 걸식 작전을 거쳐 다다미를 우려먹었다는 이야기까지 도달하면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길 없다. 그야말로 포복절도, 요절복통 노하우들이 빼곡하다. 가난뱅이들의 실전 처세술이라 해도 모자람 없겠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대학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난 후 도쿄 외곽의 고엔지라는 곳에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재활용 가게를 만든다. 결국, 재테크 책 아니냐고? 당연히 돈 좀 아껴서 큰 차 사고, 30평대 아파트가 로망인 당신을 위한 게 아니다. 가난이라는 부조리한 조건을 무기삼아 세상의 불합리에 맞서잔 얘기다. 

세상의 불합리? 맞서자? 대강 이 말만 듣고 혹시 ‘일본 좌빨 아냐?’라며 고개부터 흔드는 당신. 빨간 머리띠 두르고 팔뚝질하는 장면부터 떠오르는 당신. 당신의 지리한 인생에 유감을 표한다. 가난뱅이의 역습에는 그렇게 고리타분한 저항 따윈 없다. 운동의 온갖 매뉴얼들은 잊어라. 유쾌하게 즐겁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데 가장 큰 적이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면 ‘저항의 엄숙주의’ 역시 그 못지않은 적이다. 

그가 벌인 반란의 목록만 봐도 보면 그런 걱정일랑 싸악 잊혀진다. 난로 투쟁, 찌개 투쟁, 술 투쟁, 갈고등어 암치 투쟁, 페인트탄 투척까지. 대학의 상업화를 막기 위해 그가 결성한 조직의 이름은 ‘호세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이다. 아무 제약 없이 거리에서 발언과 행사가 가능하단 이유로 선거에 출마해 무도회ㆍ토크쇼ㆍ콘서트 등 온갖 이벤트와 흥겨운 소란을 빚어내고, 3인 데모, 내 자전거 돌려줘 데모, 월세공짜를 위한 데모, 공포의 바람맞히기 데모 따위를 조직한다. 여기까지 오면 두손 두발 다 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얘기를 들어봐도 역시 찌질하다고? 루저들의 투정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이거 왜 이러시나. 세상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있다는 걸 당신은 몰랐단 말인가. ‘자본으로 대동단결’한 세상은 지리하고 무미건조한 사막 같은 골짜기다. 거리로 나가면 온통 돈으로 발라놓은 공간들이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정체성을 교체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 이 지옥 같은 쳇바퀴는 아래로는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뺑뺑이를 도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끔찍한 현실에서부터 카드값과 대출이자에 짓눌리는 중년 가장에까지 거대한 구조물을 형성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 노예선에서 일탈하자는 게 <가난뱅이의 역습>이 보여주는 세계다.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재밌는 일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것이 마츠모토 하지메의 제안이다. 이 책은 그가 스테레오타입화된 삶에 던지는 페인트 세례다. 가난뱅이가 다르게 사는 것, 가난뱅이가 가난뱅이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무기삼아 유쾌하고 즐겁게 사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저항이자 반란이다. 

올해 운 좋게도 마쓰모토 하지메와 그의 동료들이 활동하고 있는 고엔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프리터들이 결성한 노동조합 관계자, 불심검문을 밥 먹듯 하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골탕먹이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 에로만화를 그리면서도 자신을 좌파라 소개하는 만화가 등등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가난뱅이의 역습>을 올 한해를 관통하는 책으로 주저 없이 추천하며, 한국에도 유쾌한 공간과 사람들의 반란이 점점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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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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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사건, 9.11 동시다발 테러를 모르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01년 세계무역센터를 강타한 9.11이 아닌 1973년 칠레에서 일어난 9.11을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합법선거를 통해 칠레 대통령이 된 최초의 사회주의자 아옌데는 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에서 직접 총을 들고 쿠데타 군과 싸우다 죽음을 맞았다.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저 유명한 독재자 피노체트의 쿠데타 군은 대통령 궁을 탱크로 둘러싸고 공군 폭격기로 미사일을 퍼부었다.

기아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 소개에 웬 쿠데타냐고? 칠레의 9.11은 기아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옌데가 선거에서 내건 제1공약은 ‘15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 분유 무상급식’이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이었던 아옌데가 당시 칠레 아이들의 심각한 영양실조 실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칠레에서 관련 산업을 독점하며 분유와 유아식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칠레정부와의 협력을 거부했다. 당연히 칠레정부는 제값을 치르고 분유를 사려했지만, 네슬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미국의 입김도 작용했다. 아옌데의 개혁프로그램대로 칠레경제가 자립성을 높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면 자국의 국제기업들이 칠레에서 얻는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결과였다. 결국 아옌데의 개혁프로그램은 실패하고, 칠레정부는 전복된다.

놀라운 일 아닌가? 자기 나라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제값을 주고 우유를 먹이는 일조차 미국과 다국적 기업들이 반대하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는 이처럼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는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살벌한 세계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사실,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지구 전체로 보자면 세계인구가 모두 소비하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 아니,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의 인구를 부양할 수도 있다. 이미 1984년 FAO(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는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계산한 바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열 살 미만의 아이가 7초마다 한명씩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고, 6분에 한 명씩 비타민 A의 부족 혹은 썩은 물과 접촉함으로써 시력을 잃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늘어만 가는 음식물 쓰레기를 고민하고, 과도하게 축적된 칼로리를 제거하기 위해 다이어트에 골몰한다. 수치로 볼까?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 즉 만성적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은 세계적으로 8억 5천만명에 달한다. 선진국에서는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과체중과 비만에 시달린다. 이렇게 지독한 부조리와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문제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은 사람이 아닌 소가 먹어치운다. 세계 곡물시장은 먹을 것이 없어 당장 굶어죽을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식량으로 투기하는 이들의 이해에 따라 인위적으로 가격이 부풀려진다. 앞서 언급한 칠레의 아옌데처럼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프로그램을 가동시키려던 저개발국가의 정치인들은 기득권과 국제자본에 의해 쫓겨나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기아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비극’이라는 이야기다.

학교에서는 저개발 국가들의 가난에 대해 반쪽짜리 진실만을 가르치기 일쑤다. 선진국들과 다국적기업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학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쉽게 이야기되기 않는다. ‘돈을 벌 권리’는 인정되는데 ‘굶어죽지 않을 권리’는 인정이 안 되는 꼴이다.

얼핏 복잡하고 머리 아픈 얘기일 것 같지만 장 지글러는 자기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아에 대한 진실을 조곤조곤 알려준다. 책을 읽고 나면 기아와 가난이 경제발전과 세계화의 ‘부작용’ 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대로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 모로 세계에 대한 인식의 균형을 잡아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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