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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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5.전쟁일기-올가 그레벤니크

 

전쟁 첫째 날 내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무서운 사실이지만 그 생각으로 미리 적어두었다.(p.96)

 

바로 앞에 쓴 서평에서 저는 앞에 읽은 책에 대한 최악의 평가를 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내가 잘못이라고. 그 책을 선택한 내가 바보라고. 별점 평가에서 별 한 개를 주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별 한 개도 아까운 책이었다고. 너무 뻔한 내용에 뻔한 주장인데, 마치 자신은 뻔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듯이, 무언가 대단한 주장을 한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인터넷 공간을 조금만 뒤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메시지에다, 정치학이나 정치철학, 정치이론 다루는 책을 읽으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무언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듯이 너무너무 별로였다고. 내가 비판하는 사람의 주장은 진부하다고 말하고, 자신의 주장의 진부함은 깨닫지 못하는 한국 지식인의 오만함이 너무 잘 드러내는 책이었다고.

 

어휴~~ 쓰다보니 너무 많은 독설이 나오네요.^^;; 참아야지. 쉼호흡 한 번 하고. 휴우~~ 제가 전에 서평을 쓰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말하며 우크라이나 인들의 실존의 무게감을 말하는데, 이 책으로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실존의 무게감을 느낄 수 없다고. 그런 뒤에 저는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실존의 무게감을 알려면 우크라이나인들이 쓴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여기서 저는 <전쟁일기> 서평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일기>는 우크라이나인이 겪은 전쟁의 경험이 생생하게 남겨진 책이기 때문이니까요.

 

먼저 전쟁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한 번 생각해봅니다. 제가 쓴 전쟁이라는 말은 참 피상적입니다. 이 때의 전쟁이라는 말은 뉴스 보도에 나오는, 인터넷의 동영상에 나오는, 책의 문장 속에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게임 속에서 가상의 게임 캐릭터가 경험하는, 딱 그 정도의 무게감 밖에 없습니다. 그건 제가 전쟁을 실제 삶으로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쓰는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실제 삶의 무게는 없는, 가상의 간접경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니까요.

 

그에 비해 <전쟁일기>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무겁고도 무겁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였던 저자 올가 그레벤니크는 35년간 평화롭게 지내던 삶에서, 하룻밤 사이에 폭격 소리를 들으며 전쟁이라는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삶의 안전함이 사라진, 남편과 아이들, 함께 지내는 개, 자기 자신의 목숨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으로의 급전직하. 평온함이 아닌 불안이 지배하는 삶. 눈앞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나날을 저자는 단순하고도 인상 깊은 그림과 짧은 글들로 생생하게 남깁니다. 마치 생생한 전쟁의 호흡을 전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우크라이나를 떠나서 폴란드를 거쳐 불가리아로 가서 정착하게 된 저자. 성인 남자는 국경을 넘을 수 없어서 남편을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저자의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의 나날 속에서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의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은 이렇게 머나먼 이국의 저라는 사람에게도 와 닿았습니다. 전쟁이 평범한 이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생생하게 전하며.

 

<전쟁일기>를 읽으며 위에서 적은 것처럼 제가 말하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게감 없고, 피상적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 겪은 것은 사람만이 전쟁을 말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 전쟁을 겪은 사람이 느끼는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과 전쟁을 겪지 못하는 이가 말하는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의 차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이 서평 이전에 혹평을 했던 책을 쓴 저자가 과연 우크라이나인의 실존의 무게감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말의 무게감을 얼마나 생각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진부하기 그지 없는 주장을 하면서 마치 자신은 진부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 저자는 진짜 우크라이나인에게 닥친 전쟁이라는 삶의 무게감을 파악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서 아무 생각없이 말을 했을까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자기 주장의 진부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걸 보며 아마도 자기가 말하는 단어의 무게없음을 깨닫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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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 서평을 썼다.

너무 독설을 날려서 알라딘 서재에는 안 쓰려고 한다.^^;;

사실 별 하나도 주지 않으려 했는데,

별 하나는 기본적으로 주는 거라서 

어쩔 수 없이 별 하나는 줬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그 책은

별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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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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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3.사랑의 역사-니콜 크라우스

 

모든 사랑은 저마다의 사랑의 역사를 가집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기까지 했다면, 그 사랑은 자신만의 사랑의 역사를 가진 셈이죠, , 여기서 이 사랑의 역사를 소설로 쓴다고 쳐보죠. 일단 누군가가 자신만의 사랑의 역사를 씁니다. 여기서 그친다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겠죠?^^;; 자신만의 사랑의 역사를 쓴 이는 그 원고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잃어버립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의 역사는 노년의 인물에게 기적적으로 가닿습니다.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는 이 과정을 그린 아름답고 멋진 소설입니다. 바로 사랑의 역사가 전해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의 핵심에는 세 인물이 얽혀 있습니다. 폴란드에서 태어났고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 사랑의 역사를 글로 써서 남겼지만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의 비극 앞에서 여인과 헤어지고 미국에 건너가서 열쇠공으로 살아남은 한 남자. 친구의 원고를 들고 칠레로 가서 살다 친구의 소설에 매혹되어 그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평생에 걸친 죄책감을 가지게 된 또다른 남자. <사랑의 역사>를 우연히 잃고 매혹된 아버지 때문에 <사랑의 역사> 속 여자주인공의 이름을 달고 태어난 소녀. 소녀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더 이상 사랑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다른 남자들과 이어주려고 노력하다가 우연히 <사랑의 역사> 속 수수께끼와 얽혀 소설의 비밀을 파고들게 됩니다.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뒤엉키고 풀리는 과정을 통해서 소설은 사랑이 인간에게서 인간으로 전해진다는 너무나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를 아름답게 알려줍니다. 동시에 소설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 앞에서도 사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비극을 거치고나서도 사랑은 따스하게 인간의 마음에 스며든다고 소곤거립니다. 니콜 크라우스는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문학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역사>를 전하는 인간들의 역사를 섬세하고 따스하게 그리며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과하지 않게, 감상적이지 않게, 역사의 비극에만 빠지지 않게, 문학적인 기교를 담아서 예술적으로. <사랑의 역사>를 전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역사를 읽고 나니 내 마음이 젖어드네요. 문학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듬뿍 들이마신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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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연애소설
홍지운 지음 / 아작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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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2.공상연애소설-홍지운

 

SF는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때로 잔혹한 꿈으로, 때로는 정교한 과학적 상상력의 현실화로, 때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실존하게 만드는 사고실험으로, 때로는 낭만적인 모험담 같은. 이 모든 다양한 이야기들이 SF에 포함되고, 하나의 작품에서 그 어떤 특정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드러냅니다.

 

<공상연애소설>은 저 중에서 무엇을 뵤여줄까요? 제목에서 예상되지만 이 책은 낭만적인 꿈, 현실을 따스하게 품에 안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SF를 한국어로 번역한 단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공상과학이라는 단어에서 과학을 뻬고 연애라는 단어를 넣은 만큼, 이 책은 공상연애같은 낭만적이고 따스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때로 책 속의 이야기는 다른 SF에서 보일 수 있는 잔혹하고 가혹하며 극단적인 이야기로 갈 뻔하지만, 작가는 그 궤도에서 방향을 틀어 결국은 낭만적이고 따듯한 이야기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마치 무언가 잘못된 길로 갔다는 듯이.

 

히어로가 등장하는 모험담으로, 낭만적인 연애담으로, 연애 이야기가 깃든 유머러스한 성장소설로, 무언가 따스함을 갖춘 디스토피아 느낌의 소설로, 러브크래프트 풍의 공포 소설 분위기에서 낭만적인 이야기로 변주되는 소설로, 무언가 음모론 느낌의 소설이지만 극단까지 가지 않은 이야기로, 그 외의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되는 이 공상 연애들은 SF의 가능성이 단지 과학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SF도 이야기이고, 이야기라면 응당 인간의 다양한 삶을 품으며, 품어진 이야기 중에는 인간의 사랑과 낭만의 이야기도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공상연애소설을 읽고 나니 저의 공상은 다시 다른 곳으포 향하게 됩니다. 따스하면서도 극단으로 가지 않는 상상의 영역으로. 그게 <공상연애소설>이 저에게 보여준 상상의 영역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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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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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1.원청-위화

 

원청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이름입니다. 소설 <원청>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인 원청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그 도시에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한 여자를 찾아나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그 남자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말로 <원청>은 어긋난 인연의 이야기입니다.

 

, 맞습니다. 저는 <원청>을 어긋난 인연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어긋나 갈라지게 된 두 사람은, 저마다의 삶을 살면서 현실과 마주하고, 마주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나가게 됩니다. 두 사람의 갈라선 현실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라는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그 시대의 현실은 두 사람의 삶에 역사적 현실성이라는 무게감을 더하죠. 이 역사적 현실성은 실존했던 잔혹함과 폭력성을 보여줍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폭력이 생생히 저질러졌던 살육의 현장을 위화는 가감없이 그려내면서, 소설적 현실 속에 역사를 담아내는 자신만의 문학적 방식을 이 작품에서도 사용합니다. 그건 서글프면서도 기쁘고 슬프면서도 즐겁습니다. 그건 그 모든 것들을 다 담아내면서 아름답습니다. 아마도 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위화는 초기에 폭력적이고 잔혹한 실험적인 소설들을 쓰는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랑비 속의 외침> 이후로는 초기의 경향을 벗어나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데 집중합니다. 기쁨과 슬픔과 서글픔과 힘겨움과 고단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서민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그건 삶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려 했다는 말입니다. 오랜 기간 공들여 써내려간 <원청>에서도 위화 식의 삶의 아름다움의 문학적 형상화는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잔혹한 초기 경향의 창조적 재생산과 더불어. 아마도 위화는 지속적으로 이 삶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문학 속에 담아내겠죠. 그렇다고 한다면 저도 그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읽으면서 그 삶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삶의 아름다움에 중독된 독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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