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책을 읽다 - 미술책 만드는 사람이 읽고 권하는 책 56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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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미술책을 읽다-정민영

모든 미술책의 목적지는 미술이 함께하는 삶이다. 나의 미술출판 행위가 그렇듯이, 미술책 리뷰도 결국 '미술이 동행하는 삶'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자 미술로 삶의 경험을 바꿔주고 싶은 마음의 실천이다.(14)

<교수대 위의 까치> 독서모임을 하고 큰 실망감이 찾아들었습니다. 자신의 취향에만 집중하여 그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는 어떤 화가의 어떤 그림을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염증은 저로 하여금 미술책 독서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미술책을 읽어서 무엇을 할까 하는 식으로. <교수대 위의 까치> 모임이 끝난 뒤에 저는 어느새 미술책과 멀어졌습니다. 몇달간을 미술책을 멀리하고 미술에 관심 없이 지냈죠.

그런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변화의 시작이 된 것은 미술책이 아닌 음악을 다룬 서경식의 <나의 서양음악 순례>라는 책이었습니다. 자신의 삶과 연관하여 자신만의 음악비평을 시도한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예술이 단순히 취향의 문제라거나 예술작품 그 자체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예술작품은 단순히 한 개인의 창작물을 넘어서서, 그 예술이 탄생한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어 의미를 얻고 후대에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낀 것이죠. 저는 그것을 실감하며 다시 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술에 대한 염증이 아니라 예술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았으니까요. 당연하게도, 미술관련 책도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미술책을 읽다>는 다시 미술책을 읽기로 한 저에게 일종의 입구 같은 책입니다. 미술출판 전문가로 17년을 이 업계에서 일해온 저자가 미술책 리뷰를 모아서 펴낸 이 책은 다양한 미술책들을 소개하며 독자에게 미술책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양한 미술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가 바라본 미술, 나무 전문가가 바라본 미술, 연애 전문가가 바라본 미술, 음식의 관점에서 바라본 미술 같은, 뿐만 아닙니다. 이 책은 서양화 뿐만 동양화 관련한 책들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국화, 한국 전통의 그림과 한국 근현대 미술에 이야기하는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은 동양화와 한국화의 매력과 우아함,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여지없이 전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서영미술을 다룬 책보다 한국화 관련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6권의 미술책 리뷰를 다 읽다보면, 미술책이 이렇게 다양하고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경이감에 다다릅니다. 근데 그건 미술책이 소개하고 있는 미술 자체가 가진 힘이겠죠. 미술에 힘이 없다면 그런 책들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미술책을 소개하는 <미술책을 읽다> 같은 책도 나오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미술은 언제나 단순한 미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고, 미술책은 그 무엇이 무엇인지 파악한 저자들의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무엇이 궁금하다면, 미술책을 펴서 읽으면 될 것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제가 할일도 그것이겠죠. 저는 이제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자, 이제 미술책을 읽으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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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모임
1.일시:2018년 8월 11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2.장소:서면 텐스
3.함께 읽을 책:십팔사략(현대지성) 1장:3황5제의 전설시대~6장:전국시대까지
-10회 모임 제목:신화에서 역사로
-동양고전을 읽게 되는 시즌2에서는 동양고전을 읽기 위한 일종의 배경작업으로서 중국의 역사서인 <십팔사략>과 동양 고전을 소개하는 신영복의 <강의>를 나누어 읽을 예정입니다. 동양고전에 관심 있거나 읽고 싶으신 분들, 고전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참여해보세요.^^
-나이,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시면 됩니다.
-함께 고전을 읽자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참가하시고 싶으시면 쪽지로 연락주시거나 밑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고전 독서 모임의 유효성
고전을 읽고 고전독서모임에 참여하면
-고전이 더 재미있어집니다.
-고전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됩니다.
-고전이 단지 과거의 책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있는 현재의 책이 됩니다.
-고전을 읽고 떠올린 생각들을 나누며 고전은 모임에 참가한 이들의 공유가 됩니다.
그러니 고전을 읽고 함께 모임에 참석해보아요.^^

고전 독서 모임의 목표
1.고전을 함께 읽는다.
2.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조망하는 시야를 갖는다.
3.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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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전함께읽기 9회 모임 후기
우리는 그동안 고대 그리스의 대화편 6편을 읽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파이돈, 크리톤, 향연,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까지. 여기에 플라톤의 초기작이자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나오기 바로 전 상황을 바탕으로 쓰여진 경건함에 대해 얘기하는 <에우티프론>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고대 그리스 대화편을 읽는 여정을 막을 내렸습니다. 모임에 참가하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 여정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임이 아니라면 읽지 않을 고대 그리스 대화편을 7편이나 읽었다는 것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낯설고 힘겨울수도 있는 독서의 여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며, 이제 부산고전함께읽기 모임은 고대 그리스 대화편을 읽은 시즌1을 떠나 동양고전을 읽기 위한 여정에 나서려 합니다. 동양고전과 함께 하는 시즌2에서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여정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밑에 있는 글은 시즌1 마지막의 모임의 흔적들입니다.^^ 
 

000: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종교의 기복신앙적인 부분은 비판할 수 있다. 고차원적인 종교에는 기복신앙적인 부분보다는 개개인의 발전을 위한 요소가 더 크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경건이 무속신앙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00: 쉽게 생각했지만 잘 안 읽혔다. 본질을 강요하는 소크라테스의 행동이 나랑 맞지 않는다. 경건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00: 교회를 다니는 입장에서 이 책에 나오는 종교관은 내가 생각하는 종교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를 고소하는 경우와 부모가 자식을 고소하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경건함에 대해서는 심오하게 와닿지 않았다.
00: 번역된 원어를 넣어주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가 펼치는 논리를 중심으로 봤다. ‘경건함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보라라고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경건함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중요한 건 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00: 지겨웠다. 똑같은 것이 반복됐다. 플라톤의 기본적인 사상과 다른 부분이 있어 당황했다.
00: 절에 가라는 어머니의 강요가 싫다.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있다. 종교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착각이 아닌가.
000: 종교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00: 종교와 나라별 문화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종교인들의 모순적인 행동을 보고 그건 경건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에 대한 해석에 따라 종교집단의 규범이 너무 달라진다. 내가 바라본 개신교인들의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고 느꼈다. 종교는 앎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행동이 따라오지 않은 앎은 의미가 없다.
00: 경건함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중이다. 여기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은 고민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면 그 사람에겐 그것이 경건함이다.
00: 경건함은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고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경건함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가 더 중요하다.
000: 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실천할 수 있는 자세가 포함되어야 경건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실천할 수 있어야 경건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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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이케가미 아키라

129.드롭:위기의 남자-마이클 코널리

130.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태준

131.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1-유홍준

132.나의 서양음악 순례-서경식

133.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류동민

134.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135.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마이클 부스

136.프로타고라스-플라톤

137.하지 무라트-톨스토이

138.흑백의 여로-나쓰키 시즈코

139.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기타가와 에미

140.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요네자와 호노부

141.서스펙트-로버트 크레이스

142.새로운 계급투쟁-슬라보예 지젝

143.맹자를 읽다-양자오

144.빛나-르 클레지오

145.화이트 래빗-이사카 코타로

146.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나쓰카와 소스케

147.아무도 아닌-황정은(2)

148.무너지는 제국-존 스칼지

149.은유가 된 독자-알베르토 망구엘

150.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조르주 심농

151.마제스틱 호텔의 지하-조르주 심농

152.둠즈데이북1-코니 월리스

153.둠즈데이북2-코니 월리스

154.잃어버린 아이의 이야기-엘레나 페란테

155.헤겔의 변증법-줄리 E. 메이비

156.에우티프론-플라톤

157.권력과 교회-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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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모임에서 제가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서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에우티프론>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문학 번역이 아닌 비문학 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중의 하나가 '대명사'나 대명사에 준하는 말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썼냐 하는 점입니다. 대명사나 대명사에 준하는 말들을 보고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나마 괜찮은 번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명사를 보고 그 대명사가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 저는 기본적으로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뭐 어떤 분은 원어에 가깝게 써서 그렇다는 말들을 하시던데, 제 개인적으로는 번역서를 읽는 이유가 '언어학 공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 글을 읽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언어학 공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번역을 어떻게 좋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긴 하지만, 알 수 없는 번역을 해놓고 원어에 가까운 번역을 했다고 하는 건 그 번역의 의미를 떠나서 제 귀에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독서를 한다는 것이 언어학 공부나 언어학 세미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이런 독자의 태도를 보고 게으르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뭐 게으른 독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으른 독자를 논하기 이전에, 일단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독자에게 알려주는 건 번역자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에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는 건 알고 있습니다.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가 철학적, 사상적, 학문적 행위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번역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말을 알 수 있게 알려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기본적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알 수 없게 알려줘놓고 여기에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언어를 알 수 없게 번역해놓고 여기에 무슨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저에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의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이런 논의에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의 사상적 의미는 인정하지만,  저를 포함한 번역서를 읽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딱히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번역서를 읽는 소수의 독자들에게는 무언가 의미가 있겠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에우티프론> 번역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고전 모임에서 읽어온 책들은 천병희 씨가 번역한 책들이었습니다. 제가 천병희 씨 번역을 읽자고 한 이유는, 고전에 관심없는 이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게 번역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대로 고대 그리스 대화편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하더군요. 만약에 고전 모임을 천병희 씨의 번역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번역서들을 읽었다면, 그분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재밌게 잘 읽을 수 있을까요? 언어학적인 의미는 제가 하고 있는 고전모임에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하는 고전모임에서 필요한 책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책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에우티프론>은 천병희 씨의 번역이 없어서 서광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읽었습니다. 읽고나서 깨달은 건데, 책을 읽기가 쉽지 않더군요. 예상대로 모임에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거나 어렵다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그나마 그분들이 <에우티프론>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모임에서 고대 그리스 대화편을 계속 읽어왔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식의 번역을 읽었다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몇 년 전에 <향연> 모임을 했다 피를 본 경험이 저의 그런 생각을 보증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읽을 수 있게 번역해달라는 것, 그거 하나입니다. 그것 하나가 어렵고 부당한 요구인가요? 그것 하나를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번역을 원하는 이들이 게으른 독자 취급을 당해야 하나요? 사상적이고, 학문적인 의미로서의 번역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논쟁을 하시는 분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번역서를 읽는 다수의 평범한 독자들이 그 논쟁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그 독자들에게 그 논쟁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건대, 이 사실을 자각하시고 논쟁을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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