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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소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어떤 미소-프랑수아즈 사강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봅시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 사람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커플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조금만 조건을 바꿔 봅시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유부남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평범한 커플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터 '사랑과 전쟁'으로 바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아쉽게도 이 둘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은, 김치 싸대기를 날리고 점찍고 나타나서 자기를 버린 연인에게 복수하는 한국이 아닙니다. 이 둘의 이야기는 2차 대전을 겪은 후의 프랑스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알겁니다. 이 이야기가 김치싸대기나 점찍고 나서 하는 복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김치싸대기고 없고, 점찍고 나서 하는 복수도 없는 불륜 이야기. 막장에 중독된 이라면, MSG없는 밍밍한 국물 맛이라며 화를 낼수도 있건만, 19세의 나이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성공을 거두고 프랑스 문단에 천재로서 등단한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자신만의 섬세한 심리 묘사로 작품을 가득 채우며 매혹적인 소설를 만들어냅니다. 막장에 중독되어 자극적인 이야기만 원하는 이들이나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만 모든 걸 판단하려는 이들은 알 수 없는, 인간 사이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가득한 세계를 보여주며.
자, 다시 심리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그가 비록 유부남이지만. 막장 심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고 더 심리 이야기를 전개해갑니다.(^^;;) 그는 매력적입니다. 지적이고, 여유도 있고, 재미도 있고, 여자의 심리도 잘 알고, 연애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그와 있는 시간은 즐겁고, 행복합니다. 스무 살의 나는 연인이 있지만 유부남인 그에게 끌리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는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자신의 가정을 깰 생각은 없습니다. 그는 매력적인 자신의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를 독점할 수 없고, 보통의 연인처럼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끌리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와 보통의 연인처럼 지낼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를 만나고 싶고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와의 사랑은 원합니다. 나의 심리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기 시작합니다. 만나기 싫다, 아니 만나고 싶다. 사랑을 하고 싶다, 아니 사랑을 하는 게 힘들다. 열정적이고 냉소적인 나의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심리적 널뛰기는 소설 내내 지속됩니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기. 사랑하면서도 좌절하기.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사랑을 포기하지 않지만 사랑을 온전히 할 수 없는 상황을 대면하기. 나만 그런가요? 아니요, 상대방도 비슷합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기, 냉정과 열정을 오가기, 비관과 낙관을 넘나드는 나와 그의 연애는 무수한 심리 상태의 변화로 가득합니다. 작가는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과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복잡한 연애 심리의 롤러코스터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우리는 팝콘을 먹으며 그 과정들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그 섬세한 과정들을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되기만 한다면. 근데 독자도 그들과 다를까요? 아니요, 독자도 비슷할 겁니다. 둘의 연애를 싫어하면서 지켜보기, 지켜보면서 응원하지 않는 듯 하지만 어떤 결말을 바라기, 어떨 때는 냉소적으로 어떨 때는 열정적으로 지켜보면서 심리적 널뛰기를 하는 것도.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독자들이 자기가 쳐놓은 심리적 그물망에서 헤매고 있는 걸 알고 있을 때,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은 어떤 행동을 할까요? 아마 어떤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요?^^;;