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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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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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진짜로 기시 유스케가 보여주는 참혹함의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인간들끼리 서로 죽이는 과정을 다른 인간들이 보는 모티브에서 더 나아가서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과정까지 소설로 형상화하다니. 읽다가 말할 수 없는 끔찍함에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 내면에 간직된 본능적인 공포감이 올라온 것이지. 이 정도 수준이라면 기시 유스케의 공포를 끌어내는 능력에 경이를 표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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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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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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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소설인 줄 알았던 이 소설이 공포 소설로 변화하는 순간에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어.세상에, 역시 기시 유스케는 기시 유스케였어. 데뷔작부터 이런 공포를 만들수 있다니. 심리 소설을 공포 소설로 문제없이 탈바꿈시키는 그의 역량에 새삼 감탄해. 읽다가 중간에 마음 속에 바람을 가지게 됐어. 내 안에 감당할 수 없는 악마성이 없기를 바라는 것. 진정으로 나는 그걸 바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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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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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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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참혹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시무시한 미생물의 위력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읽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던져버리려고 했지. 하지만 M, 나도 이젠 예전과 다른가봐. 예전이었다면 읽다가 던져버렸을 책을 끝까지 읽고, 거기에 더해 재미까지 느꼈으니까. 어쩌며 나는 기시 유스케식의 공포라고 할 수 있는, 그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익숙해져 버렸나봐. 이걸 이상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해야 하나. 나도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나도 이제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인간이 됐다는 점이겠지. 그건 축복일까, 공포일까. <천사의 속삭임>은 내게 큰 혼란을 남긴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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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꽃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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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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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푸른 불꽃으로 타오른다는 건, 분노가 붉은 불꽃으로 타오를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분노로 불타오른다는 얘기야. 만약에 <푸른 불꽃>이 왜 분노가 푸른 불꽃으로 타올라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 못했다면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소설이 됐겠지. 하지만 말이야, M. 이 책은 적어도 내게는 제대로 그 분노가 왜 푸른 불꽃이어야 하는지 설명했어. 그래서 나는 망설일 없이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주었지. 언제나 책의 감동은 지극히 주관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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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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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나쓰메 소세키
학문은 ...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게 목적이다. ... 선과 악의 경계를 이해하고 어리석음, 참과 거짓, 바름과 사악함을 제대로 판별해내는 것이 바로 학문의 목적이다.(p.21)
세상의 단 한 사람의 공정한 인격을 잃을 때, 세상은 그만큼 빛을 잃는다.(p.60)
내 붓은 도를 싣는다. ... 백지가 인격이 되어, 그 바깥으로 넘쳐흐르고 뛰어오르는 문장이 있다면 바로 도야의 문장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귀족, 거상, 박사, 학사의 세상이다. 부속품이 본체를 밟아 뭉개는 그런 세상이다.(p.64~65)

이 소설이 진짜 소세키의 소설이 맞나? 다 읽고 다시 한번 책표지를 들여다본다. 버젓이 소설을 쓴 이가 나쓰
메 소세키라고 찍혀 있다. 진짜 소세키의 소설이 맞구나. 그렇다면 이 소설은 소세키 답지 않은 소세키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자와 희화화, 익살과 조롱의 언어로서 세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세상의 구조와 지배계층을 비판하는 정치적 언어가 소세키의 소설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학자는 돈이 없는 대신에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고, 상인은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돈을
법니다.(p.187~188)
돈으로 가치가 결정된 사람은 돈 이외의 일에는 무능할 수밖에 없다.(p.189)
돈 이상의 취미라든가 문학이라든가 인상이라든가 사회라든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부자들이 학자에게 탄복하지 않으면 안 되죠.(p.191~192)

하지만 역시 소세키는 소세키. 가난하지만 고고하게 세상과 불화하며 자신의 굽히지 않는 비판적 사고를 당당
하게 드러내는 인문학자 시라이 도야의 이야기 반대편에는 도야기 열심히 비판하는 상류층의 생활을 즐기는 인물인 나카노 슌타이의 삶이 놓여져 있다. 소세키는 도야의 과감한 언어를 가감없이 드러낸 것처럼 슌타이의 삶도 '비인정'의 방식으로 담담히 묘사한다. 거기에는 소설가로서의 소세키의 성향이 잘 반영되어 있다. 도야의 삶의 방식으로 슌타이의 삶의 방식을 가치판단하지 않고, 슌타이는 슌타이의 삶의 방식대로, 도야는 도야의 삶의 방식대로 그려져 있다. 물과 불처럼 섞이지 않은 것 같은 두 삶의 방식은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 다카야나기를 통해서 섞이지 않지만 '함께' 하는 구성으로 묶여서 소설이 된다.

자신의 움직임은 먹는가 먹히는가의 움직임이다. 따뜻한 봄날의 작용이 아닌 냉기 도는 가을의 운행이다.(p.77)
학생은 광명을 명심해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광명에서 흘러나오는 취미를 현실에서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서는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 구애받지 않으려면 해탈을 이루어야 한다.(p.92)

이 소설과 가장 유사한 소설은 <도련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과 불화하는 천둥벌거숭이 <도
님>이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기요'의 '도련님'에 대한 지속되는 사랑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가면서 '웃음'과 '따뜻함'을 이끌어낸다고 한다면, 이 소설에는 저항의 언어를 외치는 도야와 방황하는 다카야냐기의 삶에 드리워진 고독과 외로움, 가난의 그림자가 스산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에게는 끊임없이 애정과 성원을 보내는 '기요'가 없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그들에게 닥친 삶의 흐름이 그들을 그렇게 몰아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길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길의 동물이기 때문에 길을 좇는 것이
가장 존엄하다 생각합니다.(p.140)

현암사판 <태풍>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대로 이 소설을 다카야나기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소설
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의 얘기에 크게 공감한다. 동시에 이 소설이 초기에 썼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련님>과 전기 3부작으로 불리는 <산시로>,<문>,<그후>를 이어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풀베개>가 소세키 자신의 예술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며 자기 자신의 예술적 지향과 자신만의 미학적 관점을 표현한 소설이라면, 그 뒤에 써진 <태풍>은 자신만의 미학과 예술론을 소설로서 구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풍>에처음으현된 소세키의 소설 미학은 <산시로>,<문>,<그후>를 거쳐서 인간 자신과 인간의 삶과 인간의 내심리에 집중하는 모습의 성숙된 형태로 발현된다. <태풍>의 방황하며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친구인 슌타이의 과 자기 삶의 격차를 실감하는 다카야나기는 그런 관점에서 <산시로>의 성장통을 겪는 주인공인 '산시로'의 원과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진지한 것이다. 진지하기 때문에 심오하다. 동시에 사랑은 유희다. 유희이기 때문에 들떠 있다.(p.119)
성패에 관계없이 사랑은 일직선이다. 단지 사랑이라는 척도로 모든 것을 제단한다.(p.120)

하지만 <태풍>을 단순히 '이어주는 소설'로만 볼 수는 없다. 특히 <태풍>을 독특하게 만드는 건, 가난하지만 고고
게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세상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자신만의 정치적 성향을 말과 생각으로 쏟아내는 인문학자 시라이 도야이다. 그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시각과 관점으로 세상을 향해 신랄한 발언을 한다. 그는 거없이 얘기하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후회하거나 비관하거나 자조하는 것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이지 않는 캐릭터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풍'같은 생각과 언행이 <태풍>을 소세키의 다른 소설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어쩌면 도야는 아직 자신의 소설을 제대로 구체화하지 못한 소세키 마음 속의 어떤 불같은 불만의 덩어리가 형상화된 인물이 아닐까. 마음 속의 짐 같은 그 덩어리를 토해놓고 나서야 소세키는 더 성숙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 타락할 때 다시 파란이 일게 됩니다. 파란이 일지 않으면 화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석이 되기 싫으면 스스로 파란을 일으키는 겁니다.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p.182)

세간의 평가로만 놓고 본다면 <태풍>은 소세키 소설 중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다. 위에서 말한 것에 세간의
평가를 더해 보면 이 소설은 뒤의 작품들을 위한 디딤돌 같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풍>을 이번지 두번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건, 이 작품은 '성숙'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성숙'이나 '완성'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 미성숙과 미완성을 위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성숙'이나 '완성'이라는 말이 아니라 '미성숙'과 '미완성'과 '혼란'과 '열정'과 '흔들림'이라는 말로 완성되는 소설이다. 미성숙과 미완성을 통한 완성. 완성도가 떨어진다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소설은 그 떨어지는 완성도 때문에 오히려 매력적인 소설인 것이다. 도야의 계몽적인 연설의 열정을부로 흡수할 수만 있다면, 다카야나기의 방황에 공감할 수만 있다면, 이 소설은 소설 자체가 가진 거침과 성글음과 불완전함의 힘으로 독자들을 소세키만의 '태풍의 세계'로 이끈다. 그것은 소세키의 완성된 소설들이 주못하는 거칠고 강한 힘의 매력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삶이 미완성이라서 매력적인 것처럼, 문학이 삶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한 미완성의 장르라서 오히려 매력적인 것처럼 <태풍>은 미완성이라서 오히려 성글은 매력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것을 두번째 독서에서야 깨달고 나니 <태풍>이 진짜 '태풍'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현암사판 소세키의 다른 소설들에서는 다시는 맛보지 못할 느낌이리라.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
을 맛본 사람이 문학입니다. ...
다른 학문이 가능한 한 연구를 방해하는 것을 피해서 점점 인간 세상과 멀어지는 것과 달리 문학자는 자진해서 이 장애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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