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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아고라 폐인들 엮음 / 여우와두루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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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겠습니까?”(MBC 100분토론,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아니, 그럼 국민을 바꿔요?”(아고라 네티즌). 이 간단한 문답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2008년 ‘쇠고기정국’을 거치며 아고라는 이제 단순히 한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명칭을 넘어섰다. 아고라 폐인을 자칭하는 이들이 A부터 Z까지 디지털 아고라를 고스란히 페이퍼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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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의 시간 - 이경석 만화 팝툰 컬렉션 6
이경석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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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잊어라.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 표지에는 이마에 총구를 정조준 당한 한 사내가 분노의 포효를 지르고 있다. 책장을 넘기면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피비린내나는 액션활극이 펼쳐질 것만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표지를 넘겨 그림을 보면 ‘속았다’, 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머리끝까지 쭈뼛 소름이 돋는 공포도,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도, 비정하고 냉혹한 스토리 전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기가 어찌됐든 이경석의 작품을 손에 든 당신은 운이 좋다. 지금껏 다른 만화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경석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이들은 살짝 당혹감을 느낄지 모른다. 일본만화의 사실적인 화풍에 익숙한 이들에겐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거나 뒤뚱거리는 듯한 그림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다.

최초의 낯설음을 경과하면 오히려 이경석의 그림은 모든 컷에서 피식피식 웃음을 유발하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사실, 그의 그림체는 익숙해지면 매우 정감어린 것을 넘어 모종의 중독성까지 함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마저 든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와 얼핏 당혹스런 상황연결들이 빚어내는 즐거움은 이경석 만화를 독보적인 경지에 올려놓았다.

주인공 준수는 오랜만에 떠난 가족여행에서 좀비에 물린 후, 친구를 만나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가족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정부는 대대적인 좀비소탕 작전에 나서고 준수는 형사반장인 아버지와 극적으로 대치하게 된다. 「좀비의 시간」에서 목이 떨어져나가거나 손과 발이 따로 놀고 피가 튀는 잔인한 장면들이 사용되긴 하지만 이 작품의 좀비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다른 좀비물과는 사뭇 다르다. 좀비로 변하기 전까지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모습은 이제껏 나온 좀비물에서 만날 수 없던 장면이다.

“좀비에 물린 순간 난 이미 죽어가고 있다. 물리기 전 나의 삶은 대학 갓 졸업한 백수에 소심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꽃이 피고 지는지 관심없고...동네 꼬마들 전혀 관심 없고...그러나 지금 좀비한테 물려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떨어진 꽃잎만 봐도 눈물이 난다”

옮겨놓고 보니 왠지 건조해졌지만, 작가의 연출은 독자의 얼굴에서 미소를 떠나지 않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존재의 조건이 극단적으로 변환되면서 나타나는 정체성의 재정립과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라 할 만하다.

비주류 인생들에 대한 작가의 지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배치된다. 주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청년백수로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던 준수,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는 은행원 희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왕눈이, 젊은 시절 조직에 몸을 담았지만 지금은 손을 씻고 귀농의 삶을 살고 있는 코뿔소 등 변두리인생들은 하나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들을 한 자락씩 간직하고 있다.

“웃긴 얘기지만, 좀비에 물리고 나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라는 준수의 고백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준수에게 좀비에 물린다는 것은 삶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일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이경석은 자신이 연재하는 만화잡지 <팝툰> 표지에 마그리트의 <겨울비>와 이중섭의 <황소>를 응용해 소들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떨어지고 마그리트의 중절모 신사(물론 얼굴은 전원교향곡의 이장집 큰아들이었다)와 이중섭의 소가 눈물짓고 있는 장면을 그려넣은 적이 있다. 당시 쇠고기 정국과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좀비의 시간」에서도 그의 현실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비리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일부러 좀비사태를 극단으로 몰고가는 경찰청장과, 단지 좀비에 물렸을 뿐인 이들을 좀비강제수용소를 만들어 범죄자 취급하는 장면들은 군사독재시절의 어두웠던 과거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이 ‘과거’는 불행하게도 현재형이다.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든 좀비를 군인과 경찰이 총으로 무차별 진압하는 장면은 불과 몇 달 전 촛불정국에서 경찰의 살수차가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날려버렸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좀비의 시간」은 한겨레 매거진 ‘esc’에 연재됐던 작품을 묶어낸 것이다. 이경석은 「속주패왕전」「오!해피산타」등의 작품을 펴냈으며 만화잡지 <팝툰> 에 ‘전원교향곡’과 <고래가 그랬어>에 ‘을식이는 재수 없어’라는 작품을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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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13
마르시아스 심(심상대)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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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아스'라는 닭살기름기를 핑계로 이제껏 도외시한걸 살포시 후회하게 만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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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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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도 많다. 게다가 그것들은 모두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외양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책, 꼭 거쳐야만 하는 책들은 왜 그리도 곳곳에 널려 있는지...

책들은 언제나 현재를 이야기한다. 그것이 부족의 주술사가 동굴벽화를 그리던 선사시대를 말하든, 미스테리하고 불확실한 것 투성이인 20세기의 역사를 토해내든,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이야기하든, 팔팔 끓는 도가니탕 속 같은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싶다는 것, 그것이 책의 근본적인 욕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탄생한 이 책도 필시 그러할 것이다.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 책 앞에

...역시 그렇다. 현실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은 다시금 그 현실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더군다나 그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앞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신문 연재물로서의 이 책은 저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현실에 피드백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다.

흔히들 글쓰기에 있어 중도를 걷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을 한다. 저널리즘 식의 다채로운 메뉴를 갖는 화려한 글쓰기와 아카데미즘의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정확성을 가진 글쓰기의 사이에서 둘을 절충해 내거나 둘의 장점을 추려내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다. 뭐, 고종석은 거기에 대단히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주제 자체가 저널리즘적인 것이고, 신문에 발표되기 위해 쓰여진 글이니까... 그럼에도 칼럼이라는 형식 자체는 정도 이상의 정확성과 깊이를 요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에서도 이름난 그의 미문은 충분히 즐길 만 하다.

이 그럴싸한 도구를 사용해서 그는 우리시대의 낯익은 혹은 낯선 코드들을 샅샅이 훑어 나간다. 정치권력·체제의 문제, 문화와 권력의 관계, 자연과 문명의 관계, 생태주의에 대한 천착, 종교, 지식인, 문학과 예술, 언어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 생명공학, 인터넷, 마리화나.... 하나하나 다 열거하자면 서평 하나를 넉넉히 다 채우고도 모자랄, 또 그 개개의 주제만으로도 개설서 몇 권은 거뜬히 써 낼만한 엄청난 주제들의 밀림을 그는 거침없이 헤쳐나간다.

'인간과 세상의 진보를, 아니 진보의 험난한 좌절들을 진실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는 충실한 좌파였고, 많은 좌파들을 부끄럽게 만들 줄 안다는 의미에서 또한 충실한 우파였다.' - 책 뒤표지

그의 책에 계속 따라다니는 한 교수의 '분석'처럼 그는 '인간'과 '체제'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권력(그것이 거시든 미시든 간에)의 문제들에 대한 탐색을 끊임없이 거듭한다. 그는 적어도 '진보'를 사고할 줄 알고, '우리 안의 짐승'을 직시할 만한 용기와 예리함을 가졌으며, 자연과 우주 앞에 겸손할 수 있는 생태적 마인드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마리화나와 술·담배를 비교하며 '자유의 한계'를 논하는 마지막 글은 보기 드문 탁견이며 우리의 현실에서 상당한 대담성을 필요로 하는 발언이다. 단지 하나, 그가 '어떤 좌파들보다도 더 좌파적이고 어떤 우파들보다도 더 우파적'일 순 있겠지만 '좌파'가 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 든 한 마디, '시장의 가격기구가 늘 최선은 아니지만, 그것은 적어도 합리성의 근처에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미래의 교육)라는 말이 주는 찜찜함은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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